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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Dec 05. 2023

All I want for Christmas is..

소고기에 대한 사심이 담긴 글


“너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인 것 같아?”

“나는 지금인 것 같아.”


2023년이 간다. 글을 쓰는 지금, 카페에서는 Last Christmas 리메이크 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곧 크리스마스 연금으로 유명한 머라이어캐리의 캐럴도 흘러나오겠지. 여느 때와 같은 풍경이지만 올해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오늘은 2023년 나의 이야기로 글을 써볼까 한다. 물론, 이 이야기를 주제로 글을 쓰고 베스트에 뽑히면 동호회에서 상품을 준다는 말도 한 몫했다. (무려 소고기다!) 노력에 결실이 있으면 더 행복한 법 아닌가.


몇 달 전 친구가 물었었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언제냐고. 나는 주저 없이 지금이라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 5년이 그랬다. 삶이 하나의 항해 일지라면 나는 한 번의 항해를 마쳤다. 첫 항해는 어리숙했다. 이번 생에 처음 만난 것들 중에 내가 한 선택이란 별로 없었다. 집도, 고향도, 가족도. 모든 것은 우연처럼 왔다. 자라면서는 많은 사람들이 어린 나에게 어떤 선택을 하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인지 말해줬다. 모든 어른들에게는 ‘좋은 삶‘에 대한 해답이 있는 것 같았다. 때로는 TV 속 영상으로도, 음악으로도 보여줬다. 무엇이 성공인지, 무엇이 행복인지. 사회가 보여주는 휘황찬란한 이미지들은 나에게 답을 내려주고 이 길로 쫓아오라고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욕망인지 타인의 욕망인지, 나의 가치관인지 타인의 가치관인지도 모를 그것들을 순진한 눈빛으로 쫒으며 여기까지 왔다. 불빛에 현혹된 나방처럼. 하지만 원망할 것은 없다. 삶은 잘못된 질문에도 충분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던져줬다. 때로는 넘어졌지만 때로는 일어나게도 했다. 그리고 줄 곧 가슴속에 질문을 던졌다.


“진짜 너는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지난 5년 간 나는 변곡점에서 서 있었다. 처음 멈춰 섰을 때 내 앞에는 길이 없는듯했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먹고 살아온 것이 도둑질이라고 해온 것이 지금의 내 일이었고, 이것을 벗어나서 나는 누군가에서 금전적 가치로 환산될 노동력을 제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 앞에는 기회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삶이 주는 질문에 답을 얻지도 못했는데 무작정 앞으로만 뛰어갈 수는 없어 멈춰 섰다. 숨을 고르고, 휴식을 취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3년을 맞이했다. 나는 올 초에 올해를 생각하며 따뜻한 나침반을 하나 그렸다. (실제로 그렸다. 그리고 그 그림을 서랍장 앞에 붙여뒀다.) 올해 나는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의 한 줄 의도는 ”편안하고 즐거운 도전“이었다. 이제와는 다른 방식의 도전을 하고,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오랜 바람이 말로 터져 나온 탓이다.


한 차례 항해를 통해 인생을 잠시 맛봤다. 그리고 나는 지금 잠시 항구에 배를 정박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중이다. 가장 먼저는 나 자신과 친해지는 연습을 했다. 무엇에 가슴이 끓어오르는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하는 말들을 듣기 시작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몸을 돌봤다. 몸의 감각과 통증을 더 깊이 있게 느꼈고, 먹는 음식과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몸은, 특히 가슴은, 온 힘을 다해 말해준다. 네가 원하는 인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 언어는 전율이며, 환희이고, 충만감이다. 사회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필요 없다. 세상 모든 이가, 그리고 머리가 그것이 하찮은 일이며 얼마나 보잘것없고 아무런 생산성이 없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여놓아도 소용없다. 또 그것이 돈이 되든 안 되는 상관없다. 가슴은 그저 벅찬 전율로 느끼게 해 준다. 이것이다. 이것이 너의 길이고 너의 삶이 요구하는 방향이라고.


이것을 절실히 느낀 사람은 알 것이다. 가슴과 소통하는 순간 주객은 전도된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이성이 아니라 영혼에 키를 넘겨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해서 나의 영혼처럼 잘 알고 있는 항해사는 없다. 그리고 이 영혼이 나에게 나침반을 쥐여준다. 그리고 나는 문득 깨닫는다. 나만이, 내 영혼이 원하는 삶을 이뤄줄 수 있음을. 그것만이 ‘나’라는 이 존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이 생의 가장 막대한 책임이자 의무임을 알게 한다.


2023년 나는 날개를 달고자 했다. 잠시 쉬었고, 이제 출발할 때이다. 하지만 이번 출발은 여유롭고 즐거울 것이다. 나는 마을과 숲이 내려다 보이는 산 언덕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세상을 나의 방식으로 품기 위해서다. 여유롭고 투명한 눈으로 방향을 정하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파도를 타듯이, 바람을 느끼며 간다. 이번의 도전은 조화로울 것이다. 흐름을 타고, 그 무엇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다양한 파도를 맞이할 것이며 그 파도 안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그런 해였다. 이사를 하고, 이름을 바꾸고, 그리고 무엇을 할지 방향을 세웠다. 모든 것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용감해지기로 했다. 가슴이 설레지 않은 것, 영혼이 거부하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분리되어야 하는 일도 하지 않기로 했다. 사회적 자아와 일상의 자아, 누군가를 만날 때 튀어나오는 다른 자아는 없다. 그저 모든 순간에 나로서 살아가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보였다. 방향이 분명해지면 자신감이 생긴다. 불안에 나의 에너지를 주지 않기로 했다. 나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나의 삶은 더욱더 단순해진다. 불필요한 것들은 사라져 간다.


그리고 2024년, 세상에 호기롭게 뛰어들었던 나는 내년에는 땅에 착지할 것이다. 이제 그 가슴이 말하는 일을 현실로 만들 차례다. 동료를 찾고, 생각을 함께하는 이들을 찾을 것이다. 분명한 첫 시작이 있을 것이다. 불가능을 허용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것은 유명한 광고 문구만은 아니다.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기회가 없다. 기회가 없다는 불안감에 아무 기회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기회를 찾을 수 없다. 또 그것은 틀을 되어 자신을 옥죈다. 위대한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어떤 방법으로도 풀리지 않은 문제를 만날 때 문제를 해결할 가장 강력한 원칙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허용할 수 없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세상의 위대한 발명 모두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흔들리지 않는 굳은 확신‘을 뛰어넘을 때 나올 수 있었다. 쇠로 만든 배는 물에 뜨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시기가 있었고, 꺼지지 않은 밝은 불이란 없다고 믿었던 시기가 있었다. 불가능을 허용할 때 그 이상의 해결책이 있는 법이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이번 생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어떤 불가능들, 그것을 허용하는 것이 삶을 창조적으로 살기 위한 첫 번째 과제다. 그 불가능이 바로 내가, 당신이 스스로 만든 족쇄이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창조적인 자신만의 길을 모두가 찾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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