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서는 그저 흔한 사랑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려니 했다. 근데 드라마의 첫 장면은 인사부장인 문소리가 희망퇴직 서류를 접수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아이가 둘인데 큰아이가 고3이라며, 회사에서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직원이 부르짖는다. 2년 치 연봉과 위로금이 3천이라고 했던가. (누군가는 금액을 보면, 나한테 저걸 주면 얼씨구나 받고 이직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회사는 아마 그럴 능력 있는 나이대의 직원에게는 저렇게 위로금을 챙겨주지 않을 것이다.) 직원이 조심스럽게 금액을 협상하고자 시도도 해보지만 인사부장 앞에서 씨도 안 먹힌다. 인사부장은 기계적으로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직원의 선택이지만 회사 큰 이미 결론을 내렸다는, 선택은 당신이 하지만, 선택은 이미 내려져있다는, 말이지만 말 같지 않은 말을 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럼 있을 때 잘하던가, 내가 그럼 뭘 또 그렇게 잘 못했는데? 그럼 네가 뭘 또 그렇게 나한테 잘했니? 이것도 곱게 헤어져주는 거니까 좋게 좋게 합의 이혼해.
애증이 얽힌 관계는, 사람 사이나 사람과 기업사이나 어렵긴 매한가지다. 말로는 법을 운운하지만 법은 정말 갈 때까지 갔다는 말에 반증일 뿐, 그 안에 감정이 알알히 맺혀있다. 직원은 결국 파르르 떨며 인사부장에게 네가 이렇게 사람 피눈물 나게 하고 그렇게 잘 살 줄 알아? 얼마나 잘 살지 두고 볼 거야! 라며 서슬 퍼런 말을 던지지만, 결국 서슬 퍼런 칼날에 당한 가슴을 안고 밖에서 운다. 인사부장 앞에서 울 수도 없고 가족 앞에서 울 수도 없고 지금 자신의 처지가 서럽고, 회사에 배신감이 든다. 가족 같은 회사에서 그저 족같이 되어버린 회사.
직원도 아프지만, 그 직원에게 비수 꽂히는 말을 듣고 한숨을 푹 내쉬며 물을 찾고 있는, 그런 말을 해야만 하는 거기 인사부장에게 몰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왜 인사부를 택했을까. 저렇게 사람 아프게 하는 일을 하고 그녀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목이 탄다. 인사부장은, 정수기로 가서 물을 마셔보려고 하지만 회사는 긴축재정으로 생수도 제공하지 않는다. 직원들은 그녀가 다가가면 슬금슬금 칼을 든 저승사자 피하듯 입을 다물며 물러난다.
또 다른 장면,
"상무님, 여기가 무슨 생선가게예요? 머리 떼고 꼬리 떼고 내장 발라내고 뭐 토막까지 쳐달래요? 대한민국엔 노동법이라는 게 있고요. 사람 한 명 내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러세요"
"아니 상대방이 그렇게 토막 생선으로 달래잖아! 정규직 80%, 40%로 만들어봐!"
인사부장은 이번엔 너무나 자연스럽게 직원 측에 가서 임원에게 그런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설명하고 있다. 아, 정확하게 말하면 근로자 측에 서서 노동법을 얘기하고 직원의 해고에는 적절한 명분이 있어야 하며 부당해고가 힘듦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 그녀는 현재 노측과 사측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포지셔닝을 바꿔가며 일을 하고 있다. 그것은 그녀의 일이며 그곳은 그녀의 전쟁터다.
인사부장에게 일이란,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의 벼슬길?! 과 그녀의 일터를 쥐고 있는 건 회사다. 그녀는 본인 자신도 직원이지만, 동시에 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 신분으로 사용자를 대변하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아이러니함을 태생적으로 가진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완벽하게 직원 측에 설 수도, 완벽하게 회사 측에 설 수도, 서지도 않는다.
사람을 사람으로만 보면 일이 안된다.
그렇다고 사람을 일로만 보다간 정말 일 치른다.
"일단 회사가 살아야 직원도(저도) 살죠. "
인사부장의 말이다.
"직원이 잘 되어야 회사도(저도) 잘 되죠."
인사부장의 말이다.
둘 다 진심일 거다. 그래야 그녀도 잘되니까.
진짜, 미치지 않고서야,
왜 그 일을 시작한 것일까 그녀는.
인사부장이 인사를 시작한 스토리가 궁금하다.
드라마 필수공식 로맨스 괜히 끼워 넣지 않고, 직장인들의 치열한 생존기로 잘 마무리할 수 있는 그런 드라마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