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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Mar 01. 2024

대가라면  이 정도 자기애는 있어줘야지?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민음사


『말』은 경쾌하고 까불거리는 책이다. 대가라면 이 정도 자기애는 있어줘야지, 싶은 ‘읽기’와 ‘쓰기’에 대한 사르트르의 자서전은 그 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기 쉽게 쓰여 있다.


유년기에 대한 사르트르의 기억은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을 묘사하는 듯 생생하다. “나는 오직 글쓰기를 위해서만 존재했으며, ‘나’라는 말은 ‘글을 쓰는 나’를 의미할 따름이었다”는 ‘쓰기’에 관한 사르트르의 문장 앞에선 말문이 막힐 뿐이다.


그러나 ‘읽기’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사르트르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아버지 없이 자라 슈바이처 집안(노벨평화상을 받은 A. 슈바이처는 사르트르 어머니의 사촌이다) 할아버지의 총애를 받기 위해 스스로에게 ‘신동’이라는 캐릭터를 부여하고 연극을 했던 사르트르는 이 세상 모든 어린 아이와 다름없다. 자유와 자유로부터 비롯된 좌절이라는 부조리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연극적으로 책을 읽어나갔던 사르트르에게 책의 세계는 그가 인식한 최초이자 유일한 세계였다.


그가 유년기에 경험한 부조리의 세계는 사실 사르트르 개인의 일화라기보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나르시시스트적이고 심지어는 강박에 가까운 자기애와 집착을 보여주는 이 책을 굳이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유년기를 거쳐 사르트르는 삶의 부조리를 깨닫게 되고 후설의 ‘의식의 지향성’ 개념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르트르는 말한다. 인간은 자유이며 스스로를 창조하는 존재 이외에 다른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인간은 의식의 주체라고.


『말』은 사르트르 실존주의 사상의 근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1964년, 사르트르가 이 책을 출판한 후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선정된 것도 그 때문일 테다(물론 그는 수상을 거부했다). 그리고, 비록 우리가 사르트르는 아닐지언정 이 책을 읽고 나서 각자 저마다의 『말』을 써 보는 재미도 누릴 수 있을 테다. 때때로 나는 궁금하다. 당신의 읽기와 쓰기에 대한 ‘『말』’이.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4년 2월 20일(화) <스포츠경향> '출판숏평'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s://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art_id=202402200006003&sec_id=56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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