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thing will be fine

나는 그렇게 뉴델리의 공항을 미친사람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by inasani

작년 12월은 안팎으로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진 달이었다.

전 대통령이 한밤중 비상계엄을 선포하기도 했고, 떠올리기 힘든 아주 큰 비행기 사고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왼쪽 슬개골 탈구로 인한 치료와 재활이 필요했고,

그와중에 프리랜서로 수업을 나가던데서 갑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날삼재가 참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떠나는 중이었다.


말그대로 폭풍같던 한달동안 나는 마음의 준비도 하지못한채 그대로 12월 31일 인천공항까지 떠밀려왔다.

몸과 맘이 쇠했는지 난데없는 중이염 증상까지 더해져 떠나는 설렘은 커녕 걱정만 커졌다.

'이대로 괜찮은건가..'


공항내 외래진료도 가능한 의료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약처방을 받고 한숨돌리나 싶었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귀국 날짜를 정하지 못해 편도로 구매했던 비행기티켓 때문에 체크인데스크에서 퇴짜를 맞았다.

울며 겨자먹기로 구석에 가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한순간에 내 여행기간이 정해져 버린셈.

이쯤되니 그저 빨리 비행기에 올라 한숨 자고만 싶었다..







이래저래 시간을 많이 까먹었어도 커피는 포기안해.


게이트 바로앞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이마저도 나오는데 20분이 걸려버렸다.

보딩이 시작되서 그냥 들고 타려고 했지만 뜨거운 음료는 기내반입이 불가하다고..

너무 뜨거워서 빨리 마시지도 못하겠고 결국 그대로 내려놓고 들어갔다.

세상이 날 억까한다는 표현을 바로 이런때 쓰는건가.

뭔가 일이 안풀릴땐 그냥 가만히 있는게 아무래도 상책인듯ㅜ






자리에 앉고 슬그머니 베개 안쪽을 들여다보자 인도가는게 조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 베개는 당연히 쓰지않고 몇시간을 기절하듯 잤다.


내가 정신없는 에어인디아를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는 기내식과 수하물 무게가 참 제너러스 하기때문.


미니간식에 식사에 중간간식까지 델리까지 가는 8시간 반동안 먹을게 끊임없이 나온다.

자고 있으면 밥먹으라고 막 흔들어서 깨우고 안먹겠다고 하면 식판 보여주면서

이것중에 하나라도 고르라고까지 한다! 완전 내스타일이라니까.









배가 부르고 마음에 여유가 좀 생겨니 새삼 한 해의 마지막 날을 혼자 비행기 안에서 보내고 있단 사실이 생경히 느껴졌다.


대체 12월엔 무슨일들이 벌어진건지 찬찬히 되짚어 보고,

당장 내일부터 시작되는 2025년은 어떻게 살고싶은지도 떠올려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영화도 봤고 책도 조금 읽고.. 오래간만의 여가시간을 꽤나 알차게 보냈다.







착륙이 가까워지자 슬슬 환승시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2시간이 채 되지않는 시간동안 입국심사 및 수하물을 다시 찾고, 국내선 체크인-검색까지 마쳐야만 한다.

그리고 여기는 인도다. 그 어떤것도 내 시간에 맞춰 움직여주지 않을것이고 모든곳에 사람이 넘쳐날 것.











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내리자마자 전속력으로 이미그레이션 앞에 섰다. 이미 줄이 길어서 먼저오신 분들께 양해를 구하며 앞으로 나갔다. 줄을 단단히 잘못섰다. 직원분 일이 서투신지 하나 체크하면 옆 카운터에가서 물어보고 돌아와서 체크하고 또 가서 물어보시는 바람에 여기서 시간 절반이 날아갔다.


다음 미션은 수하물 찾기. 수하물을 기다리는 동안 환승게이트 위치를 거기있는 직원과 두번이나 미리 체크했다. 델리 공항은 꽤나 크고 복잡한데 이제 더이상의 지체가 있어서는 안된다!! 근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이상할만큼 짐이 안나오는거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다시 아까 게이트 알려준 직원에게 짐이 안나온다고 했더니 '너 푸네로 환승이야? 그럼 짐 여기 미리 나와있어' 하고 그제야 알려주는거다. 저기요..? 제가 처음부터 환승한다고 게이트 두번이나 물어봤잖아요...??? (웰컴투 인디아^^) 화를 낼 시간도 없었다. 일단 들고 냅다 뛰기 시작. 식은땀이 뻘뻘나고, 갑자기 이 생의 업보를 돌아보게 된다.


2024년의 마지막날, 나는 그렇게 뉴델리의 공항을 두달치 짐을 짊어진채 미친사람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체크인 카운터가 나를 마지막으로 마감했고,

여성 검색칸안에 들어섰다 나가려는데 (인도 공항 검색대는 여자, 남자의 구분이 있다. 여성은 탈의실 같은 공간에 들어가서 여성 검색관에게 몸검사를 받게된다) 갑자기 나를 불러 세운다. '잠깐만 다시 뒤돌아봐'

앗 이번엔 뭐지 가지고 있으면 안될걸 소지한것도 아닌데 순간 몸이 바짝 긴장했다.

찍~ 검색관이 뭔가를 내 등에서 떼서 보여준다. 비행기 좌석 시트에 붙어있던 일회용 커버였다. 마음이 급한나머지 비행기에서부터 그걸 붙이고 온 공항을 뛰어다녔던 거다. 둘다 크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 웃음과 함께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 이건 분명히 인도가 내게 전하는 유머섞인 환영인사 였다.

Everything will be fine, don't worry.


보딩타임에 정확히 맞춰 게이트에 도착했다.

역시나 보딩타임은 30분 딜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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