[기획/제작] 나만의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기획'이라는 말은 보기만 해도 거창하고 막막하게 느껴져요. 남들과는 달라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튀어도 안될 것 같고요. 저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빼꼼 고개를 들 때면, 무엇을 만들지 보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했어요. 단순히 '책을 만들고 싶다'가 아니라 '지금 드는 이 생각을/마음을 책으로 남기고 싶다'였던 거죠. 주체할 수없이 누군가를 좋아하던 때는 그 마음을 받아 적었고, 혼자가 된 후에는 나를 잘 가꾸고 돌봐주는 일이 가장 즐거워 그것에 대해 썼던 것처럼요.
책을 기획하기 전 단계에서는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서점에 많이 들러보는 게 좋아요.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있는지, 어떤 책이 내 취향과 가까운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의 눈으로요.
다만 '기획'이라는 말에 갇혀 어떤 키워드가 유행인지, 어떤 주제가 잘 팔리는지를 기준으로 삼는 일은 위험해요. 유행하는 키워드를 알았다고 해도 정작 내가 하고 싶던 말이 아닐 경우 그만큼 공허하고 빈약한 글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바깥의 정보는 참고 정도만 하고 나의 안을 유심히 들여다볼 것. 그럼 내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보일 거예요. 그건 요즘 제일 큰 관심사나 고민일 수도 있고, 푹 빠져있는 아이돌이나 취미, 혹은 혼자만 알기 아까운 정보가 될 수도 있겠죠. 작고 소소해 보이는 것이어도, 이상하고 엉뚱해 보이는 것이어도 좋아요. 독립출판이란 '나만의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
기획: 무엇을 - 어떻게 표현할지 (글/그림/사진 - 에세이/시/소설 등)
ex)교토 사진집 / 요가 그림일기 / 퇴사 에세이 / 연애 소설 등
제작: 원고 쓰기, 제목 정하기
- 기획과 제작의 단계는 바뀔 수도 있고, 섞일 수도 있다.
화분물 기획 & 제작 후기
<화분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는 기획 없이 만들어진 책이다. 정확하게는 원고를 먼저 쓴 후에 쌓인 원고를 토대로 주제가 정해졌다. 당시의 나는 사랑에 대한 문장을 가사처럼 짧게 써본 것이 전부였는데, 긴 글을 잘 쓰고 싶어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쓰는 글쓰기 모임에 신청했다.
사랑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산문을 쓰는 것도, 그걸로 A4 한두 페이지를 채우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내가 어떤 내용, 어떤 수준의 글을 언제까지 쓸지 몰랐으니 책을 만들 계획이나 기획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그저 한 주도 빠짐없이 글을 썼고 정신 차려 보니 6개월이 지나 있었다.
잘 썼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때그때 진심을 담아 써둔 문장들에 내가 위로를 받고 힘을 내는 날들이 늘어갔다. 함께 모임을 하는 분들도 내 글에서 좋은 영향을 받는다, 다음 글이 기다려진다 말해주었다. '신간'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꿈틀거릴 때쯤 독립출판 페어 <퍼블리셔스 테이블>의 개최 소식을 들었고 그것을 마감 삼아 새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7개월간 썼던 에세이를 모아놓고 보니 그때의 관심사에 맞게 주제가 통일되어 있었고(화분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 자신의 성장을 응원하는 이야기), 그것이 그때 가장 하고 싶던 말들이기도 했다. 책에 사진이나 그림이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 텍스트로만 구성했고, 제일 처음 썼던 꼭지의 제목이 전체적인 주제를 가장 잘 나타내주어 책 제목으로 정했다. 기획을 하고 원고를 쓴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매주 성실히 쌓고 보니 그 자체로 기획이 된 셈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이렇게나 다양하다.
*참여한 글쓰기 수업: 태재 <에세이 스탠드>, <에세이 드라이브> @teje.offi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