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민족은 제 생각에 정말 특이한 회사입니다. 브랜드 자체가 사랑받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긴 역사가 필요하고, 역사는 둘째치고 요즘같이 넘쳐나는 브랜드와 서비스 속에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로 보입니다. 사람들은 애플에 미치고, 나이키에 열광하지만 이들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브랜드 자체로 사랑받는 회사들이고 충분한 브랜드 역사를 가졌습니다. 한국에서 네이버, 카카오 같은 서비스는 정말 많이 사용하지만 라이언, 어피치, 브라운은 미친 듯이 좋아할지 몰라도 이 브랜드 자체에 열광하는 것은 최소한 제 주위에서 보기 힘든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배달의 민족은 그 어려운 걸 해냈죠. 지금은 볼 수 없는 것 같지만 배민 마케팅팀에서 일하는 브이로그를 올렸었는데, 브랜딩 강화로 연결되는 활동들을 참 많이 하시더라고요.
마침 브랜딩에 대한 재밌는 설명을 ebs 다큐프라임 - 자본주의 동영상을 보다가 접했습니다. 남녀가 파티에서 만나는 상황에 비유했는데, 마케팅은 직접 "저 돈 많아요" 알리는 행동, PR은 친구가 "저 사람 돈 많대"라고 알려주는 것, 광고는 지속적으로 "저 돈 많아요" 얘기하는 것, 브랜드는 얘기하기 전에 "당신 돈이 많을 것 같아요" 하고 다가오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배달의 민족의 브랜딩이 잘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경쟁사는 판매자가 '우리 배민도 하고, 요기요도 해요' 이런 의도로 올린 글이 대부분인 반면 배민은 배민으로 주문한 음식 인증하는 사진이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이 회사는 어떻게 이런 브랜딩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배민다움'과 '마케터 ___의 일'을 읽어봤습니다. 최근 사건사고가 있었던 걸로 알지만 그런 것과 별개의 내용이며, 요약보다는 인상 깊은 내용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배민다움
김봉진 대표님은 일반적 경영자와 다르게 브랜드 성공을 위해 사업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매출을 위해 브랜딩과 디자인을 쓰는 것과 다르죠. 개인적으로 최근에 북극성 지표 (North Star Metric)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이 내용을 들을 때 김봉진 대표님의 말이 연상됐습니다. 북극성 지표는 모든 구성원이 개선해야 할 딱 하나의 지표를 정할 때 선택될 지표입니다. 당연히 매출 상승은 아니고, 스포티파이를 예로 들면 음악 들은 시간이 북극성 지표입니다. 매출은 이런 선행지표가 잘 달성되면 따라오는 후행지표라는 거죠. 물론 브랜딩이라는 게 정량적 측정이 어렵지만, 김봉진 대표님은 본인들이 만들려는 브랜드가 만들어지면 매출은 따라오는 거라고 사업을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배달의 민족은 손석희보다는 박명수 같은 20대 막내와 잘 지낼 수 있는 친근한 동네 형의 페르소나를 가지려 한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인터뷰를 진행하신 홍성태 교수님의 글귀가 인상 깊었는데, 요약하자면 사람의 성격 같은 페르소나를 갖춘 브랜드가 호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다이소는 값이 싸다', '삼성은 품질이 좋다'는 특징이지만 브랜드의 페르소나가 아니고, '친근한 동네 형 같은 배민'은 특징이 아니지만 페르소나가 있어 호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입니다.
책 내용 중에는 수수료 0%에 대한 얘기가 있는데 잠시 책에서 나와 제 생각을 얘기해보겠습니다. 경쟁사와 배민을 비교할 때 배민을 좋은 회사로 프레임 씌우는 방법 중 하나가 이 수수료 0% 정책입니다. 경쟁사는 소시민 돈 뜯어먹는 나쁜 회사, 외국계 자본으로 프레임이 씌워지죠. 사람은 내가 직접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을 싫어하기 때문에, 배달 앱으로 주문하면 음식점 사장님이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앱에서 상위권에 노출되기 위해 광고비를 태워야 하는 상황에서 때로는 수수료보다 광고비가 더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의 불편함을 이유로 좋은 회사 / 나쁜 회사를 구분하는 것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구나 이해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배민의 키치함과 배민의 철저한 규율 사이에서 오는 역설적인 조화였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일 것 같은데, 창의적인 회사에서 이런 규율이 1번 규칙이라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창의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줬던 아티스트들이 철저하게 짜인 반복된 루틴 속에서 작업을 해왔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런 규율이 창의성을 제대로 이해한 결과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슷한 듯 다른 두가지 버전의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책 내용과 별개로, 저는 배달의 민족의 가장 잘한 활동으로 '배민 신춘문예', '치믈리에 자격시험' 같은 오프라인 활동을 뽑고 싶습니다. 여기서 나온 에피소드들, 주옥같은 작품들 모두 브랜딩에 한몫했지만, 오프라인 접점을 만들어 같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디지털의 확장성은 어마어마해서 차 한 대 없는 우버, 집 한 채 없는 에어비앤비 같은 회사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랜선 친구와 관계가 깊어지려면 오프라인에서 만난 경험이 중요하듯이 IT회사도 핵심 고객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활동이 관계 강화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키치함이 포인트인 배민과 그런 배민 추종자들의 만남이라면 얼마나 유쾌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나왔을지, 그 기억이 어떻게 남았을지 안 봐도 뻔하죠. 이런 게 결과적으로 입소문, 바이럴 같은 형태로 회사에 돌아오니까 신규 고객도 잡고, 기존 고객들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며, 브랜드 가치는 더욱 올라간 것이죠. 세상에 아이돌 팬클럽처럼 팬클럽이 있는 회사가 몇 개나 되겠어요...
마케터 ___의 일
일단 제목부터 읽는 사람이 흥미가 생기게 합니다. 빈칸에 내 이름 석자를 넣도록 의도적으로 비워두고 내 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몰두하게 만듭니다. 이런 배려심은 배민에서 일하는 작가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같은 결인 것 같습니다. 최소한 이곳의 마케팅팀은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구나 느꼈습니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기술적인 내용은 전혀 다루지 않고 마케팅의 키워드가 되는 아이디어들과 뒷받침하는 사례들로 한 권이 완성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울림이 있습니다. 제가 앞서 배민은 정말 특이한 회사 같다고 했죠. 그 이유가 이런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기술은 분명히 효율적이지만 기술만이 성공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배민도 당연히 푸드-테크라고 하는 것에 있어 좋은 기술을 갖췄지만 그게 우리가 경쟁사보다 배민을 많이 쓰는 이유는 아니잖아요.
인상 깊었던 문구들
마케터는 소비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무형을 유형으로 분석해내고, 회사의 이익 계산도 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성 없는 이성은 차갑고, 감성은 즉흥적입니다. 우리, 어느 쪽도 놓치지 말아요. 이성엔 감성을, 감성엔 이성을.
좋은 방법은 '왜'에 충실합니다. 이유가 뭐고 문제가 뭔지 알아야 제대로 풀 수 있습니다. 망치를 손에 쥐고 있으면 못으로 해결하고 싶어 집니다. 본드로 붙이면 더 깔끔하고 튼튼할 것도 말이죠. 수단을 먼저 정해버려서 아쉬운 결과를 내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파는 사람의 생각: 반찬을 팔자. 이번에 새로운 반찬 상품을 계약했으니, 이벤트를 만들고 배너를 걸고 제휴를 하고. 또 어디에 광고를 하면 효율이 좋을까?
사게 하는 사람의 생각: 반찬을 누가 사지? 그 사람들 어디 있어? 왜 사지? 더 사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안 사는 사람들은 왜 안 사지? 그 문제를 해결해주면 살까?
몰입은 사람을 비이성적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비이성적일 때 떠지는 눈이 있습니다. 가성비로만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있죠. 사랑을 아낌없이 주어본 사람이 사랑을 받을 줄도 압니다. 몰입해본 사람이 몰입하게 만들 수 있어요. 놀아본 사람이 노는 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브랜드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 없다면, 자신의 브랜드를 사람들이 진심으로 좋아하게 만들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마케터가 아이돌을 모른다는 건 자랑이 아닙니다.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죠. 모르는 건 별개예요. 아이돌 음악이 취향이 아니라도 요새 유행한다는 곡들은 한 번씩 들어주고, 유튜브에서 방탄소년단 영상도 찾아보며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공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마케팅, 브랜딩 일 하시는 분들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같은 작은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읽어보면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두 책 모두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