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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May 07. 2024

가믄장아기 신화: 부모 복도 있지만 내 복도 있지요

한국의 참신한 신화 이야기

가믄장아기 신화


요사이 한국의 토속 신앙과 신화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가지 책을 찾아보고 있다. 그중에서 '이것 참 재미있는 이야기네' 하는 것들이 있어서 몇 가지 소개해 볼까 한다.


그중 하나가 가믄장아기 신화다. 아기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신화 속 주인공 이름이 가믄장아기다.


가믄장아기의 부모는 거지였다. 아랫마을과 윗마을 모두 흉년에 힘들 때 서로 윗마을에 가면 먹을 게 있다더라, 아랫마을에 가면 먹을 게 있다더라 하는 말을 듣고 각자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가던 중에 서로 만나 윗마을 아랫마을 할 것 없이 모두 궁핍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두가 궁핍한 세상에서 어디를 가도 똑같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신세를 한탄하다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서로 의지하며 살기로 한다.


둘은 이제는 우리도 번듯하게 살아보자고 약속한다. 동냥질은 그만두고 일을 하자고 맹세한다. 주어진 대로 살아오던 두 거지는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갈 희망과 의지를 가진다.


그 뒤 두 사람은 날품팔이를 시작한다. 젊은 남녀가 마음을 고쳐먹고 일을 하겠다고 나서자 사람들이 도와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부부는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인생의 봄날이 찾아온 부부에게 어느 날 예쁜 딸이 태어난다. 부부는 없는 처지에 생긴 딸이 걱정이 되었으나 사람들은 날품팔이를 하던 부부가 딸을 낳고 힘들어진 것을 알고 다방면의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부부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은 아이를 맡아서 키워주고 사람들은 은그릇에 죽을 쑤고 밥을 해서 아이를 먹였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은 은장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둘째 딸을 낳는다. 이번에도 역시 마을 사람들이 키워 주었는데 강이영성과 홍은소천 부부의 상황이 이전보다 절망적이지도 않았고 둘째다 보니 맏이보다는 정성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놋그릇에 죽을 쑤고 밥을 해 먹여 아이의 이름은 놋장아기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홍은소천은 세 번째 딸을 낳았다. 셋째 딸을 낳자 사람들의 정성과 마음 씀씀이가 더 약해졌다. 셋째 딸은 나무바가지에 죽을 쑤고 밥을 해서 먹였다. 그래서 셋째 이름은 자연스럽게 가믄장아기가 되었다.

셋째가 태어난 이후 부부의 일은 무엇이든 잘 풀리기 시작한다. 원하는 대로 일감이 생기고 일하는 것보다 수입이 더 많았다. 수입은 눈덩이가 구르듯 더 불어나고 10년이 지나자 거지 부부는 인근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감사해했으나 어느덧 두 부부는 이런 삶에 익숙해지고 못살던 시절을 까맣게 잊고 배를 내밀고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호사를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가믄장아기가 열다섯이 되던 해에 두 부부는 비도 오고 딱히 할 일도 없어 세 딸들을 차례로 불러다 물었다.


"은장아기야, 너는 누구 덕에 이렇게 호강하고 산다고 생각하느냐?"


"하늘님 덕분이지요. 그리고 아버님 덕분이고 어머님 덕분이지요."


그 말을 들은 두 부부는 흐뭇했다. 그리고 둘째 놋장아기를 불러 같은 질문을 했다. 놋장아기도 부모가 원하는 정답을 내놓았다. 이제 셋째 가믄장아기를 불러 같은 질문을 했다.


"가믄장아기야, 너는 누구 덕에 이렇게 호강하며 산다고 생각하느냐?"


"하늘님 덕분이지요.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 덕분이지요."


예상하던 답이 나오자 부부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믄장아기는 말을 더 이어나갔다.


"모두의 덕분이기도 하지만, 저의 복으로 먹고 입고 호강을 누리고 살지요."


부부는 그 말을 듣고 분노했다. 부부는 화가 나 가믄장아기를 쫓아낸다.





부모 덕도 있지만 나의 삶은 나의 것이오.


신화학자 조지프캠벨은 신화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나 유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신화는 인간 경험의 깊은 층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수단으로, 인간의 보편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표현하는 이야기로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가믄장아기의 신화는 재미있는 지점이 많다. 새로운 삶이 시작될 때에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는 점 (신화에서는 결혼으로 표현되지만), 새로운 삶의 시작은 떠남이 전제된다는 것, 가장 천대받는 아이가 가장 지혜롭게 크고 가장 큰 성공을 이룬다는 점, 인생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언제가 그 일이 진정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도 모르게 꼬리를 물고 끊임없는 파동처럼 이어진다는 것 등이다.


특히 가믄장아기 신화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 설정이 새롭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사람이 자수성가를 하고 높은 위치에 오르면 누구의 도움 없이 여기까지 나만의 '능력'으로 올랐다고 자만하기 시작하고 눈에는 이런 일을 만들어 낸 '위대하고 잘난 나' 밖에는 없게 된다. 이 신화에서 부부가 그렇게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부귀영화를 자식이 누리는 것이 당연하고 기껍지만 한편으로 자식이 누구 덕에 이 재산을 누리는지 알아주기를 원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공치사를 원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통제의 마음이 깔려 있다. 자식이 누리는 모든 것이 부모의 덕이라면 감사는 당연한 것이고 누릴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부모를 기쁘게 만드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이 마음은 부모가 원하는 삶을 자식이 살아주길 바라는 것과 같아진다.


가믄장아기는 부모가 원하는 답이 아닌 진실을 말한다. 가믄장아기가 말한 하늘의 덕도 부모의 덕도 있지만 자신의 복으로도 호강을 누리고 살고 있다는 답변은 한 사람의 삶을 이루는 것은 매우 복잡하며 복합적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또한 가믄장아기가 말하는 진실은 자식의 독립 선언을 의미한다. 부모로부터 태어났지만 자기 자신의 복을 따로 타고 태어난 하나의 독립된 개체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독립이 필요하다.


가믄장아기의 독립 선언은 강이영성과 홍은소천 부부에게 상처를 준다. 부부가 가믄장아기에게 당장 나가라며 화를 내는 이유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에게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도 독립이 필요하다. 독립이란 자식과 부모 모두에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저 자신은 부모와는 다른 사람이며 다른 삶과 운명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고 홀로서야 하지만 이것을 깨닫기까지 여러 날의 방황을 거친다.


부모 또한 마찬가지다. 내 뱃속에서 나와 행복한 삶을 주었던 자식이 나와는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든 지켜봐 주는 것만이 최선임을 인정하기 위해 여러 날의 허전함과 공허함을 거쳐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부모와 자식 둘 중 한 명의 용기로 시작된다. 가믄장아기는 스스로 선언하는 용기를 발휘한다. 부모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면서도 진실을 말하고 집을 떠나온다.




운명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결핍의 단비가 필요하다.


가믄장아기의 신화가 신선했던 또 다른 이유는 여성신화임에도 가믄장아기가 나약하지도 않으며 영웅신화처럼 결핍과 고난의 과정을 통해 운명을 개척한다는 점이다. (물론 신선하다고 느낀 이유가 옛날이야기 속 여성들은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부모와 가족에 순종하며 살아왔을 거라는 고정관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믄장아기 신화는 심청전의 원형이 된 이야기라고 알려져 있지만 조금 다른 구성을 띤다.


가믄장아기는 세 딸 중 가장 허름한 그릇에 밥을 먹여 키운 아이다. 은장아기, 놋장아기 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정성 들여 키우지 못했지만 가장 현명하며 독립적이다. 나중에는 가믄장아기가 시력도 재산도 모두 잃은 부모를 구제하기까지 한다.


삶에서의 결핍은 지혜를 주는지도 모르겠다. 가믄장아기뿐만 아니라 많은 신화에서 핍박받던 인물이 영웅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렇다면 잠재의식에 깊게 묻힌 자신의 소명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고통과 결핍은 필수 요소라는 뜻은 아닐까.


고구마 없는 무탈하고 평탄한 삶을 만인이 부러워 하지만 그런 인생에는 아무런 맛이 없다. 굴곡진 인생에는 다양한 맛이 깃든다. 삶의 다양한 맛은 곧 다양한 지혜로 귀결된다. 잃는 아픔 없이 얻는 고마움을 어떻게 알 것인가. 자신의 뜻대로 삶이 다 움직이는 것 같은 즐거움도 알지만 삶이란 거대한 파도에 내맡기고 내려놓는 겸허함도 아는 것은 성숙함이다. 그리고 성숙함은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 모두를 포용하며 삶의 기쁨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성숙한 깨달음으로 더 이상 삶의 굴곡은 고통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마치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경험을 하면 수 없이 넘어지는 일도 별 것 아니게 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고, 결국에는 인고 끝에 뜻을 이루는 진정한 기쁨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모든 고통이라는 불편함을 피해 다니는 삶은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그 무엇도 꽃피우지 못하는 삶이다. 불편함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사람에게는 운명의 꽃이 피어나고 새로운 운명에는 새로운 인연들이 찾아오게 되어 있고 새로운 인연은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낸다.


* 참고: 신화 라이브러리 한국 03 가믄장아기와 오늘이, 운명과 시간 (이경덕 저, 21세기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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