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을 즐기는 게 낫다
지난주 일요일, 친구와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었다. 홍대 쪽에 사는 친구와 가까운 망원시장에서 콩국수를 먹는 게 목표였는데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듯 갑자기 강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받고 급하게 약속을 취소했었다.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친구인 데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도 해서 지난주에 못한 아침식사를 다시 하기로 했다.
망원시장은 마포구에 있는 전통시장으로, 70년대에 점포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된 것은 아니라는 건데, 그럼에도 서울에서는 데이트코스로, 나들이코스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 중 하나다. 물론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에겐 관광지보다는 동네 시장의 느낌이 강한 것 같았지만 말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동네에 있는 시장도 그렇고, 시장하면 칼국수집이 유명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망원시장의 대표적인 맛집도 칼국수집인데, 원래 콩국수를 먹으려고 온 거였는데 결국 그 명성을 직접 경험해 보고자 칼국수를 주문하기로 했다.
메뉴는 매우 소박하다. 잘 담근 김치와 칼국수, 그리고 그 위에 올라간 김과 파 고명이 전부다. 단순한 조합이지만 확실히 맛집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칼국수는 조선시대에서도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나름 역사가 깊은 요리인데 조선시대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책, 규곤시의방에서 '절면'이라는 이름의 면요리가 등장한다고 한다. 물론 칼로 썰어 면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칼국수와 유사하지만, 메밀을 사용하기도 하고, 면을 따로 끓인 후 찬물에 씻어 조리하는 방식이 면을 바로 육수에 넣는 지금의 칼국수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칼로 잘라 면을 만든다는 점에서 칼국수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한국 외에도 도삭면이라고 하는 중국의 요리도 있다. 가끔 이처럼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요리가 비슷하게 발달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의 창의력은 생각보다 특별한 게 아니라, 비슷비슷한 수준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친구는 한 그릇을 다 못 비워내던데, 난 거뜬하게 비워냈다 하핫. 심지어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망원시장은 칼국수 말고도 닭강정, 족발, 호떡 등 유명한 게 많다. 다 먹어볼 순 없지만 최근 계속 먹고 싶던 호떡만큼은 먹으러 가야지!
아주 잠시, 오레오, 치즈닝 등 현대적인 입맛의 호떡에 유혹당했다. 하지만 내가 요즘 계속 생각했던 건 바로 씨앗 꿀호떡. 오픈시간에 맞춰 가게를 찾아가니 슬슬 줄을 서기 시작했다. 다행히 길진 않아서 몇 분 기다렸다가 입장. 만들어놓은 호떡을 가위로 잘라 그 안에 씨앗을 마구 담아준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면..
입구를 배어물 때부터 많은 것 같다 했는데, 중간쯤 되니 씨앗이 이만큼이나 들어있다. 중간중간 설탕 같은 달달한 맛도 씹힌다. 이미 꿀이 발라져 있는 상태여서 여기에 씨앗과 설탕 같은 입자가 더해지니 달달함이 두 배다. 오리지널을 선택한 친구는 너무 달다고 했지만, 나는 씹히는 식감의 씨앗을 같이 먹어서 그런지 아님 그냥 내 입맛 자체가 달달함을 좋아해서인지 맛있게 잘 먹었다. 겨울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간식이 호떡인데 근래 들어선 맛있는 호떡을 찾아보기가 참 힘들다. 그런데 이 집은 진짜, 정말 맛있었다. 튀김도 너무 기름지지 않으면서 바삭했고, 달달한 맛이 호떡 안 쪽에 스며들어 있어서 꿀이 새는 느낌이 아니라 튀김옷에 배어있는 달달함이었다. 호떡을 먹다 보면 안에 있는 꿀이랄까, 설탕시럽이랄까, 어쨌든 달달한 액체가 튀어나와 여기저기 묻기 마련인데, 이 호떡은 그렇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대신 씨앗이 넘쳐흐르긴 했다..!)
시장 한켠, 한적한 곳에 위치한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업을 하기 시작한 이후 이렇게 작은 가게라도 장사하시는 분들을 보며 존경심 섞인 시선을 갖게 된다. 특히 월급을 줄 직원이 있는 경우! 매달 직원들한테 나가는 돈을 감당하는 것도 대단하고, 누군가에게 일을 넘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워가면서 사람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존경심을 갖게 된다. 언젠가 나도 지금의 1인 규모가 아닌 그 정도의 규모로 사업체를 운영해 볼 수 있을까?
오늘은 원래 비가 온다고 했었다. 하지만 막상 집을 나설 때 보니 비가 거의 그친 상태다. 그 전날 비가 오는데 망원시장을 갈 수 있을까, 약속을 취소해야 하나 걱정했던 게 무안할 정도다. 나는 최근 사업을 그만두고, 심지어 이사도 준비 중이다. 부천에서 일산,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위치다. 20대 전부를 부천에서 보냈고, 가족들도 이곳에 있지만, 난 여러 이유들로 지금의 이곳을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설렘도 있지만 불안감도 굉장했다. 살면서 무속인을 찾아가 본 건 3번쯤 있는데, 그중 2번이 지난 1달이었다. 그만큼 미신에 기대고서라도 불안감을 줄이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거다.
하지만 사실 미래를 걱정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고 모든 현인들은 말했다. 그들의 말을 머리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받아들이는 건 어려웠다. 특히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일은 늘 걱정이 앞선다. 사업을 정리하는 달엔 그 불안감이 가장 높아진 시기였는데, 오히려 모든 일을 정리하고 여유를 갖고 둘러보니 불안감은 조금 잦아든 것 같다. 내일을 걱정하는 건 내게 불편한 마음을 안겨준다. 그에 쏟는 에너지를 오늘의 나의 행복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 휴일이지만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 비가 많이 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비는 일찍 그쳤고, 덕분에 우리는 평소보다 한산한 망원시장을 걷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시작을 - 나의 새로운 사업과 친구의 새로운 가정을 - 응원했다.
내일의 문제는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나는 나의 행복과 내 삶의 가치를 위해 집중하기로 다짐하며, 오늘 하루도 맛있는 음식으로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가져본다. 오늘 아침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