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얼마면 돼
신나게 카드를 긁어대던 나날은 지났고 드디어 카드결제일이 다가왔다. 카드결제금액의 숫자가 그저 디지털 숫자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으니 나는 경제관념이란 것이 한참은 결여되있던 모양이다. 하루 이틀정도는 카드 결제 금액이 미납되었다는 문자만 오다가 이윽고 02로 시작되는 번호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이런 전화는 숫하게 해봤을 매우 건조한 목소리로 상담원이 나의 미납 사실을 고지했다.
언제쯤 입금 가능하실까요?
저...지금 당장은 힘든데요...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크게 놀랄것도 없다는 듯 기계처럼 내일까지 입금하셔야 한다는 멘트로 전화를 종결지었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하루에 한번씩 전화가 오고 미납된 카드금액에 약간의 이자까지 더한 금액이 문자도 어김없이 온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면 지정된 채권담당자의 전화가 온다. 나는 관리 대상이 된 것이다. 기계적인 멘트와 함께 연체된 금액을 입금하지 않을 시의 불이익을 가지가지 설명해준다. 담당자는 통화하며 갚을 능력이 있는지 상환 의지가 있는지 여부를 묻는다.
카드값을 3주째 내지 않자 1300만원까지 가능했던 카드 한도는 80만원으로 대폭 축소됨은 물론이요, 연체된 사실이 금융사 전체에 공유되면서 타 금융권 카드도 쓰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타사 금융권까지 소비의 길이 막히게 되고 나면 비로소 신용불량자인 것이 한껏 실감이 난다. 수중에 현금이 있을 리 만무한데 이제 정녕 소비의 요정을 떠나보낼 때가 된 것 인가. 채권담당자는 이제 채권추심전문회사로 이관되어 법적절차(지급명령, 부동산 가압류)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해왔다. 이제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구나. 앞으로 닥칠 재앙의 실체가 궁금하여 검색해보니 채권추심전문회사로 넘어가면 독촉 절차가 강도높게 진행된다고 한다. 그동안 카드사 직원의 독촉전화는 양반이라나... 무엇보다도 부동산 가압류를 진행한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티비에서나 보던 빨간딱지가 우리집에 붙게 되는건가. 머릿속이 복잡해져왔다. 혼자 백날 끙끙 싸매고 있어봤자 돈 나올 방도는 없고 이제 남편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하지만 말이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올리 만무하다.
여보 나 할말 있는데... 그게...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