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뭅스타 Jun 17. 2019

<기생충>

씁쓸한 뒷맛까지도 참으로 완벽하다.

19.05.30. @CGV평촌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봐야 할 이유가 충분했던 상황에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하며 더더욱 기대치가 높아진 그 영화 <기생충>을 관람하였다. 그렇게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할 경우 상대적으로 더욱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어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그토록 부풀었던 기대를 가뿐히 충족시켜주다 못해 기대 이상을 보여주었다. 일단 당장은 이 영화가 선사한 여운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아보지 않은 채 관람한 영화는, 마땅한 수입 없이 반지하에서 근근이 살아가던 기택의 네 가족이 우연이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생의 반전을 꿈꾸는 것으로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다. 가족의 장남 기우가 유학을 떠나는 친구의 제안으로 화려한 저택에서 고액 과외를 맡게 되는 초반부터 흥미를 이끌어내던 영화는 이후 펼쳐지는 신박한 전개로 러닝타임 내내 굉장한 몰입감을 자아낸다.


최근작이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설국열차>와 <옥자>인 상황에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어떤 면에선 다시 초반의 색깔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와이파이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 집안에서 생활하는 네 가족의 모습을 담아내는 오프닝부터 최근 그의 작품들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더니 중반부 이후 펼쳐지는 전개는 자연스럽게 그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떠올리게도 만든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를 단순히 봉준호 감독의 초기로의 회귀라고 표현하기엔, 영화가 담아내는 신랄한 유머와 씁쓸한 메시지는 이전 작품들보다 한층 더 진화된 듯한 인상을 선사한다.

영화의 초반 1시간 가량은 봉준호 감독의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블랙 코미디 장르로써의 재미를 자아낸다. 기우의 과외를 시작으로 네 가족이 꾸미는 계획과 그 계획이 착착 실현되는 과정은 그 사이사이에 묻어있는 유머러스한 코드와 상황들로 자연스레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러던 영화는 중반부 이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전개가 펼쳐지며 급격히 고도의 긴장감을 선사하기도, 이윽고 평범한 소시민들의 애환과 씁쓸함을 그린 전작들처럼 깊은 여운을 선사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종의 장르 전환 역시 부드럽게 이어지며 극의 신선한 재미를 더한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서 결국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현실에 대한 해학적이면서도 신랄한 풍자인데, 이 또한 각종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이번 영화에서 여전히 빛을 발한다. 표면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빈부격차의 씁쓸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그러면서도 소시민으로 대표되는 이들을 선역으로,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는 악역으로 그려내는 보통의 영화들과 다른 차별화된 접근과 설정으로 전무후무한 매력을 선사한다.

한편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또한 그들의 필모그래피에 길이 기억남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는데, 특히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경성학교>나 <검은 사제들>에서보다 더욱 돋보이는 박소담 배우와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던 <인간중독>에 이어 또 한번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는 조여정 배우는 그 중에서도 빛난다. 더불어 초반부터 올해 촬영상 트로피의 주인공은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 홍경표 촬영 감독의 예술적인 감각 역시 새삼 놀랍다.


최대한 줄거리에 대한 많은 정보 없이 관람해야 더욱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에 스토리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지는 못 하겠지만, 감히 단 한 순간도 머리 속으로 예측하는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 영화라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칸 영화제가 좋아할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최근 황금종려상 수상작들과 비교했을 때 대중적으로 편하게 즐길 만한 지점들도 많은 작품처럼 느껴진다.

그저 이토록 뛰어난 감독과 동시대에 살며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처럼 느껴지는 영화였다는 말로 이 흥분에 찬 리뷰를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전작 <옥자>가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비교적 아쉽게 느껴졌다면, 이 영화는 그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을 <살인의 추억> 다음으로 가장 마음을 뺏겨버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족과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