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스럽게
식사를 하느라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숙소 근처에 대형버스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가이드분을 만나게 되었다. '몽골 메이트'라고 적힌 검정 티셔츠를 입은 한국인 가이드 분은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성으로, 웃는 모습이 선하게 느껴지는 분이셨다. 숙소에서 캐리어를 옮기는 것을 도와주시며 가이드 분은 오전에 있었던 몇몇 해프닝을 이야기하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버스에 몸을 싣고 몇 번의 숙소를 더 돌며 다른 여행객들과 합류했고, 그렇게 1시간 만에 뒤늦게 합류하는 1명을 제외하고 9명의 여행인원들이 모두 모이게 되었다. 혼자 참여한 만큼 동떨어지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모이고 보니, 오히려 같이 참여한 사람은 한 쌍의 남녀 커플 뿐이고 모두 혼자 온 여행객들이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인원이 버스에 오르자 가이드 분은 자신을 '한국 팀장 ㅇㅇㅇ'으로 소개했고, 함께 있던 다른 가이드 분을 '몽골 팀장 ㅇㅇㅇ'으로 소개했다.
정말 한국인 같다라고 생각했던 몽골팀장님은 사실 몽골인으로, 어릴 때 한국으로 유학을 가서 수능까지 치렀다고 했다. 지금은 몽골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아버지라고 하는데 한국팀장님 말로는 몽골에서는 꽤 유명한 인플루언서시라고. 어쨌든 그렇게 두 팀장님들과 함께 여행을 시작했는데 첫 날 일정은 두 팀장님들이 소개한 것처럼 본격적인 승마캠핑투어에 앞서 몽골의 대표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간단사원은 몽골팀장님의 소개에 따르면 남방불교-티베트불교-식 사원으로 몽골을 대표하는 사원이자 몽골 최대 규모의 사원이라고 한다. 내부에는 27m의 관세음보살상이 있는데 남방불교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소리를 듣고, 고통과 어려움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불교에서는 가장 대중적이고 사랑받는 대상이라고 한다. 사원 내부에는 관광객 뿐 아니라 현지인도 보였고, 무엇보다 승려들도 많이 보였다. 승복을 차려입은 승려들도 다른 방문객과 똑같이 기도하고, 관세음보살상 주변을 돌며 기도를 했다.
내가 특히 흥미롭게 본 것은 바로 이 마니차라고 부르는 기구였다. 이 통에는 경전의 내용이 담겨있는데, 글을 모르는 중생들을 위해 만든 것으로 이 통을 한바퀴 돌리면 그게 곧 경전을 한 번 읽는 게 된다고 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것이 있는데 바로 '윤장대'라는 것이다. 언젠가 불교에 이런 도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이번 여행에 꼭 한번은 해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기회가 온 것이다. 마니차는 관세음보살상 주변을 따라 길게 세워져 있는데, 난 굳이 그 모든 마니차에 손을 대고 돌려보며 소원을 빌어보았다.
그렇게 사원을 나와 또 한참을 버스에 몸을 싣고 달렸다. 한참 달리는 차의 창밖을 바라보니 도시의 풍경은 점점 고속도로가 되고, 종국에는 그저 초원 한 가운데에 놓인 하나의 차로로 바뀐다. 가도 가도 그저 초원만 창 밖에 펼쳐져 있는데 그 풍경이 지루해지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또 한참을 달리니 저 멀리 칭기즈칸의 동상이 보인다. 역시 몽골에 오기 전 들었던 기억이 있는 장소라 저기가 우리의 목적지구나! 눈치챌 수 있었다.
몽골팀장님에 따르면 칭기즈칸은 몽골인에겐 이순신 장군 같은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죽기 전, 그는 자신의 무덤이 파헤쳐질 것을 걱정하여 자신의 무덤에 어떠한 표식도 남기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몽골인은 어디에서도 칭기즈칸의 발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2006년, 몽골에서는 칭기즈칸을 기념할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바로 이 40m의 기마상을 완공했다고 한다.
내가 이번 여행을 떠나오면서 다짐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몽골초원을 달리는 칭기즈칸이 되자!" 였다. 그러니 이 곳에서 기를 많이 받아가자! 생각했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가니 거대하긴 하지만 사실 뭔가 크게 감동으로 와닿는 느낌은 없다. 동상의 말 머리 부분에 전망대가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결국 계단을 통해 전망대에도 올랐다.
솔직하게 말하면 뭔가 대단한 것은 없었다. 이번 여행은 내 인생 첫 패키지 투어였는데, 확실히 나는 이렇듯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며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코스는 나와 맞지 않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매우 편하긴 했지만 감흥이 없달까. 아마 난 정해진 일정에 따라 유명 관광지를 가기보다 이름 모를 골목을 돌아다니며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가게에 들어가거나 카페에 앉아 현지인들의 삶을 엿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두 분 팀장님들의 말처럼 그 두 번의 관광지는 우리 일정 중 유일한 관광지였다. 그 후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어느 순간 차로는 비포장도로가 되었고, 찻길 주변을 무심하게 걸어다니는 동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또 한참을 달려 우리는 우리의 첫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문명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