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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뭅스타 Jul 16. 2019

<그녀>

제아무리 힘든 추억이 있을지라도, 결국은 사랑.

19.06.01. @아트나인


6월의 첫 영화로 5년 만에 재개봉에 나선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를 관람하였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독특한 설정과 매력적인 영상미로 개봉 당시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았던 이 영화는, 다시 관람한 오늘은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감흥을 선사하며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미 볼 사람은 다 봤을 것 같은 이 영화는,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써주는 대필 작가로 일하는 테오도르가 아내 캐서린과 별거 이후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을 빠지며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아내와 헤어진 후 인간 관계에 회의감을 느끼며 살아가던 테오도르는 자신의 모든 말과 행동을 이해해주는 사만다에게 점점 이끌리게 되고 운영체제와 사랑하는, 조금은 괴기하게 보일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무척 애정하는 영화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관람한 건 개봉 당시인 2014년 이후 5년 만인 살황에서 이 영화 <그녀>는 비교적 젊었던 그 당시보다 나름대로 인간관계에서 설렘을 느끼고 상처를 받기도 한 지금의 입장에서 더욱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감정을 쏟고 표현하는 것에 지쳐서 차라리 그의 모든 것을 받아주고 이해할 줄 아는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테오도르의 감정이 더욱 더 공감되고 이해되는 느낌이었달까.

처음 관람했을 때부터 이 영화는 구체적인 스토리 전개를 파악하고 이해하기 이전에 독특하고도 감각적인 영상미에 이미 빠져들게 만들었다. 운영체제 OS1의 테마 색깔이자 극 중 테오도르가 즐겨 입는 셔츠의 색깔인 다홍색의 이미지부터 영화 내내 펼쳐지는 각종 원색의 이미지나 이를 스크린에 담아내는 파스텔 톤의 영상미는 그 자체로도 이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강한 동력을 갖는다. 더불어 영화의 주제가 'The Moon Song'의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는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애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영화는 결국 사랑에 아파하고 사랑에 괴로워하지만 결국 또다른 사랑을 갈구하는 한 남자가 비로소 성숙해지는 과정을 그린, 사랑에 한해선 일종의 성장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작품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의 아내 캐서린을 '그가 바라는 아내'로 규정하고자 함으로써 갈등을 빚기 시작한 테오도르가 그를 온전히 사랑하는 사만다를 만나 새로운 로맨스를 꿈꾸고, 결국은 다시 반복되는 과정에 아파하며 비로소 상대를 마음대로 통제하거나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일련의 우여곡절 속에서 무척이나 효과적으로 표현되며 영화 내내 굉장한 흥미를 자아낸다.

목소리 출연만으로도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낳았던 스칼렛 요한슨은 그녀의 수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훌륭한 감정 연기를 보여주며, 사실 상 영화를 홀로 이끌어간다고 할 수 있을 호아킨 피닉스의 경우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서 열연을 펼쳤던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로 그가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질 만큼 가히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관람할 때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사랑하고 아파하는 경험이 쌓인 후에 관람했을 때 더더욱 온전히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마찬가지로 한 번씩 재개봉한 바 있는 <이터널 선샤인>과 <500일의 썸머>처럼. 이 영화 역시 누군가를 만나며 그를 자신이 원하는 조건 하에 가두려 한다거나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넘어섰을 때 크게 실망하고 갈등한 경험이 쌓인 지금에 이르러서 더더욱 큰 감흥을 얻을 수 있던, 그리고 비로소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한 바를 깨달을 수 있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개봉 당시에도 4.5점을 줬지만, 오늘 주는 이 평점은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쌓인 감정들이 축적되어 큰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낸 데에서 오는 더욱 높은 의미의 점수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아무쪼록 이 영화가 마지막 장편 연출작인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또다른 신선하고도 독특한 작품을 얼른 만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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