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나를 차별하는 아무개
작년 12월 경계인을 연구하는 Q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방장님은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이 신기합니다. 방장님 보면 경계인의 정서가 없어서 늘 궁금했습니다."
Q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궁금해서 질문한 것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무의식으로 나오는 질문이었기에, 의도와 상관없이 더 상처받는 기분이 들었다. 경계인의 정서는 어떠한 정서를 가리킬까? 자신감 없고 위축된 모습이 경계인의 정서일까?
Q는 질문을 하고 바로 "아차! 이것도 편견일 수 있겠군요!" 했다. 그때는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는 도서로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는데, 함께 참여한 Q에게 그때 나는 상처를 받고 국적과 민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Q는 이 질문에 대한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너무 자연스러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경계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우려고 하는 Q가 고맙다.
평생 열심히 살아오신 엄마에게는 한국에 빌라 집이 한 채 있다. 월세를 내놓은 상태로 아직 1년의 계약기간이 남았다. 가족의 사정으로 엄마가 임차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설명하고 중도 퇴거 가능여부를 물었다. 필요하면 이사 비용 및 복비도 챙겨드릴 의향까지 말씀드렸지만 임차인은 우리 가족의 사정을 꼬치꼬치 캐묻고는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임차인의 태도에서 엄마는 자연스레 자기가 외국인이어서, 나의 한국인 배우자에게 소통해 보라고 했다. 나를 포함한 주변 외국인 지인들은 모두 한 번쯤은 경험해 봤다. 외국인으로 내가 친절한 태도로 무언가를 요청할 때는 거절당하지만 한국인이 똑같은 요청을 할 때 정말 좋은 태도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말이다.
무조건 중도 퇴거 요청한 것도 아닌 가능여부에 대한 질문이었다.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았기에 계속 살겠다고 할 수도 있겠다는 예상도 하고 있었다. 배우자의 문자도 전화도 받지 않고 엄마와의 전화 한 통의 끝으로 임차인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엄마가 다시 문자를 보내자, 자기는 하고 싶은 말을 부동산에게 다 했으니 부동산과 소통하라는 문자 답장만을 받았다. 부동산에 전화해 보니까, 이사비용으로 400만 원(법적으로 명시된 의무는 아니지만 관례로 임대인이 임차인의 중도퇴거 요청 시 100만~200만 원, 최대 200만 원의 이사비용을 보테준다)을 주지 않는 한 이사 가지 않을 것이고, 비용 협의 불가한 것으로 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임차인의 태도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임차인은 임대인의 사전 허락 없이 에어컨 설치 후 비용을 청구하는가 하면, 건물 보수로 주차를 못했으니 그 비용을 월세에서 차감하겠다는 결정을 스스로 하고 문자로 임대인에게 통보를 했었다. 화가 나지만 엄마는 뭐든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하신다.
이 과정을 경험하면서 나는 너무 화가 나면서 원래 이 사람이 무례한 사람일까? 아님 임대인이 외국인이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일까? 고민했다. 외국인이어서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을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내가 너무 괴로울 것 같아 너무 화가 나지만 나 나름대로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이 무례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독서모임에 이 에피소드를 공유했다. 미국에서 이주민에 대해 연구하는 한국인 A의 말에 나의 화도, 고민도 해소되었다.
차별이 맞고 외국인이라서 그렇게 행동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내가 하는 사고가 사회적 약자의 사고의 특징을 띠고 있다고.
사회적 약자의 사고방식이란 나는 분명 B를 보았는데 모든 사람이 그게 A라고 하면 나 스스로에 대해 의심을 하고, 이게 A인지, B인지, C인지에 대해 해석조차 못하는 감정이다. 이를 인지적 불의라고도 하는데, 예를 들면, 성희롱/성차별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에 많은 성차별로 인한 불편함을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고 설명해야 할 게 너무 많을 때를 가리킨다. 딱히 한 단어로 설명할 키워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국인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늘 설명을 요구받는다. 예를 들면,
A가 연구하면서 거의 모든 이주민이 받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중국 & 한국 경기, 어느 나라를 응원하나요?"
페미니스트의 주장에 따르면 있는 그대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현상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뿐이다.
있는 그대로는 사회적 강자가 정한 것이다. 현실은 인간의 특정한 관점에서 보는 것이기에 하나의 사실에 수많은 진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말 신선한 깨달음이었다. 내가 그동안 고민하고 있는 정체성에 대해, 굳이 명확한 결론이나 서술이 필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나에 대한 나만의 의미, 해석만으로 충분하구나. 있는 그대로 타인을 바라보는 것 또한 내 기준이 아닐 수 있고, 나의 해석으로 나의 진실이 존재하는 것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게 정확하게 한 단어, 한 구절로 정리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끝으로 차별받는 기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나만의 방법에 대해 적어본다.
1. 운동, 독서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잠시 그 기분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법이 있다.
2. 나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기분을 나누며 자조(自助)하는 것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이 효과적인 것 같다.
3. 지금 글을 적는 것과 같이 바람직한 여러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