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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방장 May 24. 2024

나를 울린 아무개들

01 삶 속에서 만난 아무개 

5월 가정의 달, 엄마와 2주 동안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그중 마지막 여행지 정저우 개봉에서 나를 울린 아무개들을 만났다. 


개봉은 엄마에게 특별한 곳이다. 지금 내 나이에 남편과 함께 태어난 지 3개월도 안 된 딸과 9살 아들을 데리고 돈을 벌겠다고 고향을 떠나 정착했던 곳이 개봉이다. 그곳에서 엄마 아버지는 10년 동안 음식 장사를 했다. 그때 동거동락했던 부부의 아들이 이번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엄마의 중국 여행이 결정되었다. 아버지, 엄마를 모시고 다녀오기로 한 여행이 결론적으로 나와 엄마의 여행이 된 것이다(이야기가 길다).


개봉 여행에서 엄마가 꼭 찾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엄마가 삼십여 년 전 처음 개봉에서 정착했던 집주인이다. 당시 무일푼인 엄마에게는 음식솜씨밖에 없었다. 무작정 시작했던 반찬 장사는 매일 밤 11시 반에 끝이 났다. 매일 나를 업고 다닐 수 없었던 터라, 집주인 할머니가 갓난아기였던 나를 돌보고 밥을 챙겨 먹였던 것이다. 나의 첫 돌도 그 집에서 보냈다. 하여 엄마 아버지는 늘 그 할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내게 이야기했다. 살아계신다면 꼭 찾아가서 고마움을 전해야 한다고. 


다행히 개봉은 일곱 왕조의 고도로 많은 건물이 보존되어 이삼십 년도 더 넘은 세월이 지났지만 도시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다. 엄마의 기억을 따라 집주인 할머니 집인 102번지를 찾아 나섰지만 100 이상의 번지수는 없었다. 지나가는 나이 든 분을 만나거나, 대문이 활짝 열린 집이면 엄마는 들어가서 무작정 그 할머니를 아시냐고 물어보았다. 한 시간 정도 물으며 헤매다가 우리는 결국 그 할머니의 집을 안내받았다. 102번지는 61번지로 바뀌어져 있었다. 


꼭 살아계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우리는 대문을 두드렸다. 할머니의 작은 아들이 문을 열었다. 엄마를 알아보고는 집 안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낯설지만 또 뭔지 모르게 익숙한 할머니가 누워계셨다. 엄마를 보는 순간 할머니도, 엄마도, 그리고 할머니의 큰 아들도 눈물을 흘렸다. 살아서 다시 우리를 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보고 싶을 때마다 사진을 꺼내어 본다며 자기가 갖고 있던 사진을 나에게 건넸다. 기쁜 마음에 아버지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화면을 통해 할머니가족을 본 아버지가 연신 눈물을 닦으셨다.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이다. 화면 속 아버지도, 화면 밖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나의 귀한 돌 사진

나는 왜 눈물이 났을까? 

태어났을 때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이어서일까? 


사실 나의 첫 기억은 어릴 적 친척 집에서 당했던 창피한 일들이다. 부모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독서하고 운동을 하면서 나름 잘 자라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와의 화해를 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이번 개봉여행에서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3살 반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개봉 지방언어를 하기 시작해서 부모님이 3살 반이 된 나를 고향집으로 보냈던 것이다. 자기의 언어를 잊지 않기 위해 고향에 있는 조선족 학교를 보내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되었다. 


엄마가 지금 나의 나이에 아이 둘 데리고 무일푼으로 개봉으로 갔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났던 걸까? 개봉에 오니까 엄마가 잊고 살았던 일들도 생각난다면 나에게 개봉에서의 삶을 이야기해 주었다. 낮이 없는 삶을 듣는 내내 너무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30대인 나는 지금 엄마의 30대 삶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런 엄마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 할머니에게 감동을 먹어서일까? 누군가에게 베푼 선의가 다른 이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선의를 베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항상 나부터 잘 살아내고 남을 돕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더불어 함께,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 또한 잘 살아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감이 교차하면서 나는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나를 울린 아무개들을 만나며 나에게 생각의 변화가 조금씩 찾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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