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log #156
“50대의 중간을 넘어가며 어설픈 성인병 보유사실을 이야기 했다간 주위 친구들에게 한소리 듣게 된다. 대부분 종합병원 수준의 성인병을 보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단지 나이가 들어서? ”
IMF가 터질 무렵, 우리 동기들은 대부분 주임이나 대리급이었다.
그 때 철밥통이라 믿던 대기업을 십수년 다닌 선배들이 추풍낙엽이 되며 떨어져나가는 것을 목전했다.퇴사자를 떠나보내던 명동 한 복판에서 40대 중반의 차장급 선배가 흐느꼈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충성하는 것 아니다!”
끔찍했던 IMF는 금새 사라졌다. 그리고 “대벤쳐의 시대”가 왔다.
대기업에 남아있으면 무능한 자라는 유행어가 돌았던 2000년에는 누구나 벤쳐로 가고 싶어 안달나있었다. 그 놈의 닷컴버블이 전세계적으로 창궐했고 도메인 이름 하나로 수십억을 투자받는 주변인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벤쳐로 갔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인들이 벤쳐로 갔다.
그리고 “난리부르스”가 시작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비지니스와 기술들이 넘쳐났고 많은 사람들이 월화수목금금금을 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했다. IMF에서 벗어났고 우리는 진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대형포탈조차 벤쳐회사에 속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솔루션 (기술력) 회사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을 때라 포탈이나 서비스회사의 가치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당시 우리회사가 보유한 것은 모바일내의 OS와 각종 통신과 보안 프래임웍이었다.
이통사와 제조사의 표준 플랫폼으로 들어가기도 했고 그들과 함께 해외 표준화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야근은 일상이었다. 특히 협업업체가 해외업체가 많았다. 중국(차이나유니콤:광조우), 이스라엘(S사 법인:텔아비브), 미국( TI:텍사스) 와 컨퍼런스 콜은 일상이었으며 그러다보니 ”새벽회의”가 자연스럽게 되었다.그 때부터 “밤샘과 야근”이 체화되어 버렸다. 그리고 퇴사하고 다른 회사들에서 일을 했거나 내 사업을 할 때에도 야근은 일상이었다.
그렇게 24년이 흘러갔다.
대부분의 고혈압은 “증상”이 없다. 그리고 정기검진에서 발견된다.
이번에 정기검진을 받을 때, 의사가 내 혈압을 보고 한 마디 했다. “이런대도 혈압약을 복용하지 않았어요?” 그 질문에 얇은 미소만 보내주었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달려온 인생을 재검토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젠 유지보수하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