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했지만 완전히 행복했던 독서 경험
정유정 - 완전한 행복을 읽고
1. 책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책 소개를 보고 흥미로워 보여서 추천 목록에 넣었다. 막상 선택이 되고 나니 5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해서 내심 걱정이 되었다. 꿋꿋하게 책에 손끝 하나도 안 대다가, 저번 주부터 한 부씩 끼적끼적 책을 읽었다. 지난 일요일에 3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어쩐지 조금 더, 조금 더 읽다 보니 그날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 작년, 1년간 고전문학 클럽에 가입해서 많은 걸 듣고 보고 배운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으로 책을 읽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지만, 웹툰을 볼 때나 웹서핑을 할 때처럼 재밌어서 읽는 것이라는 걸 오래 잊었다. 일단 이 책은 재밌었다. 작가님의 다른 책들을 보고 팬이 된 사람들의 실망한 서평을 몇 개 봤었는데, 이게 그렇게 재밌다면 다른 책은 얼마나 더 재밌는 걸까
2. 재밌었다는 1. 에서 나아가, 책을 다 읽고 나서 처음엔 미묘한 감정도 들었다. 이토록 재밌는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를 파괴하는 사이코패스의 무자비한 도륙과 살인 이야기였는데, 나는 이 긴 시간 이 책을 읽고 어떤 메시지를 얻었나? 하고. 그리고 바로 잔혹하고도 매혹적이고 재미있는 그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을 떠올렸다. 모든 것에 메시지가 필요하진 않은 거다. 책이라고 꼭 교훈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나도 모르게 교훈을 찾거나, 무언가를 배운다는 부담 내지는 강박을 가졌던 것도 같다.
3. 그럼에도 나름 얻은 건 있었다. 나는 물론 유나처럼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내 뜻대로 행동하도록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행동을 보고 찔리는 포인트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상대방(이상하게 연인에겐 좀 박함)에게 실망을 하거나 싸움을 하고 나면 상대방으로부터 떨어져 있고 싶고, 그래서 전화를 끊자고 하거나 집에 가고 싶어 하는데, 잘못하면 그것이 상대방의 불안을 촉발하고, 그런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답을 하고, 그것이 그에게 굴복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물론 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한 적이 없고, 실제로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우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건 내 의식 차원의 생각일 수 있으니). 나의 회피형 성향을 되돌아보고, 상대방과의 거리가 필요하다면 상대방이 불안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 주고, 때로는 그럼에도 널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직간접적으로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요즘도 무언가 언짢은 일이 있고 그만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때가 있었는데 뭔가 이 소설이 떠오르곤 한다. 그럼 난 조금 더 노력을 한다.
4. 책 후기를 찾아보다가 이 책의 모티프에 대해 스포를 당했다. 약간 김새지 않을 수 없었으나 이야기는 무척 재밌었고 내가 아는 그 사건과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 많았으므로 괜찮았다. 책을 다 읽고 사건에 대해 나무 위키를 뒤져보았다. 내 생각보다는 조금 더 차용한 부분이 많았다. 나는 같은 펜션에 있던 아들의 심정에 대해서 상상해 본 적이 없는데, 행여라도 무언갈 들었거나 느꼈다면 그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서늘했을지. 나까지도 서늘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생생하게 해 준 것이 바로 작가님의 힘 같다. 주인공을 가녀리고 청초한 미모의 여성으로 설정하여 조금 더 구미호나 거미(?) 같은 이미지를 입혀서 더 치명적이고 피할 수 없는 팜므파탈스러운 매력을 이끌어냈다는 생각도 들었고, 준영의 동생 같은 경우는 아직 본 적이 없는데도 재인의 묘사 덕분에 나까지 신경이 긁히는 기분이 들면서 참 싫다는 생각을 했다. 새 남편(난 왜 이렇게 인물들 이름이 기억이 잘 안 날까)의 눈에는 거칠어 보이고 불친절해 보였던 재인이 사실은 더 정도 많고 따뜻하고, 마음 약한 캐릭터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면서는 나도 누군가의 평면을 보고, 누군가도 나의 평면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서글프기도 했고 사람에 대해 속단하지 말아야 하네, 싶기도 하다.
5. 모티프가 된 여성에 대해 검색을 했을 때, 그녀는 나르시시스트라기보다는 경계선 성격장애에 가깝다는 진단을 받고 있었다. 둘은 유사해 보이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었는데, 작가님이 그녀를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하고 이 이야기에도 그것을 넣어 이야기를 풀어내신 것인지, 의도인지 실수인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경계선 성격장애의 경우 그 심각성이 너무 커서 상대방을 교묘하게 이용하거나 자신을 포장하고 세상을 감쪽같이 속일 수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속아 넘어가는 게 개연성이 없어서 그랬겠지? 이상하게 분명 궁금한 점이었는데 글을 쓰면서 혼자 답을 하고 있다.
6. 다른 분들도 책을 읽고 모두 독후감을 쓰셔서, 독후감으로 또 만나서 생각도 공유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 함께 나누고 싶은 것들
: 정유정 작가님의 다른 책을 읽어보신 분들의 감상을 듣고 싶다
: 여러분이 겪은 빌런 - 이런 사람 조심하세요(?)
: 내가 만약 유나와 같은 시공간에 얽혀 있는 사람이라면 난 어떻게 행동했을까?
(예)
-> 내가 유나를 만난 남성이라면 난 그녀에게 매혹되었을까
-> 저런 사람이 내 동생 / 딸이라면? 내 앞에서 가위로 내 인형을 찢는다면?(와 상상만 해도 싫다 ㅠㅠㅠㅠㅠ)
: 유나가 엄마로서 양육권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엄마/아빠라는 것의 자격은 무엇일까? 주인공은 자식에게 어떤 잘못들을 저질렀는가(자식에게 어떤 물리적, 정신적 상해를 입혔는지 써 보자)
: 수면제 + 살인이라는 주인공의 트릭이 얼마 정도나 타당할까? 그리고 그것이 주인공 주변에 연속적으로 일어났음에도 멀쩡히 잘 살아 숨쉬었던 것이 가능할 일인가?
: 실존 인물과 실존 모티프를,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차용해 소설을 쓰는 것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 - 피해자에 대한 모욕? / 모방범죄? / 오히려 사람들 주변에 숨어 사람들을 파괴하는 존재들에 대한 각성? / 예술적 자유?
: '행복은 불완전한 것들을 다 빼는 것'이라는 주인공의 생각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가능한가 / 타당한가 / 등등.
: 여러분의. 행복은 무엇인가,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 빼고 싶은 것 / 더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 정유정 작가 / 이 작품의 매력 - 인물 / 묘사 /??
: 여러분의 입체적 모습도 알고 싶네요 ㅠㅠ
#트레바리 #완전한행복 #정유정 #정유정완전한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