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der-Willi syndrome
식욕.
다이어트의 적이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핑계가 되기도 하고, 생존의 도구가 되기도 하는 인간의 욕망 중 하나인 식욕. 인간의 욕망이라면 응당 나쁜 것만은 아닐 테지만, 그 식욕이 병적으로 조절할 수 없게 되어 버리면 이는 더 이상 욕망이 아니라 살기 위해 금욕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린다.
인간은 식욕이라는 욕망을 다스릴 수 있도록 태어난다. 여러 유전자들이 조화롭게 일하며 내 몸이 지금의 나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이러한 유전자들이 식욕을 관장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특정 유전질환들을 보면 식욕도 어느 정도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구나 깨달을 수 있다.
Prader-Willi syndrome (프라더윌리 증후군)
Prader-Willi syndrome 프라더윌리 증후군이라는 질환이 있다. 유아기 때는 근육에 힘이 없고 잘 먹지 못하다가 만 2세쯤부터 식욕이 왕성해지며 몸무게가 급격하게 늘고, 결국에는 비만으로 이어지게 되는 질환이다. 이 질환을 가지고 있는 아기들의 부모님들은 처음에는 아기가 힘도 없고 너무 안 먹었는데, 2세쯤 되면서 잘 먹고 몸무게가 팍팍 느니까 우리 아기가 드디어 잘 먹게 되었다며 좋아하시곤 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철저하게 식단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너무나 쉽게 비만으로 이어지게 되고, 비만이 가져오는 다양한 합병증으로 인해 환자들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럼 식단 조절을 하고, 열심히 운동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프라더윌리 증후군이 있는 환자들은 음식이 배에 꽉 차 있어도 끊임없이 배고픔을 느끼기 때문에 식욕을 조절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 또한, 운동을 해도 살이 빠지기 힘든데 그 이유는 근육의 양이 이 증후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1/3 정도밖에 없고 체지방이 많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프라더윌리 증후군이 있는 환자들의 경우 그 정도가 환자마다 상이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지적장애가 있는데, "먹으면 안 된다"라는 것을 인식하고 따르는 것이 지적장애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훨씬 힘들다.
이 외 프라더윌리 증후군의 특징으로는 발달이 느리고, 집착과 같은 행동장애가 있고, 생식샘 저하증, 저신장, 척추측만증, 특징적인 얼굴 생김새, 수면 무호흡증 등이 있다. 여느 유전질환과 마찬가지로 프라더윌리 증후군도 완전한 치유(cure)는 없고 증상에 맞춰 치료를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성장호르몬 치료를 통해 키 성장은 물론, 근육에 힘을 더해 기동성을 높여 비만을 조절하고, 발달치료/행동치료 등을 통해 발달장애와 행동장애 개선에 도움을 준다.
프라더윌리 증후군이 생길 수 있는 유전적인 요인이 조금 복잡한데, 쉽게 설명하자면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15번 염색체의 특정 부분이 일을 해야 되는데 일을 하지 못해서 생기는 질환이다. 프라더윌리 증후군과 연관되어 있는 부분은 15q11.2-q13인데, 아래 15번 염색체 지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15번 염색체를 두 개씩 가지고 있다 - 하나는 엄마, 하나는 아빠한테서 물려받는다. 엄마한테서 물려받은 15번 염색체에서 프라더윌리 증후군과 연관되어 있는 부분(그림에서 파란색 유전자들)은 일을 안 하는데, 이는 그 부분이 각인(imprinting)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빠한테서 물려받은 15번 염색체의 파란색 유전자들만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부분이 병적 변이에 의해 메틸화 되어 엄마의 15번 염색체처럼 각인이 되어버리거나, 파란색 유전자들이 포함된 부분이 결실(deletion)이 된다거나, *trisomy rescue라는 기작에 의해 엄마한테서 두 개의 15번 염색체를 물려받는 경우 등에 의해 프라더윌리 증후군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Trisomy rescue: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할 때 실수로 특정 염색체가 세 개인 세포가 생길 수 있다. 이때 우리 몸의 어떤 기작에 의해 세 개 중 하나의 염색체를 버려서 정상 숫자인 두 개의 염색체만 갖도록 만드는 것을 trisomy rescue라고 한다. 만약 이때 엄마 15번 염색체가 두 개, 아빠 15번 염색체가 한 개 있었는데, 잘못하여 아빠 15번 염색체를 버리게 되면 엄마 15번 염색체만 두 개 받게 된다. 이런 경우 프라더윌리 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
UCLA 소아 유전학과에서 일하던 당시 프라더윌리 증후군(PWS)이 있는 5살짜리 여자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차트에는 분명 PWS라고 적혀 있었는데, 내가 만난 아이는 꽤 날씬했다. 이 나이쯤 되면 대개 비만이 진행되어 있는데 이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엄마가 얼마나 노력을 하시는지 느껴져서 마음이 찡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6개월쯤 되었을 때 발달이 느리고 근육에 힘이 없어 처져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병원을 다니며 여러 가지 검사를 받던 중 프라더윌리 증후군 진단을 받게 되었다. 아이는 25개월쯤 되었을 때 근육에 힘이 생기고 잘 먹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당시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정말 철저하게 식단 조절을 했다고 한다. 엄마께서 사용하신 방식은 정확하게 무게까지 재서 필요한 양만큼의 음식만 아이 전용 식판에 먹이는 것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아이의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는 이해를 못 하셔서 아이의 엄마에게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주셨다고 한다.
"아이를 그렇게 먹이면 어떻게 하냐, 아이가 자라겠냐, 유전질환이 있으면 더 잘 먹여야 낫지 그렇게 먹여서 되겠냐" 등.
엄마에게는 엄청난 마음의 상처였지만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꿋꿋하게 철저히 식단 조절을 했다. 그 결과 아이는 정상 BMI를 유지 중이었다. 엄마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preschool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간식"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작년 어느 날, 새벽에 먼저 일어난 아이는 냉장고를 열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고 한다. 요구르트, 치즈, 토마토, 케첩, 사과 등 맛이 있는 음식뿐만 아니라 양파, 생 시금치, 생 당근 등 어린아이가 그냥 먹기에는 힘든 음식들까지 베어 문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냉장고에 자물쇠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음식이 들어있는 모든 찬장과 서랍장도 말이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날 내내 그냥 엄마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며 마음 아팠고, 자물쇠 채워진 냉장고를 보며 울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며 마음 아팠고, 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 엄마를 욕하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 아팠다.
그 어떤 유전질환도 쉬운 질환은 없다. 다 그 나름대로 힘들다.
그런데 인간의 필수 욕구인 식욕을 평생 조절하며 살아야 한다니 참 속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다해 아이를 지켜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대단했다.
엄마가 돼서 보니, 이제와 서야 속상한 마음 꾹 눌러 참아내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 엄마가 "대단하다"라는 말로는 감히 표현하지 못할 만큼 큰 사람처럼 보인다. 지금 그 엄마를 만난다면 같은 엄마로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삶의 경험이 쌓이고 상담의 경험이 쌓이며 나이 든다는 것이 참 감사하게 느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