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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Mar 09. 2024

현재의 자신과 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법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한나 렌 지음 l 이영미 옮김 l 출판사 엘리 l 가격 1만6000원




SF(Science Fiction,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한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문학 장르)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소설집이에요. 각 소설들은 상상력과 논리적 사고를 동시에 요구하여 사고력을 향상시키고 창의성을 키워줍니다. 또한 소설 속 캐릭터들이 겪는 상실과 슬픔을 통해 독자를 공감하게 만들지요. 특히 각 소설마다 씩씩한 여성 캐릭터들이 우정과 연대를 보여주는 점이 사랑스러워요.


표제작인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 잠이 깨, 커튼을 열고 창밖으로 눈 풍경을 바라보았다”라는 독특한 문장으로 시작해요. 집 안은 여름인데 창밖 풍경은 겨울이라니 어떻게 된 일일까 싶지요.


이 세계에서는 누구나 도피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즉시 다른 시공간의 자신에게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가능성 속에 살고 있는 자신으로 옮겨 다니며 살아가고 있”어요. 이 때문에 이 세계에서는 불행도, 고통도, 상처도 없지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매끄러운 일상을 누리며 살아가는 그야말로 ‘매끄러운 세계’인 거예요. 이 매끄러운 세계의 인간은 모두 절대적인 이상향에서 살고 있어요.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받는 현실로 가면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원하면 그것을 이룬 현실로 옮겨가면 되고요.


하지만 이러한 세계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 소설집의 주인공인 하즈키는 전학 온 친구 마코토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오직 하나의 현실만을 평생 살아가야만 하는 ‘승각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승각’이란 세계와 세계를 번갈아가며 실시간으로 살 수 있는 ‘매끄러운 세계’ 사람들의 능력이지요. 승각장애가 있는 마코토는 매끄러운 세계의 사람들에게 있어 하나의 가능성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저차원 생물이자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자 공포의 대상이에요. 작품 속 인물의 대사에 따르면 “무엇보다 이 세계의 적”이고요. 매끄러운 세계의 적이지만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마코토를 위해 하즈키가 어떤 행동을 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소설입니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인격 이식, 대체 역사, 신칸센 저속화 등 독특한 소재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한 작가의 소설들을 다섯 편 더 만나볼 수 있어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쓰인 스토리들은 머릿속에서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펼쳐집니다.


용기와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다룬 소설집이에요. 청소년 시기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중요한 시기이지요. 이 책은 다양한 세계와 설정을 통해 인간의 관계와 우정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줘요. 소설 속 캐릭터들은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게 되지요. 무엇보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통해 작가가 강조하는 건 현재의 자신과 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법이에요. 이 책을 통해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용기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4년 2월 26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2/26/20240226000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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