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치의 은혜만 내려오는 만나와 메추라기의 시기
우리는 조급하게 산다. 조급함은 미래와 관련이 있다. 하루 안에 20년 치의 길을 알고 싶어 점집에 가는 심리도 사실은 조급함이다. 기독교인들이 며칠 안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다 이해하려고 애써 기도하다가 아무 응답도 받지 못하면 실망하는 것도 조급함이다.
우리는 장밋빛 미래를 만들기 위해 조급하게 산다. '가만히 있으니까 내가 가마니로 보이나?'라는 말이 있다. 현대인들은 특히 이 마음을 자주 갖는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발전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뒤처지다가 가마니 취급 당할 것 같은 두려움에 닥치는 대로 분주하게 무언가를 한다.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면 정말 가마니가 될 것 같은 느낌을 지우고 싶어 한다. 어쨌든 뭐라도 해내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얄팍한 생각이 들고, 시간을 꽉 채워 보냈으니 내 미래도 꽉 찰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나저러나 현대인들은 가만히 있질 못한다.
중독에 대한 책을 쓴 정신과 의사 제럴드 메이는 사람들이 마약, 알코올, 섹스에 중독되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들이 중독된 본질은 '행동'이라고 말한다. 마약을 하는 '행동', 알코올을 마시는 '행동', 무분별하고 무의미한 섹스를 하는 '행동'에 중독된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자신은 해로운 것들에 중독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대인들의 '행동 중독'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현대인들의 메커니즘을 보면 유익한 미래를 보장받기 위한 행동에 중독되어 있는 것 같다. 미래를 위해 바쁘게 살기, 빡빡하게 살기, 여유 없이 살기가 현대인들의 특징이다.
그런데 출애굽기 14장 13-14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급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는 애굽 군대에 쫓기며 조급해진 히브리인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요구했다. 행복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히브리인들이 의기투합하여 묘책을 내야 하는 순간이다. 누가 보기에도 절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나는 절대 순종 못할 말씀이다. 앞에는 홍해, 뒤로는 애굽 군대가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가만히 있는 것' 빼고 다 생각하지 않을까?
백기를 들고나가 애굽 군대에 제발 살려달라고 빌어볼까?
차라리 홍해 바다에 투신을 하는 게 덜 고통스러울까?
힘이 센 남자들을 모아 무기를 들고 싸워볼까?
히브리 백성의 머릿속엔 '가만히 있는 것' 빼고 다 떠올랐을 것이다. 급박한 상황,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가만히 있으라!'
나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오 주님, (다급) 제발 그것만은! 가만히 있는 것 빼곤 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편 46편 10절
우리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사건과 상황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빠른 성공을 원해서 조급할 수도 있고, 당장 현실이 괴로워서 조급할 수도 있다. 히브리 백성처럼 이유 있는 조급함일지도 모르겠다. 망하기 직전의 사업을 일으켜 보기 위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꼬일 대로 꼬인 관계를 풀기 위해.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가만히 있으라!
하나님은 히브리 백성이 말씀에 순종해 가만히 있을 때 홍해를 가르셨다. 애굽 군대를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히셨다.
초자연적 역사를 통해 출애굽한 히브리 백성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조급했다. 광야 생활이 시작되자 슬금슬금 조급증이 올라온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애굽기 16장 2-3절]
히브리 민족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또 머리가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광야는 먹을 것이 없다. 죽게 생겼구나! 지금이라도 애굽으로 돌아갈까?'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은 세밀하게 인도하신다.
배고프다고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는 히브리인들에게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셨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애굽기 16장 4절]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히브리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인도하셨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 13장 21-22절]
지금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괴로울수록 미래를 조급하게 기다릴 것이다.
조급한 마음에 상황을 불평하기도 하고, 기도는 생략한 채 내 눈에 지혜로워 보이는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하다면 광야에 이스라엘을 떠올려야 한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하루만큼'의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시며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다.
지금, 이미, 당신은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것들을 부여받았다.
우리는 하루 동안 하루만큼 밖에 못 산다.
하루 동안 먹을 양보다 많이 먹으면 몸에 이상이 생긴다.
하루 동안 자야 하는 시간보다 적게 자면 몸에 이상이 생긴다.
하루 동안 필요한 걸 못 가져도 넘치게 가져도 우리는 이상해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딱 하루만큼의 은혜다.
하지만 조급하고, 성미 마르고, 마치 하루 동안 20년을 한 번에 살길 원하는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 가만히 있을 못하고 무언가를 더 하길 원한다. 그렇다면 그 마음을 참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러하셨듯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우리의 광야 생활을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매일의 만나와 메추라기를 바라고 감사하는 일이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조급함 때문이지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딱 한 걸음을 원하신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 걸어가는 삶. 작은 봇짐 하나 들고 걸어가는 나그네의 삶.
조급해서 자꾸 무언가 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디모데전서 5장 16-18절 말씀뿐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인생이란 광야의 길에서 우리가 할 일 to do list 를 적어보자면 이런 게 아닐까?
가만히 하나님 기다리기
오늘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에 감사하기
불안하면 내일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달라고 요청하기
오늘도 단순하게, 하나님을 기다리자. 마음에 말해주자.
'조급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은 오늘 딱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충분히 주신다.'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딱 오늘만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