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 밴프 COWS BANFF
여행지에 가면 구글 지도를 켜서 확대해 본다. 전 세계 사람들이 많이 찾아본 장소부터 이름이 뜬다. 마음에 드는 장소에 하트를 실컷 남겨 두고, 지나다니면서 가까운 곳에 하트가 있으면 들르게 된다.
이 카우 밴프라는 귀여운 아이스크림 가게 또한 그렇게 내 지도 속에 저장된 곳이었다. 후기를 봐도 칭찬 일색.
“캐나다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라고 써 둔 저 자신감을 보라!
아침 일찍부터 록키 북쪽 탐방을 가던 날. 우리답지 않게 일찍 일어나 출발하면서, 맥모닝까지 야무지게 챙겨 떠나려던 참이다. 항상 사람이 그렇게 많던 아이스크림 가게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가게 문은 열려 있었다. 지금 사러 가면 줄 없이 바로 아이스크림 사 올 수 있잖아!
심장이 조금 쿵덕거렸다.
“오, 아이스크림 가게 열었다!”
내 딴에는 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들르고 싶다는 미묘한 표현이었다.
상대 반응이 별로면 금세 회수할 수 있는 표현.
“아침부터 아이스크림은 좀 그럴 것 같아. 이따가 오자.”
맞는 말이지. 차 안에서 맥모닝 먹기도 바쁜데 언제 아이스크림을 들고 앉아있겠나. (시무룩) 조금의 아쉬움을 맥도널드의 바삭한 해시브라운으로 날리고, 이 날 하루도 열심히 탐방을 하고 돌아왔다.
어느새 밤.
저녁을 한껏 먹어 배가 있는 대로 찼지만 다음 날은 밴프를 떠나는 날이라 오늘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한산하던 이른 아침과 다르게 줄이 꽤 길었다. 다들 이 밤까지 아이스크림 굳이 먹을 일이야? 하하. 사돈남말이었다.
구글 지도에서 줄이 길어도 금방 금방 줄어든다고 해서 소화 겸 편안하게 서 있었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친구들과 도란도란, 신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더 들떴다.
이 가게는 “소” 콘셉트가 지배한 가게이다. 아이스크림이 우유를 사용하는 점에 착안했겠지. 안에서는 아이스크림은 물론 맛있는 치즈도 판매하고, 소 콘셉트를 이용한 다양한 귀여운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깜찍한 젖소무늬에 지배된 느낌. 정말 영리한 가게가 아닐 수 없다. 가게 메뉴 하나하나도 이름이 주옥같았다. 이름 곳곳에 Moo, Cow 등의 단어를 버무려 너무도 깜찍했다.
후기를 정독하면서 먹어볼 맛을 고심해서 골랐다.
“나나이Moo(원:나나이모) 주세요”
“다 팔렸어요.”
“...그럼 Gooey Mooey 부탁해요.”
“그것도 품절이에요.”
흑흑, 아 정말!
“그럼 어떤 걸 먹을 수 있나요?”
“여기 있는 거 드실 수 있어요.”
그가 가리킨 벽면을 보니 ‘오늘의 메뉴’라는 이름 아래 여러 가지 맛 이름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맛 옆에는 ‘Sold Out’이라는 딱지도 같이 붙어있었다.
줄 서는 게 문제가 아니라, 먹고 싶은 맛을 못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흑흑.
남아 있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맛 중 몇 가지를 골라 주문하고, 결제하고 자연스럽게 옆자리 자석 구경을 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점원분이 익살스럽게 인사하셨다. 자석을 모으는 우리가 눈 돌아가는 깜찍한 자석이 가득했다. 구찌(Gucci)를 패러디한 무찌(Moochi), 무해한 소가 약간 멍청한 얼굴로 쳐다보는 행복한 그림. 아, 이걸 어떻게 안 사!
한 군데에서는 자석 하나만 산다는 나의 신조와 무관하게 그와 나는 도저히 갖고 싶은 자석이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여러 개의 자석을 샀다. (Moochi가 그렇게 가지고 싶었니? ㅋㅋ)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조금조금씩 먹으면서, 더 부른 배를 두들기며 숙소로 향했다. 물론 아이스크림 맛은 별로 특별할 게 없었다. 아이스크림이 거기서 거기여서 그런 건지, 내가 그들 입맛이 아닌 건지 모르겠다. 그 가게에서 가장 맛있는 맛을 못 먹어봐서 뭐라 말하기가 찜찜하다.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 때, 가고 싶었던 곳을 눈앞에 두고도 ‘나중에 가야지’, 하고 미뤄 본 적이 있는가? 어딘가 가는 길이었거나, 지금 가기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거나, 나중에 가도 되는데 굳이 지금 가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있어 그 사람의 눈치를 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눈앞에 있다면, 가급적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넌 이 아침에 그게 들어가니’, ‘지금 빨리 가야 하는데 이따가 오자’와 같은 지극히 옳은 말을 들을지언정(핍박을 받을지언정), 기차나 비행기표를 앞둔 것이 아니라면 조금쯤은 고집을 부려도 좋다. 배가 불러 덜 맛있어도 좋다. 후회하는 것보단 낫지. 기회가 여러 번 오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 기회가 왔을 때 덥석 잡는 것이 좋다.
물론 내 글을 핑계 삼아 과식에 과식을 더하는 과오는 저지르시지들 마시기를 바란다.
후후.
결론: 카우 밴프 저대신 일찍 가셔서 구이무이나 나나이무 먹고 후기좀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