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공을 타고 오프로드를 시작하다
한국에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때가 종종 있는데, 희한하게 여행지에서는 눈이 빨리 떠진다. 몽골에서 제대로 잠을 못 자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난 전날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어버렸다. (같은 숙소를 지낸 언니 말로는 10초도 안되어서 잠들었다고..) 다음날 일어나 보니 일행들 모두 간밤에 썼던 매트리스가 얼마나 우수(!) 했는지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보아 아마 첫날의 밤을 편안하게 보낸 건 나 혼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간단하게 고기죽과 식빵 등으로 아침식사가 주어졌다. 간단하게 씻고 나와 다음 일정을 기다리며 초원을 바라본다. 난 당연히 전날 타고 온 핑크색 버스를 타고 여행의 출발지점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참을 바라보던 초원의 끝에서 모랫바람을 휘날리면서 달려오는 미니밴이 보인다. (거친 드라이빙이 마치 매드맥스의 한 장면 같았는데, 너무 빨리 이동한 바람에 사진으로 남겨놓지 않은 게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사실 몽골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이 푸르공이다. 보통 몽골을 여행하게 되면 자동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사막이나 테를지 국립공원 같은 곳을 방문하게 된다. 이때 많이 선택하는 게 푸르공이다. 좀 더 편한 자동차들도 있다고 하는데, 귀여운 디자인 때문인지 아니면 외모와 달리 오프로드에 특화된 능력 때문인지 몽골 여행하면 당연히 웃돈을 주더라도 푸르공을 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심 이번 여행에서 푸르공은 포기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픽업하려고 온 푸르공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여행을 하는 일행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한국에 돌아와 찾아본 정보를 조합해서 첨부하자면, 푸르공은 1965년에 처음 생산된 러시아의 차량으로, 원래는 군용차로 생산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소련의 군용 차량에 달던 엔진을 기반으로 제작했는데 값은 싸고 주파능력이 좋아 현재까지도 오프로드밴으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푸르공이라는 이름이 차의 정식이름은 아니고, 몽골에서 부르는 이름인데 러시아어로는 '아빠의 품'이지만 그냥 '밴'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생각보다 낭만이 없는 이름이었다).
각자의 짐을 챙겨 푸르공에 다가갔다. 첫날 우리와 함께해 주었던 두 분 팀장님들은 우리 기수는 일정이 맞지 않아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한다고 했다. 대신 우리의 여행을 도와줄 새로운 가이드님들을 소개받았다. 한국어에 능통한 '오치로'와 몽골에서는 여행 쪽으로 유명한 인플루언서라는 '바가'. 아무래도 한국인 가이드가 없는 셈이니 좀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지만,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베테랑이라 여행 끝까지 믿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새로운 가이드들과 아직은 조금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두 개의 푸르공에 나눠 타게 되었는데, 여행 전 푸르공의 승차감이 매우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과 달리, 내가 예민하지 않기 때문인지 실제로 우리 차가 좋았던 건지, 차 자체에 쿠션감이 있어서 못 타겠다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확실히 차로를 벗어나니 본격적인 오프로드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차체에 몸을 맡기며 가면 된다. 어려울 건 없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면 중간중간 여러 이벤트들(?)이 발생한다. 가령 별생각 없이 가다 보니 기사님의 기어가 노란색 꼭지가 달린 드라이버라는 사실을 깨닫는다거나, 차가 오거나 말거나 길에서 벗어날 생각을 않는 굳센 심지의 동물들을 만난다거나.
사진 속 저 녀석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비키지 않았는데, 기사님도 개의치 않고 쿨하게 액셀을 밟으셔서 우리 모두 순간적으로 겁에 질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범퍼에 닿기 전 유유히 일어나는 녀석에게나, 아슬아슬하게 동물의 몸을 비켜 차를 운전하는 기사님에게 이런 건 그냥 일상인가 보다. 그러니까 이런 걸로 심장이 떨어지는 건 서울에서 온 촌뜨기들 뿐이었다. 몽골인 기사님과 가이드 '바가' 그리고 우리의 여행 중 음식을 담당해 준 셰프 '바기'는 비명을 지르는 우리를 보며 낄낄댄다.
길을 가다 보면 초원 중간중간에 이런 긴 막대기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바가의 설명에 따르면 저 나무막대기는 하늘을 향하도록 세워지는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으로 종교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특히 파란천이 기둥에 묶여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하늘신을 상징한다고.
오른쪽의 돌무더기는 '어워'라고 부르는데, 한국의 서낭당과 비슷한 개념으로 여행의 안전과 소원을 비는 곳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돌무더기 위에 돌을 올리고 소원을 빈 뒤 시계방향으로 어워 주변을 3번 돌면 된다고 한다. 물론 난 이런 풍습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신기하게 바라보기만 했는데, 문득 돌무더기 위에 놓인 나무기둥 위에 털뭉치에 호기심이 일어 '바가'에게 물어보니 말꼬리라고 한다. 죽은 동물의 신체부위라고 하니 왠지 섬뜩한 기분이었는데 어떤 곳은 말의 두개골을 올려놓기도 한다니... 말꼬리인 게 다행이었다고 해야 하나. '어워'는 종교적인 의미뿐 아니라 초원에서는 이정표 역할도 한다고 하니 실용적인 의미도 있는 셈이다.
그렇게 다시 한참을 달리는데, 또 하나의 이벤트가 발생했다. 푸르공의 바퀴가 진흙탕에 빠져버린 것이다. 진정한 오프로드 여행의 시작이요, 어드벤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