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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Jun 16. 2020

안녕 로마, 또 만났네!

소원을 들어주는 분수는 진짜로 소원을 들어줘

남유럽 간다고 하면서 이탈리아를 방문하지 않으면 또 섭하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억지로 로마를 2주 빡빡한 일정에 끼워넣을 필요는 없었을텐데 싶지만...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이게 다 트레비 분수 때문이다.


영험한 분수

트레비 분수에 던지는 동전의 효험을 묻는다면 내가 바로 그 산 증인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10살 꼬맹이는 고등학생이 되어 여름에, 그리고 스물이 훌쩍넘은 어느 겨울에 다시 로마를 찾게 된다.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 던지는 법을 알려드리자면, 먼저 오른손으로 동전을 잡는다. 그리고 트레비 분수를 등지고 왼쪽 어깨로 동전을 던져 넣는다. 제일 왼쪽 사진에서 꼬마가 던지고 있는 모습을 따라하면 된다. 전설에 따르면 분수에 동전을 던져넣는 갯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데, 1개를 던지면 로마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하고 2개를 던지면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3개를 던지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소원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 외에도 2개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게 되고, 3개 던지면 싫어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된다든가 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나는 그냥 간편하게 소원을 빈다는 의미로 맘대로 믿어버렸다.

  트레비 분수는 내게 꽤 효과가 좋은 편으로 현재까지 100퍼센트 퀘스트 달성률을 자랑한다. 2003년에는 2개의 동전을 던져서 소원을 빌었는데 당시 나를 몇년 째 괴롭히던 짜증나는 아토피를 낫게 해달라고 빌었다. 아토피는 거짓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완치됐으니까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2011년에는 날이 너무 더워서(...) 하나만 후딱 던져 넣고 젤라또를 먹으러 가버렸는데, 그 효험(?)으로 이번에 재방문하게 됐으니 제법 능력있는 분수인 것 같다.

  이번에는 동전을 몇 개 던질까 고민하다가 1개만 던지고 나왔다. 소원은 결국 미래에 더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나를 꿈꾸면서 비는 건데, 직장인이 된 뒤에도 로마에 다시 올 수 있다면 퍽 좋은 인생을 살고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다음에 로마에 다시 오게 되면 2개를 던져서 정말 기똥찬 소원을 빌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로마, 고전의 고전


  고전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저 고전(Classic)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오래된 예술을 상상해보자. 최초의 문명, 최초의 예술가들은 그 선례가 없기 때문에 우왕좌왕했을 것이다. 몇 번의 실수가 쌓이다 보면 슬슬 이게 뭐하자는 건지 대충 알겠다 싶은 순간이 오고, 어떤 천재적인 예술가가 나타나 고전을 정립하게 된다. 그렇게 고전은 그 분야의 '클래스(Class)'를 정하는 기준이 된다. 아주 처음은 아니지만 나중도 아닌, 초창기 어느 시점에 만드는 이데아 같은 것이다. 고전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갖출 건 다 갖춘 순수하고 정직한 매력이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뭣도 모르는 갓난쟁이는 아니고, 사춘기로 넘어가기 전 어느 정도 사리분별이 되는 깜찍한 어린아이 같은 느낌? 그 누가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어린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로마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후 수많은 문명들이 로마를 추구했고 순수하고 완전한 그 시대로 돌아가기를 꿈꿨었다. 솔직히 그런 황당한 꿈을 꾸는 정복자들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로마를 방문해보면 그게 어떤 마음인지 어렴풋하게 이해가 된다. 로마의 건축들은 "아 이게 로마의 '클라쓰'구나..."하는 감탄을 자아내는 웅장함이 있다. 엄청난 규모의 경기장, 둥근 천장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신전, 우뚝 서서 천년을 버텨낸 기둥 등등 사람을 압도하는 로마의 기운은 과연 무수한 왕과 정복자들이 탐낼만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어린아이에 비유한 게 조금 민망해진다. 하여튼 로마는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소리다.



웅장한 로마가 귀여워지기까지


이게 누구랬더라... 여튼 내 친구는 멋있어...

  같이 여행을 온 내 친구도 로마의 광팬이었는데, 우리의 짧은 여행 기간 중 굳이 로마를 끼워넣게 된 이유도 친구의 팬심에 있었다. 이탈리아까지 와서 로마만 며칠 보고 돌아간 여행자는 아마 우리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친구의 팬심을 넘어선 덕심(?)의 덕을 톡톡히 봐서 비행기표값이 아깝지 않았다. 거리에 선 조각상들을 보면서 이게 무슨 시대의 어느 황제고 어떤 장군인지 턱턱 짚어내는 친구 덕분에 지난 두번의 여행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로마를 구경할 수 있었다.

  내게 로마는 문명이었지,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친구에게 로마는 문명이기 전에 황제의 이야기였고, 때로는 더 작은 인물들의 미시적 역사였다. 친구는 황제와 장군과 여자와 노예, 심지어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위대한 로마의 이야기는 의외로 너무 소소해서 여행이 끝나고 나니 금새 다 까먹었지만 그 이미지는 남았다. 내게 로마는 거대한 건축물의 이미지로 자리하고 있어서 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느낌이었는데, 사람들이 치고 박으면서 전쟁과 토론과 정치(때로는 치정)싸움 끝에 만들어진 문명이라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친근해졌다.

가기 전에 그린 콜로세움. 내가 생각한 로마의 이미지는 이런 웅장함이었다.

  이번엔 로마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른 작은 기념품샵에서 깜찍한 동전들을 두어 개 샀다. 지난번에는 콜로세움 자석 같은 걸 샀던 것 같은데, 요번에 산 동전들에는 이름 모를 인물의 흉상이 박혀있었다. 친구한테 물어보니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로마 덕후인 내 친구도 모르는 별볼일없는(?) 로마인의 작은 동전이 손 안에 들어오니까 로마가 한층 더 친근해졌다.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로마가 아니라 동전 얘기다.

작고 귀여운 동전. 1유로보다도 작다. 돌아오는 길에 하나 잃어버린것까지 완벽하게 하찮은 동전이다.



분수의 힘을 믿으며


  첫 번째 방문 땐 뭘 모를 나이라 우와~하다가 돌아갔고, 두 번째 왔을 땐 로마의 웅장함을 느꼈는데 세 번째 여행에선 뜻하지 않은 귀여움을 알게 되었다. 다음에 찾아오게 되면 또 어떤 로마의 모습이 나를 반길지 기대가 된다. 영험한 분수에 동전을 야무지게 던져 놓고 왔으니 틀림없이 로마에 돌아올 기회가 생기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믿는다 트레비 분수! 할 수 있지?!




※이 글은 2018년에 다녀온 여행을 기반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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