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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ul 08. 2024

우리 마음의 단어들 끄집어내 삶의 순간 담았죠

- 《슬픔에 이름 붙이기》

《슬픔에 이름 붙이기》존 케닉 지음 l 황유원 옮김 l 출판사 윌북 l 가격 1만8800원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법을 알려주는 안내서이자 다양한 감정에 대한 풀이를 곁들인 사전인 동시에 한 권의 아름다운 시집 같은 책이에요. 복잡미묘하지만 한마디 단어로 콕 집어 설명할 수 없었던 감정들을 나타내는 말을 신조어로 만들고, 거기에 사전식 설명을 곁들였습니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지만, 때론 우리의 감정을 모두 담아내기에 부족할 때가 있죠. 특히 우리는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마땅한 단어가 현재에 없다고 느껴져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자는 기존의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감정이나 경험을 표현하는 새로운 단어들을 창조하여 소개해요. 라틴어나 고대 언어의 어원들을 기반으로 지금 사용되는 언어들을 변형해 이런저런 감정들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어요. 읽다 보면 마치 각 단어를 주제로 한 시 한 편을 읽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저자에 따르면 슬픔의 어원은 본래 ‘충만함’이었다고 해요. 그 어원은 ‘충분한, 만족스러운’을 뜻하는 라틴어 sati(충분한, 만족스러운)에서 찾아볼 수 있지요. 이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어요. 진정한 슬픔이란 단순히 기쁨의 오작동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얼마나 찰나적이고 신비롭고, 무제한적인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활기 넘치는 솟구침”을 뜻한다는 걸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1> 역시 슬픔이 곧 기쁨으로 이어진다는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요.  


또, ‘이모독스(emodox)’는 ‘주위의 모든 사람과 영원히 조화되지 않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을 뜻하는 명사입니다. ‘감정의’를 뜻하는 ‘emotional’과 ‘예상된 규범에 따르지 않는’을 뜻하는 dox를 결합해 만든 거지요. 이런 식으로 저자가 이름 붙인 감정들은 약 300여 개에 달합니다.

 

저자가 이런 책을 쓴 건 자신뿐만 아니라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함이에요. 저자는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걸 어떻게든 표현해 내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서로 연결된다고 말해요. 그래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감정들, 우리를 매혹시키는 순간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들,  군중 속의 고독, 역경과 도전에 맞설 때 느끼는 감정들, 불확실성과 가능성에 대한 감정들을 총 6장에 걸쳐 이름 붙여 설명하고 있어요.


특히 문해력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요즘, 정확한 단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문해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감정을 느꼈을 때 그저 단순하게 “짜증 나!”라는 단어로 자신의 감정을 대충 뭉뚱그려 표현할 게 아니라 과연 그 감정이 ‘짜증’이 맞는지, ‘화’는 아닌지 아니면 ‘억울함’은 아닌지 그도 아니면 또 다른 그 무엇은 아닌지 조금 더 생각해 보는 거예요. 그 감정이 짜증이 아니라 다른 그 무엇이라면 어떻게 그 감정을 느끼게 됐는지, 무엇 때문에 그 감정을 느낀 건지도 떠올려 보세요.


만약 그 감정에 이름 붙이기가 어렵다면 이 책을 다시 한번 들춰보세요. 느끼지만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들을 정확히 포착해 설명하고 있으니 마치 일기를 쓸 때처럼 자신의 감정과 하나씩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매일매일 한 장씩 시간을 들여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그리고 감정을,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감각과 공간과 풍경 속에서 자신만의 감정 사전을 만들어가는 것도 좋겠어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4년 7월 8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ie/2024/07/08/L4YPJMMZLBGWHFQ7SSLFW7NT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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