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뭅스타 Jul 16. 2019

<해피엔드>

가족, 그 가깝고도 먼 존재에 대하여.

19.06.21. @CGV명동역


더 이상 체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한 지난 해 전주 영화제에서, 그동안 숱하게 많은 영화제를 다니며 처음으로 졸다 못해 푹 자다가 나왔던 그 영화 <해피엔드>를 약 1년 2개월이 지난 후 다시(?) 관람하게 되었다. 오늘은 다행히도 무사히 잘 관람한 이 영화는, 각박하기 짝이 없는 현대의 삶을 화목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한 가족을 통해 잔잔하면서도 서늘하게 그려나간 작품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어떤 대사나 특별한 사운드 없이 펼쳐지는 오프닝 시퀀스만으로도 삐그덕거리는 어느 모녀의 모습을 힘 있게 보여주며 단숨에 흥미를 자아내는 이 영화는, 토마스와 전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에브가 조르주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서 본격적인 스토리가 펼쳐진다. 마치 파편의 나열처럼 여러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뚜렷한 기승전결 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세상을 바라보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비관적 시선만은 뚜렷한 잔상을 남긴다.


에브가 합류한 조르주 가족의 모습은 앞서 말했듯 단 한 순간도 화기애애한 순간을 볼 수 없을 만큼 각박하다. 토마스와 에브 부녀의 관계도, 앤과 피에르 모자의 관계도, 더 올라가 조르주와 두 자녀 간의 관계도 흔히 말하는 사랑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기만 하다. 영화는 이렇게 차가운 정적이 흐르는 가족 구성원 중 특정 누군가를 중심으로 그려내기 보다 저마다 확실한 특색을 지닌 그들 각자를 지켜보게 만드는데, 이 역시 마치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 저마다가 이들 중 누군가는 이해할 수 있으리라 말하는 감독의 건조하면서도 날이 선 접근처럼 느껴진다.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선 제대로 대화가 오가지도 않지만 조르주의 생일 파티, 앤의 약혼 파티 등 다양한 이들이 축하하기 위해 한데 모인 자리에선 최대한 화목한 척, 서로를 위하는 척 연기를 하는 이들의 위선적인 태도가 자아내는 신랄하고 염세적인 시선 역시 극의 흥미를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누군가에게 쉽게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 채, 혹은 속내를 털어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지식인으로서 자신들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모습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더 스퀘어>처럼 한없이 날카롭게 펼쳐지면서도 묘한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에서 차가운 가족의 단면을 보여주는 데에 효과적으로 활용되는 소재는 SNS이다. 어느새 현대인들에게 단순히 익숙함을 넘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SNS는 이 영화에선 현실에 각박함을 느끼는 이들이 유일하게 숨통을 트일 수 있는 공간이자 가장 진실된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특히 오프닝부터 큰 임팩트를 선사하는 에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또다른 만남을 이어가는 그녀의 아빠 토마스를 통해 효과적으로 활용되는 이 소재는, SNS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폭은 확대됐지만 상대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의 소통은 멀어져버린 현대의 아이러니를 서늘하게 담아내는 역할을 해낸다.

결국 이들 가족의 모습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과연 이전과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자아내지만, 그럼에도 어쩌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란 희망을 자아내는 조르주와 에브의 대화는 곧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사랑이 싹틀 공간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하는 듯한 감독의 핵심 주제처럼 느껴진다. 전작 <아무르>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펼쳐지는 조르주와 에브의 관계는 다시 좁은 휴대폰 프레임으로 돌아가는 영화의 엔딩 이후 그들의 삶을 희망을 품으면서 계속 지켜보고 싶게 만든다.


유난히 최근 들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해야 할 집이라는 공간에서조차 제대로 된 여유를 만끽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자주 영화로 나오는 것은 개개인의 가치관이 변화하기 때문이든, 편하고도 은밀하게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SNS가 발달했기 때문이든, 결국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각박하기만 한 영화 속 인물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영화가 자아내는 씁쓸한 여운 역시, 과연 이른바 막장으로 치닫는 이들 가족의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서 나와는 동떨어진 이들의 모습으로만 바라보고 치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남기기 때문일테고.

매거진의 이전글 <토이 스토리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