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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정윤 Nov 18. 2023

기르는 마음

무의식적 애정

시금치가 무럭무럭 자란다. 솔직히 빨리 자라는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잎이 나고 자란 잎은 넓어지고 커진다. 요사이 비도 오고 추웠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란 싱싱한 잎을 보자니 마음이 퍽 이상하다.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고맙다고 해야 할까.


이 중 일부를 뿌리째 캤다. 첫 수확이다. 내 손으로 기른 첫 생명이다. 화분을 사다 보살필 줄만 알았지 싹을 틔워낸 것은 처음이다. 조그맣고 뾰족한 씨앗일 때 봤는데 어느새 이렇게 자랐다. 두어 개 뿌리째 수확하고 나니 이상하게 더는 손이 가지 않는다.


기른 마음이 애틋해진 탓이다.


파릇파릇한 잎사귀들이 아직 더 자랄 수 있을 것 같아 서로 틈도 없이 빼곡하게 자란 녀석들만 수확하고 다시 그대로 뒀다. 더 캐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다.


세상의 모든, 기르는 마음들을 생각한다. 반려 동물을 기르고 농작물을 기르고, 부모는 아이를 키우는 모든 마음들을. 연약하고 하찮았던 뽀시래기 시절부터 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작고 조그마해서 무엇이 될까 알지 못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라 어엿한 무엇인가가 되었을 때의 벅찬 마음을 생각한다. 아니다.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작디작았던 아이가, 그 녀석이, 그 씨앗이 처음으로 여린 싹을 보이고 작은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부터 무엇이 될지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사랑스럽다.

기르는 마음이란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을 자라게 하고 길러내는 자연도 우리를 향해 그런 마음일까.

수많은 별과 생명을 품은 우주도 그런 마음일까.

괜히 따뜻하다. 시금치 하나로.


2023년 11월 텃밭 일지


  

첫 수확 :-)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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