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빛을 발한 테리 길리엄의 위대한 프로젝트.
19.05.24. @CGV평촌
지난 해 칸 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을 때나 부산 영화제에 초청됐을 때부터 독특한 제목때문에라도 큰 관심이 갔던 그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관람하였다. (많은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테리 길리엄 감독의 작품 세계가 그다지 취향에 맞지 않아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했던 그의 신작은, 마치 테리 길리엄 스타일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매력으로 가득한 작품이었다. 이런 기이함과 괴상함이라면 얼마든지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이 독특한 영화는 전반적인 줄거리부터 무척 특이하다. 소설 돈키호테를 모티브로 한 보드카 광고를 찍기 위해 스페인으로 온 CF 감독 토비가 10년 전 자신의 단편에 출연한 이후 스스로를 돈키호테라고 믿으며 사는 하비에르를 만나 기이한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라는 스토리 전개는 어디로 튈지 모를 개성으로 러닝타임 내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익히 알려졌든 지난 1989년부터 소설 '돈키호테'의 영화화를 기획했지만 계속해서 의도치 않은 변수들로 제작을 중단해야 했던 테리 길리엄이 오랜 숙원을 해소한 셈인 이 영화는, 보고 있노라면 왜 그가 돈키호테라는 캐릭터에 그토록 집착했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만든다. 망상에 빠져 스스로를 돈키호테라고 부르며 산초와 함께 기이한 여정을 떠나는 소설 속 돈키호테 이야기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영화 속 토비의 여정과 어우러지며 독특한 재미를 선사하는데, 테리 길리엄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영화의 개성은 가히 대단하다.
제목만 봤을 때 단순히 시대극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영화는 오프닝부터 예상을 뒤엎는 전개로 생각지 못한 재미를 선사하더니, 본격적으로 토비가 하비에르를 만난 이후부턴 대체 이 영화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을 만큼 기이한 매력을 자아낸다. 과거 돈키호테 영화를 찍었고 현재 돈키호테 광고를 찍고 있는 주인공이 스스로를 돈키호테라고 믿는 남자를 만나 여행을 하며 그 과정에서 돈키호테 꿈을 꾼다는, 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건지 모르겠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전개는 희한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영화들을 연출해 온 테리 길리엄 감독답게 이번 영화 역시 온갖 장르가 뒤섞여있는 기이한 세계가 펼쳐지는데, 그 사이에 예기치 못한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 요소와 현재 연예 사업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가 보이는 풍자들은 이 기묘한 영화를 더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영화의 황당함을 한층 더하는 후반부 성주간 축제 시퀀스는 궁극적으로 영화를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한 것처럼 보이는 신랄한 메시지를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동시에, 한 편의 소동극이자 모험극으로써 큰 재미를 선사한다.
한때 넘치는 열정으로 단편을 찍었던 CF 감독이라는 설정부터 자연스럽게 테리 길리엄을 대입하게 만드는 주인공 토비의 활약은 이를 연기한 아담 드라이버의 뛰어난 연기 덕에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패터슨> 같은 저예산 영화부터 <스타워즈> 시리즈까지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그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아담 드라이버는 이번 영화에서 특히나 인상적인 호연을 선보인다. 더불어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만드는 돈키호테 역의 조나단 프라이스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창작에 대한 열정이 식은 주인공이 여전히 캐릭터 자체에 푹 빠져있는 인물과 만나 그 누구에게도 쉽사리 설명할 수 없는 모험을 떠나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 담아있는 광기어린 집착에 대한 애정과 유희만을 좇는 최근 연예 사업에 대한 풍자, 그리고 돈키호테라는 작품에 대한 헌사까지. 어쩌면 그 오랜 시간동안 테리 길리엄이 돈키호테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제대로 녹아들어있다고 할 수 있을 이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것만으로도 큰 재미를 선사하며, 더 나아가 기어코 오랜 프로젝트를 끝낸 감독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