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르모 Jul 16. 2021

Into the unknown

다섯 번째 유산


 I've let go the need to know why.

 For you know better than I.


 왜인지 이유를 알고자 하는 마음도 내려놓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보다 잘 아시기 때문에요.


「Betther than I - from the movie, Joseph: King of the dreams」





 아무리 고민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왜 내가 다섯번이나 유산을 할까?'와 같은 것들.

 

 'What have I done to deserve this?' 라는 물음이 절로 나오고, 이것이 시험이라면 무엇을 위한 테스트인지 이유를 알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유를 알고자 하는 욕심도 내려놓는 것. 하나님이 나보다 더 잘 아시니까.


 의학적으로 나의 반복 유산의 이유는 "Unknown(알 수 없음)" 이다.

 현대 의학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검사에서는 모두 정상이 나왔으니,

 현대 의학이 밝혀내지 못한 어느 곳에 다섯 번 유산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HTTP 404 : not found" 같은 에러가 발생한 거다. Broken link나 dead link 로 링크가 끊겨서 어디서 오류가 발생한 건지 파악할 수 없는 그런 에러. 문제의 해결은 정확한 원인 파악이 첫번째 스텝인데. 이것 참.


 유산이 반복될 수록, 이 과정에 적응한다는게 참 놀랍다. 병원에서 다섯 번째 유산을 확인하고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저 뭐가 문제인지, 다음 임신 준비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상담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그날 밤 자려고 눕고나서야 나는 흑흑 울었고, 원조 울보 병둥이는 울지도 않고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너무 울어서 내 슬픔에 내가 잠기지 않게, 내 눈물에 우리의 마음에 먹구름이 끼지 않도록, 우리의 영혼이 크게 낙심하거나 우울해지지 않게 적당히 울었다.

 내가 너무 슬퍼하면, 나를 안고있는 우리 남편이 너무 마음 아파할테니까.






 '하나님이 왜 항상 아기를 줬다 뺐어가실까?'


 유산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병둥이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소용이 있는거냐고 물었다. 나는 모태신앙의 짬으로 갖은 답변을 해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답을 구하는 물음이 아니었다. 어떤 답을 하더라도 반박할 말이 가득했다.


 '하나님의 때'라든가 '그분의 계획'은 나도 믿어 의심치 않는 것 들이다.

 물론 내가 과거를 돌아봤을 때에 한정이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모든 길이 축복이었지만, 현재를 살 때는 전혀 깨달을 수 없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과 상통하는 맥락이랄까.


 언제나 결론은 다 지나고 나서야 말할 수 있으니까.

 그저 과정을 지나며 우리 안에 무엇인가가 성장하는 것 정도만 안다.


 우리가 남의 아픔을 좀 더 잘 헤아리게 되었다는 것.

 마음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감사함을 배우는 것 정도.






매일 오후 12시 '정오 감사' 알람이 울린다.

다섯 번째 유산을 맞은 다음 날도 어김없이 알람이 울렸다.

 

알람이 울리면 항상 습관적인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오늘도 행복하고 평안한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3초 짜리다. 유산의 다음 날도 어김없이 평안한 하루여서, 마음은 다소 축축했으나 습관적인 감사의 기도를 또 뱉었다.


임신을 확인하고 세웠던 여러가지 계획들이 사그러졌으나, 여전히 나의 세계는 평안하고 행복하다. 한 가지의 슬픔이 찾아왔으나, 나머지 아흔 아홉은 평소와 같이 평안할 따름이다. 너무 많은 축복을 허락하셔서, take back하신 그 것에 불평하기가 참 어렵다.


 '여보, 내 뱃속에서 제대로 크지 못한 그 아가들을 하늘나라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천국의 천사가 되었을까? 아니면 사랑이 가득한 그 곳에서 티 없는 아이로 행복하게 자라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나중에 천국 가면 알 수 있겠지.


 



"Into the unknown"


 우리 부부가 오래 전부터 꾸는 꿈이 있는데, '마흔 살에는 해외에 나가서 살기'다.

 살다보니 마흔이 너무 가까워, '마흔 다섯 살'로 최근 정정했다.


 거창한 이민이 될지, 몇 년 간의 세계 일주가 될지, 운이 좋아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이 될지, 아님 발리에서 1년 살아보기 일지 아직은 모르지만.


 마흔 다섯 살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

 막연히 떠올려 보면 어디에서든 소박한 하루에 감사하며 웃음 짓는 우리가 그려진다.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다 보면

 언제 들어섰는지도 모를 새로운 길을 걷고 있겠지.



 아주 오랜만에 영어 공부책을 사서, 1일차 영단어를 외웠다.

 Precede, recede, incessant, contraception...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2일차는 시작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야금야금 비가 오는 줄도 모르게, 가랑비에 옷 젖 듯이 걸어가다보면

 10년 뒤에 세계 어딘가에서 유창한 고오급 영어를 하고 있지 않을까?

 (언젠가 Posh accent를 자연스럽게 구사할거야)



 태어날 우리 아이는 그냥 마냥 행복한 아이로만 키우고 싶다고 우리 부부는 항상 얘기하는데, 발리의 느긋하고 따뜻한 날씨처럼, 에메랄드 빛 바다의 찬란한 윤슬에 감동하고, 하나님이 때에 따라 보내주시는 시원한 바람과 비에 감사하며, 원 없이 모래를 밟으며 놀면서, 이 세상의 아름다운 색채에 감동하면서, 듬뿍 사랑만 받으면서 그렇게 컸으면 좋겠다고.


 그러면서 동시에 (한국의 헬리콥터 맘의 마음가짐으로) 언젠가 태어날 아이 영어 교육을 위해 테솔을 공부해볼까 고민하기도 하고, 오빠가 주재원 나가는 건 아이가 5살~7살쯤 언어를 잘 흡수할 때 쯤, 어쨋든 국제 학교를 보낼 수 있을 때가 좋겠다는 뜬금없는 상상을 한다.


 아, 다 갖고 싶은 이 욕심.

 행복한 상상을 하는게 우리 부부의 삶의 원동력인데, 요즘에는 '마음의 계획은 사람에게, 말의 응답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절절히 배우는 중이다.


 인생 계획이 내 뜻대로 안되었다고 화를 낼 순 없지.


 



'모든 것을 의심하라'


 어제는 반복 유산/습관성 유산으로 유명하다는 병원에 진료를 보러갔다.

 의사 선생님 본인도 나같은 케이스는 경험이 잘 없다고 말씀하신다. 배아도 늘 최상급 눈사람 배아, 유전자 검사에서도 정상, 내막 두께도 좋고, 이식하면 무조건 착상이 되고, 혈전, NK cell로 불리는 면역 지수도 정상, 갑상선도 문제 없고, 그 외 원인이 될만한 것도 없으니.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게' 해결책이라고 하신다. 검사 결과를 100%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과정에서 모든 요소들을 의심해보는 것. 다음에는 유산이 없으면 좋겠지만, 유산의 징조가 보이면 다시 태아와 태반 검사를 해보는 것으로 시작해보자고 하신다.

 

 '다음 유산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나도 속으로 동의하며 진료실을 나섰다.

 지금 상황에서는 해 볼 수 있는 검사나 진단 툴이 없다고 하셔서, 마음이 얼마간 우울해졌다.


 길지 않은 진료 상담이었다.

 그런데 아침/점심을 걸러서 그랬는지, 뾰족한 수가 없어 낙담해서 그랬는지, 34도를 웃도는 숨 막히는 여름 날씨 탓이었는지, 평소에는 절대 마시지 않고, 시도도 해보지 않을 '돌체 카라멜칩 프라푸치노'를 마셨다.

 

 카페인+카라멜 시럽+카라멜 칩+얼음이 마구 갈린 대환장 음료를 마시며 집까지 걸었다.

 한 손에는 병원 근처 유명한 빵집에서 산 크로아상과 말차 데니쉬를 들고.








최근 창세기 필사를 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초창기 역사를 따라가다보면 가히 난임의 역사라 할만 하다.


아브라함-사라도 난임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모든 복을 주셨지만, 아이는 매우 늦게 허락하셔서, 무려 사라 91살 + 아브라함 101살에 이삭을 낳는다. 아들을 주신다는 말에 그 부부는 '우리가 이렇게 늙었는데 임신을 할 수 있나?' 하고 웃을 정도였다.

이삭-리브가도 난임 :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해서, 이삭의 기도로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낳는다. 

야곱-라헬도 난임 : 언니 레아(와 두 시녀)가 아들 열, 딸 하나를 낳을 동안 라헬은 임신 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요셉'을 허락하신다. 그리고 아들을 하나 더 달라고 기도하여, 간절히 바라던 둘째 아들 '베냐민'을 낳지만, 출산하다가 숨을 거둔다. How tragic. 야곱은 라헬을 위해 14년을 일할 만큼 사랑했는데, 이 부부는 같이 늙어가진 못했다.


 라헬이 불타는 질투과 괴로움 속에서 낳은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가장 사랑받던 아들에서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등 갖은 개고생을 다하지만, 결국 중요한 순간 야곱의 가정을 일으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세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꿈쟁이 요셉이 그 개고생을 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가 'Better than I' 라는 고백이 담긴 곡. 고3때부터 내가 참 좋아하는 곡이다. 영어 그대로도, 한국어 번안도 깊은 은혜와 깨달음이 있는 곡.



 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뚱딴지 같이, '그때도 시험관이 있었더라면 저렇게 까지 고생은 안 했을텐데.' 생각한다. 그랬더라도 달라질게 없었으려나? 나는 의학이 이만큼 진보된 시대에 살아서 언제나 감사한다. 


 자매인 레아와 라헬을 비교하는 구절은 '레아는 시력이 약했고, 라헬은 외모가 아름답고 얼굴이 예뻤습니다.'로 나오는데, '저 시절에 라식 수술이 있었다면, 레아가 좀 더 쾌적한 삶을 살았을텐데.' 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로서의 삶은 여전히 괴로웠으려나 ? 삶의 모든 순간과 포커싱이 나인 병둥이를 남편으로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Into the unknown"


 삶의 대부분은 'unknown'이지만,

 막연히 10년, 20년 후를 떠올려 보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병둥이와 나는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 같다.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더라도 우리 둘 만 함께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마음.


 남편이 행복 치트키라는 건 참 좋은 일.



 어젯 밤에 자기 전에 병둥이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했는데, 그 기도에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흘렀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다 알고 어루만져 달라고 기도하는 이 남편이 정말 좋아서. 나의 돕는 배필.

 옆에서 나를 꼭 껴안고 조근조근 오늘 병원에 다녀왔던 일, 나의 마음, 곧 이사가는 일, 은행 업무 보는 일, 나쁜 꿈 없이 꿀잠 자게 해주시고, 내일 골프 스코어까지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귀여운 병둥이를 어찌할까. 


 나의 전용 보일러인 남편은 넘치는 열로 내 차가운 몸을 따스하게 데울 뿐 아니라, 다정한 마음과 깊은 사랑으로 나도 모르는 새 찢어졌던 마음까지 따스하게 붙여놓는다.


 잠이 노곤하게 밀려와 손을 올려 흐른 눈물을 닦기가 귀찮아서, 남편한테 눈물 좀 닦아달라고 얘기 하는 밤. '여보, 왜 울었어?' 하고 놀라며 묻고 몇 번이나 눈물을 닦아주는 병둥이의 다정한 손길을 맞으며 스르르 잠이 드는 밤.


 '나의 위로는 예수님 뿐이야'라고 해서 나는 종종 그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지만.

 여보, 내가 스무살 때부터 말했잖아. 여보를 나의 짝으로 보내주셔서 하나님께 정말 감사한다고.

 당신은 내 평생의 감사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믿음 안에서 견고해져서 사랑을 널리 전하는 그런 마음 고운 부부가 되자 ❤


p.s. 정유니 피셜에 의하면 오빠가 '내 축복 몰빵'이라던데. Super agree.







 다섯 번째 유산이 되었다고, 잘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새치가 너무 많이 생겼다고 푸념했더니, '탈모가 아니라 새치인 게 어디냐'는 쪼의 카톡을 생각하며 피식.


 나 또 유산이 되었다고 말하니, 전화해서 나보다 더 먼저 우는 수화기 너머의 찬자와 은지니의 따스한 마음을 차곡차곡 담아서.


 같이 저녁 먹자고 하더니, 서프라이즈로 애플 워치를 사온 민도기. '금융 치료'라고.


 밤낮으로 기도하는 울 엄마의 사랑. '엄마가 해줄 건 기도 밖에 없다'는 시엄마의 사랑. '기도하고 있어' 응원해주는 많은 마음들.


 

 유산했다고 하면 몸조리 하라며 이것 저것 보내주는 기프티콘을 더이상 받기도 미안해서, 임신도 유산도 정말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살짝 알리게 되었는데, 다른 친구들이 나중에 이걸 알고도 왜 그때 말해주지 않았는지 서운해하지 않길 바라면서.



내 삶에 온갖 사랑이 눈부시게 가득해서 감사.

서른 다섯의 나는 좋은 사람들 곁에서 반짝반짝 거리는구나.


앗, 눈부셔 !

 

 



 


작가의 이전글 예민하든지 말든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