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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Sep 06. 2021

나쁜 공무원이 되기 싫었는데

그렇다고 영혼없는 공무원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사람들은 공무원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갖고 있다. 이렇게 운을 떼면 그 편견이 다 틀리다고 말하려나보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는 그 편견 중 일부는 제법 정확하다고 고백하고 싶다. 예를 들면 공무원은 책상에 앉아서 보고서나 쓰는게 일이라든가 하는 편견들 말이다. 뭐,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게 쓸모 있냐 없냐는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바와 같이, 공무원의 업무는 페이퍼와의 싸움이다. 누군가는 보고서의 미학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탁상행정이라고도 하는 게 사실은 우리 업무의 본질이다. 개인적으로는 가변적이고 비논리적인 현장을 체계화된 이론에 끼워맞추는 것이 공무원이라고 생각한다. 나쁜 공무원이 하면 현장을 무시하고 '예쁜' 보고서 작성에 치중하다보니 탁상행정이 되는 거고, 좋은 공무원은 현장의 어려움을 감안해서 윗사람에게 설득력있게 보고하고 필요한 예산을 따내기 때문에 보고서의 미학을 실현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초짜 사무관인 나는 어떤 공무원이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도저도 아니었다. 그냥... 과장님이 시키는대로 하는 로봇에 가까웠던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그래, 영혼없는 공무원이라 하겠다.




  초임 사무관 시절, 나는 작은 과의 말단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내 감상을 한 줄 요약하자면, '국가가 이런 식으로 굴러가도 되는가?'였다. 그 때 나는 아는 거 하나 없고,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이었는데, 내게 주어진 업무는 정말 엄청난 재량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 하나 클릭할 때마다 손이 발발발 떨렸다. 이래도 되나? 나한테 이만큼의 권한을 줘도 되나? 나는 그냥 학부졸업하고 시험 하나 잘봐서 여기 앉아있는 애일 뿐인데? 내가 실수하면 어떡하려고 그러지? 우리회사, 아니 우리나라... 이대로 괜찮은가? 그리고 나의 걱정은 머지 않아 아주 간단히 해결되었다. 국가는 그런 식으로 굴러가도 되었다. 초년차 사무관들은 다 삽질을 한다. 하지만 신입들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과장님이 그 삽질을 다 커버해주시기 때문에 웬만한 실수로는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 

  나도 꽤 많은 삽질을 했지만 그 실수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하루종일 쫄아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때 내가 느꼈던 불안감, 걱정, 스스로에 대한 불신의 감정만이 또렷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과장님께서 명확한 지시를 내려주셨을 때의 그 안도감까지. 아는게 없을 수록 과장님에 대한 나의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긴가민가할 때는 과장님께 쪼르르 달려가 의견을 여쭙고, 그대로 보고서에 담았다. 그래서 나는 내 의견이 없는, 영혼없는 공무원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처음으로 과장님과 의견이 다른 경우가 있었다. 현장 담당자와 통화했을 때 전달받은 내용을 고려하면 A안이 타당한데, 과장님은 B안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이었다. A를 담은 보고서를 들고 갔을 때, 과장님은 B를 지시하셨고, 평소 같으면 B로 수정했을테지만 그 때는 좀... 뭔가 많이 아닌 것 같았다. 바야흐로 아는게 조금 생긴 공무원이 된 것이다. 과장님께 처음으로 반론을 제기했을 때, 과장님의 얼굴에는 내가 처음 보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과장님은 살짝 당황스러우면서도 조금 기분이 좋기도 하셨던 것 같다. 결국 몇번의 고민과 논의 끝에 A안으로 최종 통과가 되었을 때 과장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김 사무관, 내가 괜히 시비 걸어서 미안해요~"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아니라고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답했는데, 별 대답없이 씩 웃으시면서 커피한잔 하러 나가시는 그 쿨한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 과장님은 정말 멋진 상사셨다.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영혼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습관적으로 과장님께 대들기(?) 시작했다. 일단 몇번 비벼보고 그래도 과장님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면 시무룩해하면서 보고서를 고치고, 가끔 과장님이 내 논리를 받아주시면 신이 나서 최종안까지 통과시킨 후에 현장 담당자에게 전화를 거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 때 나는 내가 제법 좋은 공무원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기고만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는게 많을 때보다 조금 아는게 있을 때 자신감이 솟구친다고 했던가, 나는 그 때 딱 그 정도였다.

  그러다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현장의 상황을 고려한다고 담당자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고서에 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걸 주장한 보고서였었다. 현장 상황을 최우선한답시고 기초적인 논리를 놓친 셈이었다. 과장님께 아주 크게 깨졌다. 과장님께 깨지면서 혼났다는 충격보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더 컸다.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나는 내가 좋은 공무원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사실은 쓸모없는 소리를 하는 나쁜 공무원이었구나.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서도 잘못한게 있으면 어떡하지? 내가 현장의 소리를 듣는다고 노력한게 사실은 목소리 큰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내 손을 거쳐간 그 수많은 제도들은 다 괜찮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에 며칠간 심란했지만 별 수 있나, 업무는 계속 밀려왔고, 나는 계속 보고서를 써야 했다. 다만 더 섬세하고 신중하게 살피게 되었다. 현장 담당자가 하는 말을 모두 믿지도 않았고, 과장님께 제기하던 습관적 반론도 자제했다. 과장님은 지난 일을 가지고 책망하시는 분이 아니셨고, 여전히 전과 같이 내 보고서를 검토하시면서 일부 의견은 받아들이고 일부는 기각하셨다. 다행히 그 때처럼 바보같은 실수는 다시 반복하지 않은 덕분에 내 심란함으로부터도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 있었다.

  만약에 그 때 과장님이 쿨하지 않으셨다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과장님은 그 이후로도 나를 전과 똑같이 대해주셨다. 처음에는 실수에 괜히 찔려서 반론을 하기가 조금 머뭇거려졌는데 과장님은 마치 그 일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행동하셔서 나도 그냥 평소처럼 행동하게 됐다. 당연히 그 이후로도 다른 실수를 몇 번 했다. 하지만 과장님은 그 때마다 짧게 지적하시고 별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으셨다. 만약에 그 이후로 과장님께서 그 일을 다시 언급하시거나 불신의 태도를 보여주셨다면 나는 아마 다시 영혼없는 공무원처럼 굴었을 것이다. 과장님의 지시에 부합하는 보고서만을 쓰고, 윗선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수용했을 터이다. 하지만 쿨한 과장님을 만난 덕분에 나는 내 의견을 뚜렷하게 말하는 공무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때때로 나쁜 공무원이 되었다. 삽질도 하고 실수도 할 때마다 나쁜 일을 하나씩 저지르게 된다. 영혼 없는 공무원은 좋고 나쁜 게 없다. 굳이 따지자면 그 윗선이 좋고 나쁜거지... 뭔가 영혼 있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할 때, 의식적으로 개입하게 되니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는 거다. 뭔가 삽질을 하나씩 할 때마다 아, 그냥 윗분들이 시킨대로 할걸,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 때마다 쿨했던 우리 과장님의 시비걸어서 미안했다는, 칭찬인지 사과인지 모를 그 한 마디가 자꾸 아른거린다. 개입하지 않는 건 쉽다. 사실 사무관의 힘으로는 개입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러면 나는 대체 왜 이 월급을 받는 것이며, 사무관으로써 무슨 역할을 하게 되는 걸까? 정말 그냥 조직의 톱니바퀴만 해서 자리만 채워주면 되나? 나는 한낱 톱니바퀴일지라도 남들보다 부드럽게 굴러가고, 아주 가끔은 조직의 작동을 멈추게 해보고도 싶다. 그래봤자 톱니바퀴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 언젠가 나도 그냥 톱니바퀴가 아니고 잘못 끼워진 부품도 아닌, 괜찮은 제동장치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그건 먼 미래의 꿈이고, 지금의 나는 일단 정말 좋은 공무원이 되고 싶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가끔 나쁜 공무원이 된다. 이 딜레마는 어떻게 해결해야 될 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영혼없는 공무원이 되기는 더 싫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공부해서 아는게 많은 공무원, 실수를 줄이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완벽하게 좋은 공무원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 애를 써보는 수밖에. 내일은 좋은 공무원이 되는 하루이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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