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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랑 Jul 01. 2022

한국 환자들은 궁금한 게 없다.

눈 올 때 한국에 갔었는데, 여름이 다 되어서야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4개월여 되는 긴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다. 꽤 긴 시간을 보내고 왔음에도 여전히 아쉽다. 이제 한국에 있으면 미국에 오고 싶고, 미국에 있으면 한국에 가고 싶은, 그런 어중이떠중이가 되어버렸다. 



올해로 10년째 미국 생활 중인데,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적응 중이다. 독일에 사는 사촌은 거의 20년째 독일에 살고 있는데 매년 향수병이 더 심해진다고 한다. 이렇게 오랜 외국생활에도 한국이 그리운 것은 내 나라이기에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프면 병원에 가기 쉬운 의료시스템도 한몫한다. 아이를 낳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왜 자꾸 아픈 곳이 생기는지. 더 이상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느낌. 외국에서는 어디가 아프면 꾹 참았다가 다음번에 한국에 가면 병원 가보자 생각하게 된다. 의료비도 너무 비싸고, 당장 아픈데 의사를 만나기가 너무 어렵다. 둘째 임신 초기에 피가 비쳐서 산부인과에 전화했더니 다음 주까지 예약을 해줄 수 없다면서 응급실에 가란다. 초음파 한번 봐주면 될 일을... 응급실까지 가란다. 심지어 산부인과 의사는 초음파를 해줄 수도 없다. 초음파 테크니션이 해야 해서, 초음파를 다음 주에 하고 나면 일주일 텀을 두고 그다음 주에 의사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병원마다 정책이 달라서 안 그런 곳도 있겠지만, 슬프게도 여기 뉴저지는 아주아주 불편한 시스템으로 사람을 정말 환장하게 만든다. 


미국의 의료시스템의 허점과 불편한 점을 이야기하자면 정말 밤새 쓸 수 있다. 이런 불편한 시스템에서 병원을 다니다 보니, 한 번 병원에 가면 정말 벼르고 가는 경우가 많다. 검사 하나하나, 결과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묻게 된다. 또한 불필요한 검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따지게 되고, 병원에서 하는 모든 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며 신뢰를 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게 의료계통에 있는 사람들 일수록 더 심한 것 같다. 허점을 아니까.




이번에 한국에 조금 오랫동안 나가 있으면서 정말 원 없이 병원에 다니며 아픈 곳을 치료했던 것 같다. 조금 불편하면 예약 없이 바로 내원해도 된다니. 새삼 참 한국 의료시스템에 감동했다. 그런데 여러 곳을 다니면서 느꼈던 것은 의사 선생님들께서 정말 설명을 자세히 안 해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너무 설명을 안 해주시길래 질문을 하면 "저런 게 왜 궁금하지"라는 눈빛을 보내면서 마지못해 대충 설명해주셨다. 물론 정말 친절하신 의사 선생님들도 많이 만나서 감사했는데, 안 그러신 분들도 많았다. 이게 한 의사의 개인 성향이라기보다는 사회의 분위기와 암묵적 동의, 지금의 의료시스템에서 한 환자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있다는 점 등과 같은 것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 몇 달을 보냈더니 나도 여느 한국인들과 다를 바 없이 의사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해주시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게 되었다. 


한국에서 시간을 보낸 지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산부인과에 가서 "균 검사"를 했던 적이 있다. "균 검사." 뭔가 무서운 말인 것 같으면서도 유치한 느낌. 어렸을 때는 "균"이라는 말을 많이 썼던 것 같은데, 크고 나서는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과 같은 용어를 더 많이 쓴 것 같다. 처음에 "균 검사"라고 하시길래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집에 오는 내내 "균 검사?? 균?? 내 몸에 균이 있는지 검사한다고?? 뭔 소리지??" 끊임없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커져갔다. 결국에는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가드네렐라, 칸디다, HSV 등을 포함한 검사라는 것이다. 병원마다 몇 종을 하는지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듯했다. 


미국에서 "균 검사"를 했더라면 어떤 "균"을 검사하는 것인지 꼬치꼬치 캐물었을 나인데, 한국에서는 뭔가 굉장히 온순한 양 같은 환자였다. 미국과 한국에서의 내 모습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미국에서는 균 하나하나에 대해서 설명을 다 들었을 것이다. 많은 미국 환자들이 그러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내 모습 속에서 뭔가 나도 역시 한국 사회에서는 튀는 사람이 되기는 싫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 이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한 의사 선생님/교수님으로부터 연구 과제 제안을 받아 감사하게도 한국 환자들을 상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서 가끔 한국 분들을 상담한 경험은 있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한국말로 유전상담을 해내야 하다니... 뭔가 설레기도 하면서 부담이 많이 됐었다.


내 직업의 이름처럼 나는 유전질환이 있는 환자들을 상담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환자분들께서 가지고 계시는 특정 질문들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마구 해주길 원한다. 지식과 경험을 통해 많은 부분을 답해드릴 수 있지만,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솔직하게 모른다 말하며 같이 찾아보고 함께 공부하는 것이 나는 참 좋았다. 미국에서 그렇게 일해왔기에 한국에서도 나도 모르게 기대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첫 클리닉 날의 내 인상은 "엉덩이 들썩들썩"이다. 솔직히 교수님 뵈러 왔는데, 갑자기 "유전상담사"라는 사람이 상담을 하면 싫겠지 싶었다. 그리고 상담을 하다가 행여나 어렵게 잡은 교수님 외래를 놓치면 안 되니까. 혹시나 놓칠까 엉덩이가 들썩들썩. 그 모습이 못내 서운하면서도 이해가 되었다. 아직 유전상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니까. 유전상담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니까.


프랑스의 어느 과학자가 그랬다. 유전상담사는 에어컨과 같은 존재라고.

없을 때는 못 느끼지만, 한 번 있어보면 없이는 못 산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물론 그만큼 부담스러운 책임감도 따르지만.


환자 상담을 대면으로도 하고, Zoom을 이용해서 비대면으로도 진행했다.

확실히 Zoom을 이용해서 하니까 환자분들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한 시간을 꽉 채우며 질문을 하시는데 정말 놀랐다. 대면으로 만나 뵈었을 때는, 물론 외래 시간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질문을 안 하셨겠지만, Zoom으로 뵈었을 때는 너무나 좋은 질문들을 많이 해주셨다. 모르는 것은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며 같이 논문을 찾아 공부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령에서는 2만 명 이하로 발병하는 질환을 희귀 질환으로 분류한다. 어떤 질환들은 전 세계 한 명인 질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전학 전문가라도 모르는 정보는 당연히 있다. 우리가 이해하는 인간의 유전체는 1% 정도밖에 안되니까. 아직도 모르는 99%의 미지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은 질문을 하시는 환아의 부모님들이 많으시다. 어떤 부모님은 영어를 잘 못하심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가지고 있는 질환에 대한 논문을 찾아서 읽으시고 마침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설명해주실 수 있냐며 논문을 들고 오신 분도 계셨다.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래, 이게 바로 유전상담이지. 하는 그런 느낌. 


내가 받았던 좋은 질문들을 추려보면--


1) 지적장애가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2) 아이가 나중에 자녀를 낳으면 그 아이도 똑같은 질환을 가지게 될까요?

3) 학교 선생님께 아이의 질환에 대해 어떻게 설명드리면 될까요?

4) 임상시험 중인 약물이 있던데,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5) 유전자 치료가 가능한가요?

6) 아이가 여느 아이처럼 똑같이 정상 발달을 할 가능성이 있나요?

7) 우리 아이가 가지고 있는 염색체 결실 부분과 거의 동일한 결실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아이는 정상 발달을 하고 있었어요. 우리 아이도 그럴 수 있을까요?

8) 제가/우리 아이가 조심해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쩌면 뻔하게 대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이 유전상담사 입장에서 너무 좋았다. 함께 고민해보는 것도 좋았고,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이지만,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을 이야기하면서 나누는 사회심리학적인 상담의 내용들도 좋았다. 그렇게 환자/환자의 부모님과 내가 한 배를 탄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런 느낌. 내가 그들의 삶에 작은 점을 찍고 있는 듯한 느낌이 따뜻했고 감사했다. 




유전상담사들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화두를 던지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 예를 들어, 아직 자신의 질환을 모르는 만 9세 아이에게 자신이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부모님께 여쭤봤을 때 그 질환에 대해 어떻게 답해줘야 하는지, 유전질환이 있는 오빠를 둔 여동생이 살아가면서 겪게 될 심리적인 부담감들을 어떻게 해소시킬 것인지, 아직은 아기가 너무 어려 질환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 부모님들이 생각해보실 수 있게 질문을 던져드린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저런 질문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하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다. 뭔가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희망을 뺏는 느낌도 들고 하기에. 하지만, 나는 유전상담사로서 열심히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어쩌면 답이 없고 답을 알고 싶지도 않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질문에서 답해야 하는 상황이 닥쳐왔을 때 지금보다는 조금 더 준비된 마음으로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드리는 것이 나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유전질환이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궁금한 것이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 "균 검사"라는 말에 토 달지 않고 검사받는 내 모습보다는, 어떤 "균"들을 검사하는지 물어보는 내 모습이 나는 더 좋다. 


내가 당연히 물어봐도 되고 알아야 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궁금한 것이 많게 되는 날까지. 

파이팅.


2022년 7월 1일 새벽

한국에 있는 반가운 친구에게 전화를 받아

기분이 조금은 풀린 날.

고마워 미선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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