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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Feb 24. 2020

서른 즈음의 나와 마주해보니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어린 시절 내게 '조직'이란 단어는 무서운 단어였다. 뒤에 '폭력배' 같은 세 글자가 와야 얼추 익숙해지는 단어였달까. 밥 벌어먹고는 살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스스로 인지하기도 채 전에 어느덧 조직원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요즘은 '사회인'이라는 말보다 '조직원'이라는 말에 조금 더 익숙함을 느낄 정도다. 

  

  조직과는 꽤 거리가 멀었던 자유스러운 영혼이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체계 있는 집단을 이룬 곳'에서 서식하며 깨달은 점은 그러니까 꽤 묵직하다. 조직은 '쉽지 않다'는 것. 애초부터 어렵다. 내 맘 같지 않다.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다. 물론 앞으로도 딱히 그럴 일은 없을 것만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퍼즐 맞추든 착착 돌아가는 게 없다. 


    일이 괜찮으면 사람이 괴롭힌다. 사람이 괜찮으면 일이 삐걱거린다. 사람도 일도 괜찮을 때면 멀쩡했(다고 믿었)던 내 자신이 망가져 있다. 


    어느 순간 조직의 생리에 익숙해졌고, 튀는 것보단 조용하게 머무는 것에 안정감을 느낀다. 나를 내보이는 것보단 숨기는 쪽이 편안해진다. 


일하고 있는 나. 시나브로 '조직원'이 되어간다. (분홍색 헤드셋, 녀석은 아직 조직에 적응을 못한 것 같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일'이다. 


    언론사에서 새로운 뉴미디어 플랫폼을 개척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애당초 표준적으로 정해진 일이 없다. 때로는 직접 그림을 기획하는 연출자다. 직접 조사·취재해 원고를 만드는 작가이기도 하다. 리포팅을 하는 방송기자가 되기도 한다. 시청자(=유튜브 구독자)와 직접 소통하는 아나운서/리포터가 될 때도 많다.


    말 그대로 온갖 걸 '다 한다'. 모든 것이 밀도 있게 이뤄진다고 믿고 싶지만, 이따금 나의 일 가운에 얽힌 수많은 역할이 사실상 얼마나 허술한가를 따져 묻게 될 때도 있다. 


   남이 걷지 않은 길들을 처음 걷는 짜릿함도 있지만,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용감한 듯 걸어야 하는 부담감도 커서다. 대개는 호기롭게 발걸음을 떼지만, 이따금 겨우내 허허벌판 위를 '눈치 보며 걷는' 허수아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 일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영업사원이라고 영업만 하는 법이 없고 PR 담당자라고 보도자료만 쓰라는 법이 없지 않나. 일이란 건 숫자 같은 게 아니니까.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계산해 자를 수 없는 걸 테다.


    그럼에도 하루 24시간 중 절반 이상을 '일' 가운데 파묻혀 있는 사회인이자 조직원으로서는 자꾸 묻게 된다. 나의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내 일은 과연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나의 일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맞나. 나는 이 일을 잘 수행하고 있을까. 바야흐로 일을 잘한다는 건 무엇일까….


그래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그 자체로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일과 별개로 가장 두려워지는 일도 있다. 좋은 사람들을 잃어버릴 때가 그렇다.


    이따금 우연한 삶의 계기가 찾아 오면 그제야 '아차' 싶을 때가 있지 않던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좋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위할 기회가 생기는 거다. 


    이를테면 생일 같은 날. 생각지도 못한 이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다 보면, 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맞아, 아직 세상은 따뜻할 거야'


    그 느낌이 따뜻해서, 좋아서, 종종 기록을 남겨 두곤 했다. 그 순간을 잃어버리지 않고 싶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가까운 곳에 반짝반짝 빛나는 보물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기억해야만 했다. 어쩌면 '살기 위해서' 였던가?


     언제나 돌아보면 똑같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이 어색하지 않았던 건, 내 곁을 지켜주는 좋은 사람들의 은은한 빛 덕분이었다. 그들의 온기를 기록해두면 기억이 보다 오래갔다. 어쩔 수 없는 불행들이 닥쳐온다 한 들, 온기 속에서 이겨낼 수 있겠다 싶었다.


    나이 듦의 결과일까. 솔직하게는 기억의 유효기간이 생각보다 짧아진다. 삘 받아 기록해놨으면 그 느낌만큼 깨달음이 오래 갔으면 좋겠는데, 그것마저도 순식간이라 서럽다. 더 자주 치열하게 기록하면, 기억의 유효기간을 조금은 늘릴 수 있으련가.


    아, 그렇게 서른이 콧잔등 위다.


     노동의 대가가 통장에 정확히 찍히는 명백한 사회인,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시간. 시나브로 조금씩 일은 더욱더 익숙해지고 많은 것들에 노련해질 것이다.


    무언가 점차 수월해지는 건 기쁜 일인데 여전히 불안한 이유는 뭘까나. 익숙함에 취해 언젠가의 꿈을 잃어버리고 살게 될까 봐 두려워서는 아닐까.


두 팔 벌려 불안을 껴안고 싶다. 나의 서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만 불안하지 않고는 온전히 행복할 수 없지 않나. 이 모순된 말들을 조금은 이해할 줄 아는 나이가 됐다. 삶 자체가 영원하지 않다. 행복이라고 별 다를 바 있을까. 그렇다면 바라는 것은 하나. '불안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행복한 30대를 채워나가고 싶다는 것.


    상황은 흔들려도 나는 흔들리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누군가가 나를 아프게 해도 내가 상처받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내 맘 같지 않은 일이 벌어져도 무너져 울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포부다. 익숙한 것들에 취해 병들지 않고, 몸도 마음도 건강한 서른을 마주 하고 싶다. 


   일, 사람…어느 것도 꿈꾸는 것만큼 이루진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여전히 꿈을 꾸니까. 머물러 있는 청춘이 아니라 더욱 절실해지는 나의 서른 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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