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회사
지난 1년간 퇴사를 고민했고, 몇 개월 전에는 퇴사를 시도했다. 퇴사 실패자로 지내던 어제를 뒤로하고 퇴사 성공자의 오늘을 맞이했다. 내가 이 잡지를 만들었던 지난 3년 간 나보다 오래 다닌 직원들이 하나둘 떠났고, 그 자리를 새로운 직원이 채웠다. 몇몇은 마음이 맞거나 맞춰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몇몇은 물과 기름처럼 도무지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떠난다. 그리고 내 빈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가 채운다. 함께 고민하고 고생했던 동료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기분은 복잡 미묘해서 설명하기 힘들다. 죄책감과 홀가분함, 미안함과 고마움 같은 상반된 여러 감정이 뒤엉킨다. 서로 과거를 공감하고, 현재를 탄식하며, 미래를 걱정하는 대화를 나누며 예정된 헤어짐을 위로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니까 정확하게 P와 K, 나의 퇴사가 확정된 이틀 뒤 돌연 S와 M가 퇴사 소식을 전했다. 결국 이렇게 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우리는 퇴사라는 좁은 문에 끼여서 끙끙 대다가 한 명이 빠져나가자 나머지가 우르르 쏟아졌다. 아차 하는 순간 모두가 같은 날 퇴사하게 됐다.
퇴사자는 총 5명, 직원 모두 그만두는 상황이 벌어졌다.
*
마지막 한 권. 이 단어가 주는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태도는 지금까지와 달랐다. 하고 싶었던 주제를 하고 싶었고, 디자인이나 사진이 잘 나왔으면 했다. 인쇄도 문제없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리는 몇 번의 회의도 감수하려 했다. 주제를 정하는 데 그만큼 신중하고 싶었다. 기왕이면 모두가 하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주제를 선정할 수 있다면 어떤 수고로움도 괜찮았다.'회사 일'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회의를 해야 하는 첫 주, 우리는 제대로 된 회의를 하지 못했다. 외부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는 대표가 에디터끼리 회의를 하라는 메시지만 달랑 보내고 일주일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에디터끼리 회의를 해도 결국 대표가 싫다고 하면 엎어질 기획을 주야장천 붙잡고 있을 순 없었다. 평소라면 주제 선정을 끝내고 섭외에 들어가야 할 시기가 됐는데도 나타나지 않아 모두가 발만 동동 굴렀다. 가뜩이나 인하우스 디자이너 한 명이 부족한 시기에 기획회의까지 늦어진다는 건 모두가 몇 날 며칠 야근을 불사하고, 주말을 반납해도 결국 잡지 제작 프로세스를 완벽하게 끝내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하루는 무작정 회의를 진행했고, 하루는 대표를 닦달했고, 하루는 분노를 쏟아냈고, 하루는 꼭 주제가 정해지지 않아도 쓸 수 있는 원고를 진행했고, 하루는 자포자기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그다음 주 월요일이 되어서 첫 회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에디터들, 우리 회의할까요?”
월요일 오후, 느지막이 나타난 대표가 드디어 회의를 언급했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그간 정리했던 자료를 가지고 회의 테이블에 앉았다. 이번 주제는 어떤 것들이 나왔고, 각 주제별로 어떤 얘길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브리핑이 끝나자 대표의 표정이 뾰로통해졌다.
“주제가 다 별로 와 닿지 않는데.”
꿀 먹은 벙어리 셋은 동시에 '아'를 읊고 대표를 바라봤다. 결국 이럴 줄 알았다. 어치피 지난 일주일간 우리가 했던 회의는 물거품이 될 거란 걸 예상했다.
“하고 싶은 주제 있으세요?”
P의 질문을 시작으로 마라톤 회의가 시작됐다. 주제를 정할 수 있다면 몇 시간이고 계속해야 했다. 온갖 주제가 다 튀어나오고 이 주제에 대해 대표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설득에 설득을 거쳐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겨우 주제를 정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주, 교정기간 1주일을 제외하면 이제 2주밖에 남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대표는 바로 퇴근했다. P와 K, 나는 사무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거까지만 하자' '이것만 더 하고 가자' '이거는 정리하고 가야겠다'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다 불현듯 배가 고팠다.
“갑자기... 배고파.”
“저녁이라도 먹을까요?”
“가자.”
우리는 언제나처럼 연남동으로 향했다. 8시가 다 된 시간이라 도착하면 9시라는 전제하에 음식이 빨리 나오고 시끄럽게 떠들 수 있고, 온몸이 부르르 떨릴 만큼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실 수 있는 술집을 고민하던 끝에 연남동 '시실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