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괴짜분석가 Jul 11. 2019

[책리뷰] 팩트풀니스

Far From Fact

이 책의 메인 저자 한스 로슬링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며 대표적인 강연이 다음의 TED 강연입니다.

https://www.ted.com/talks/hans_rosling_reveals_new_insights_on_poverty?utm_campaign=tedspread&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이 강연의 포인트는 책에서 '물방울 도표'라고 소개한 연도별로 움직이는 bubble chart, 그리고 강연 마지막에 칼을 목구멍으로 넣는 서커스입니다. 서커스에 대한 팁이 책에 있는데도 다시 영상을 보면 불가능한 일 같습니다. 저자는 편견, 무지와 맞서 싸우기 위해 이런 서커스를 강연 마지막에 했다고 하네요. 위 영상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I will now prove that the seemingly impossible is possible
보기에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이 유명한 의사이자 스타강사인 분이 암 진단을 받고 여생 동안 몰두해 만든 책이 팩트풀니스이고, 객관적이면서 따뜻하고 감동적인 책이었습니다. 빌게이츠가 미국 모든 대학 졸업생에게 선물한 책으로도 유명한데, 저도 다 읽고 나서 세상 모든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영화 보셨나요? 이번 스파이더맨 영화를 꿰뚫는 하나의 주제/교훈이 있다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쿠키영상까지 이걸 다시 상기시켜주죠. 마찬가지로 팩트풀니스의 주제/교훈이 있다면 "너희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입니다. 영화에서는 피터 팅글 (피터 찌리릿)으로 문제를 해결했고, 책에서는 꾸준히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라는 얘기를 합니다.

팩트풀니스는 한글로 '사실충실성'이라는 말로 번역되었는데,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태도/관점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평소에 "팩트를 체크해라" 같은 말을 하는데, 이런 팩트 체크를 생활화하는 것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총 10가지의 본능이 우리를 사실에 충실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는데, 그 10가지는 각각 간극 / 부정 / 직선 / 공포 / 크기 / 일반화 / 운명 /단일 관점 / 비난 / 다급함 본능입니다. 이 본능들에 대해 가볍게 정리하면서 제 생각들을 남기겠습니다.



간극 본능


한국은 선진국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다방면에서 국제적 위상이 선진국 범주에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선진국 외엔 뭐가 있죠? 선진국에서 '선'의 반대말이 '후'니까 후진국이 있죠. 후진국은 뉘앙스가 좋지 않아 '개발도상국'이라는 명칭으로 불립니다. 결국 세계는 정말 몇 안 되는 소수의 선진국과 다수의 개발도상국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친구가 어떤 나라로 여행 간다고 했을 때 선진국이라면 '좋겠다! 기념품 사와!' 같은 반응일 테지만, 개발도상국에 간다고 하면 같은 반응이 잘 나오지 않죠.

이게 우리가 세상을 (잘못)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세상을 둘로 나누어 선진국 - [좁힐 수 없는 간극] - 개발도상국으로 바라봅니다. 몇몇 지표에서 과거 두 집단 사이에 간극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이제는 더 이상 명확하게 나누기 어렵고, 개발도상국에 속해도 생활 여건은 우리의 고정관념에 비해 훨씬 좋습니다. 저자는 더 이상 둘로 나누는 세계관은 의미가 없고, 나눌 거면 달러 기준으로 4단계로 나눠 보자는 주장 (달러 스트리트)을 합니다. 당연히 우리는 4단계에 살고 있습니다. 4단계로 나누면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1) 1, 2단계의 비율을 점점 낮아지고 3, 4단계는 높아지는 흐름에 있으며, (2) 1단계는 영원히 1단계, 2단계는 영원히 2단계가 아니라 발전 가능하고 (실제로 발전해왔고)  (3) 단계가 높아질수록 발전하기 더 쉽다는 사실입니다.



부정 본능


우리는 세상이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경제는 매년 안 좋고, 취업은 매년 힘들고, 정치는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프리카에는 밥 못 먹어 죽는 아이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제가 성장하는 동안 경제가 안 힘들다고 한 적은 단 한 해도 없었습니다. 내년에도 우리는 (실제 지표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얘기할 것이고, 10년 뒤에도 같을 것입니다. 이것이 부정 본능이며, 이런 본능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가 계속해서 안 좋아진다고 믿게 합니다. "옛날이 좋았는데..." 하는 것은 "(옛날의 기억 중에 안 좋은 기억, 평범한 기억 모조리 빼고 좋았던 것만 기억하면) 옛날이 좋았다"의 줄임말입니다. 대체로 좋은 것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나쁜 것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물론, '좋아지고 있다 = 좋다' 식은 성립하지 않죠. 저자는 스스로를 '가능성 옹호론자'라고 얘기합니다. 이유 없이 희망을 갖거나 이유 없이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낙천주의가 아니라 객관적 정보로 더 좋아질 가능성을 믿고 노력한다는 의미죠. 근거 없이 불만만 있는 사람, 아무 이유 없이 긍정적인 사람보다는 가능성 옹호론자가 더 낫지 않나요?



직선 본능


다른 본능에 비해 와 닿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과거 흐름이 직선 형태로 계속 유지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고 대충 1년에 0.1명 꼴로 줄어들고 있으니까, 2019년에는 0.88명일 것이고, 2030년에는 마이너스 출산율일 거라고 예상하면 안 되겠죠? 이렇게 쉬운 문제에는 직선 본능이 약하게 작용할지 몰라도, 다양한 상황에서 직선 본능은 우리를 속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눈대중으로 직선을 만들거나 연장하지 말고, 다양한 곡선 형태가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고 문제를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공포 본능


'공포 마케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포심에 소구해서 많이 팔겠다는 거죠. 공포 본능이 한 번 발동되면 우리는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렵습니다. 핵미사일은 정말 무섭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 사람들을 죽인 건 일반 자동차가 더 많습니다.

저자는 공포 대신 '위험'을 두려워하라고 얘기합니다. 공포 본능은 가장 무섭지만 위험하지 않은 것들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이성의 끈을 붙잡고 위험한 것에 주목하고 수치를 따져보자고요.



크기 본능


2016년 한 해 동안 420만 명이나 되는 아이가 죽었습니다. 왜 우리는 아이들의 죽음을 방치하는 걸까요? 

우리는 이렇게 큰 수에 속임 당합니다. 사실 2016년 아이 사망자 수는 지난 다른 해와 비교하여 가장 적었습니다. XAI 논문을 정리했을 때, 대조를 통해 설명하라고 했었죠. 사람은 한 숫자만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어려운 동물입니다. 그런데 제가 420만 명이나 죽었다고 하니 대충 나쁜 거구나 하고 넘어갔겠죠.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사람의 뇌는 저 숫자가 크면 혹은 눈 앞에 상황이 발생하면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책에서는 비인도적이고 잔인해 보이더라도 객관적으로는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는 대목이었습니다. 영화 후반에 튜링과 동료들은 에니그마를 풀고도 완벽한 전쟁 승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적군에게 지도록 합니다. 심지어, 튜링의 동료가 자기 형이 탄 배를 구해달라고 하지만 구해주지 않습니다. 정말 비인도적이고 잔인했지만 전쟁 종결을 2년 앞당겼다고 평가받는 업적이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 당장 눈에 들어오는 큰 숫자에 의존해 판단하면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일반화 본능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일 만큼 사람은 일반화를 쉽게 합니다. 범주 나누는 것을 잘하는 우리는 특정 범주가 공유하는 속성이 있다고 쉽게 일반화하죠. 독일인은 맥주를 좋아하고, 일본인은 초밥을 좋아한다고 집단에 속성을 부여합니다. 당연히 독일인 중 맥주를 싫어하는 사람, 일본인 중 초밥을 싫어하는 사람 많을 텐데 말이죠.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굶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해! 네가 급식을 덜 남기면 걔들은 하루 종일 배부를 거야!" 같은 말은 첫째로 60년대 아프리카 얘기이며, 둘째로 아프리카라는 넓은 대륙을 모두 애들이 굶어 죽는 곳으로 일반화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엉터리 범주보다 세계를 4개로 나누는 '달러 스트리트'로 보는 것이 더 좋은 기준이 된다고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운명 본능


'왕은 왕의 운명을 타고났고, 노비는 노비의 운명을 타고났다'라고 누군가 얘기한다면 그 사람에게 거부감이 들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 반하는 생각이니까요. 그렇지만 이건 우리가 학습을 통해 익숙해진 것이고, 어쩌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운명 예찬론자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 중에 종종 유럽 여행을 갔다 와서 "역시 선진국은 다르더라~"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보다 그 나라들이 선진국이라고 얘기할 기준이 애매한데도, 자연스레 유럽을 우리보다 선진국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서구권은 강국의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믿었기에 저런 말이 나온 거겠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미 큰 동아시아 제외한) 여러 아시아 국가와 아프리카 국가들은 성장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힘들게 살 운명이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왕의 운명 / 노비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 없듯이 어떤 국가는 영원히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영원히 가난한 운명 역시 없습니다. 한국이 바로 그 대표적인 케이스죠. 여담으로 이 책에는 한국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외부인의 한국에 대한 관점도 볼 수 있으니 읽어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단일 관점 본능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본능이 휴리스틱과 관련이 있는데, 쉽게 말해 우리는 인지 자원에 있어 편한 생각을 하고 그에 따라 잘못된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관점으로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단일 관점으로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쉽습니다. 심리학이 전공인 사람은 심리학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경제학 전공은 경제학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죠. 그리고 본인의 관점을 제공한 필드에서 금기시되는 것은 악착같이 지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상황을 조심하고, 망치 말고도 여러 연장을 챙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비난 본능


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의 사람을 찾아내 욕 하는 것이 인터넷에서 우리가 하는 방식입니다. 책은 이런 비난 본능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군대식 일처리'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인 사람, 장소를 일차원적으로 제재하는 것입니다. 너무 단순해서 문제지만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죠. 이것이 비난 본능의 문제점입니다. 근본적 원인은 개인보다는 사회, 프로세스, 법률에 있으니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인보다 큰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베, 김정은, 트럼프 모두 상황마다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한국에서 많이 비난받는 개인들이죠. 그렇지만, 왕정 시대도 아닌데 이들이 한 행동들을 온전히 이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기분은 후련할지 몰라도 문제 해결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이는 못한 것 말고 잘한 것에도 적용됩니다. 어떤 회사 CEO가 좋은 성과를 거뒀다면, 어떤 트레이더가 대박을 터뜨렸다면 개인에게 많은 공을 돌리기보다 더 큰 규모에서 변화가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전후로 금융기관들이 성과급 파티를 벌였던 역사가 반복될 뿐입니다.



다급함 본능


홈쇼핑에서 너무 효과가 좋아 2007년에 금지된 말이 있습니다. "매진 임박". 사람을 다급하게 만드는 말이죠. 다급함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잘못된 생각을 유도합니다. 다급함에 호소하는 말이나 기관, 단체가 있다면 일단 경계하는 것이 더 현명한 생각을 도울 수 있습니다.



좋았던 말들


10가지 본능과 별개로 책 곳곳에서 좋았던 표현들 몇 가지 적어보겠습니다.


세계은행과 유엔이 내놓은 흔한 통계가 그래요.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논의하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맞고, 선생님이 틀린 겁니다


사람들은 세계가 점점 나빠진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보기에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생각이 아닌 느낌을 말할 뿐이다


1단계에서는 특히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중심으로 여전히 성별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육 부문에서의 이 같은 발전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이런 발전을 축하하는 것과 더 큰 발전을 위해 계속 싸우는 것은 상충하지 않는다


지식을 업데이트하지 않는 이런 본능이 오늘날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의 모든 혁신적 변화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수치 없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지만, 수치만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겸손과 호기심을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마초적 가치는 아시아의 가치도, 아프리카의 가치도 아니며 이슬람의 가치도 아니고, 동양의 가치도 아니다. 스웨덴에서 60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가부장적 가치이며, 스웨덴에서 그랬듯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라질 가치다. 불변의 가치가 결코 아니다


* 기본적으로 행동경제학 혹은 비슷한 주제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더 이해하기 쉬운 내용입니다. 이론이 발현된 형태가 여기서 말하는 다양한 본능들이니까요. 하지만 이론을 몰라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누구나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책이라 추천드립니다.

* 10가지 본능 자체보다는 그 속에 들어간 여러 자료와 표현들이 정말 알찹니다.

* 처음에 문제가 나오는데 쉬워 보여도 막상 결과를 보면 쉽지 않습니다. 저는 13문제 중 8문제를 맞혔는데, 이 정도면 잘 맞춘 편이라고 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책리뷰]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 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