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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Dec 11. 2022

한 남자가 울고 있다


바람이 미친 듯이 옷깃을 풀어 헤치는 저녁.

중년의 나이는 넘어 보이는, 지친 얼굴의 남자가 전봇대에 기대어 토악질한다. 눈물과 혼합된 토사물은 그의 구두를 허옇게 물들이고 만지면 진득거려 끈끈할 만한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바람에 날리는 넥타이는 그의 얼굴을 수시로 때리며 뱀처럼 목을 감았다 풀곤 한다. 덕분에 그의 각진 얼굴이 반쯤 보였다가 사라진다. 숱이 듬성듬성 빠지고 새치가 여기저기서 솟아오른 머리를 박고 울고 있는 저 남자. 단단해 보이는 입매가 다소 부자연스럽게 벌어져 흐르는 분비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이, 전봇대를 부여잡고 있는 그의 얼굴이 허공에 초점 없이 풀어졌다가 꺾이기를 반복한다. 


이제 막 석양이 내려앉아 어두워지는 골목길에는 학원에서 집으로 가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걸어가고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골목길로 접어든 아주머니도 있다. 조금 전까지 서 있던 그는 이제 스르르 흘러내리는 구겨진 바지 모양이 되어 흐물거린다. 나름 제대로 한 벌 정장을 갖춰 입은 모양새다. 

조금씩 무너지는 그의 몸을 보며, 아이들은 그 곁을 빠르게 지나간다. 남자 쪽을 외면하고 걷던 한 아이가 코를 막는다.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젓는 아이들. 술 냄새야, 누군가가 속삭인다. 아이들의 걸음이 빨라진다. 지나가는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저렇게 마실 돈 있으면 자식들 통닭이라도 사다 줄 것이지. 사람들 지나가는 거리에서 이게 무슨 지랄이고. 남자가 들으라는 듯 목청을 높이는 아주머니의 소리도 그에겐 들리지 않아 보인다.


남자는 이제 바닥에 앉았다. 토사물이 그의 엉덩이와 뻗은 다리에서 삐져나온다. 그는 가슴을 치다가 생각난 듯 전봇대에 머리를 박기도 한다. 툭툭 둔탁한 소리가 허공에 퍼진다. 그때, 그의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지금의 분위기와 다른 흥겨운 가요가 힘차게 울린다. 전화기를 잡으려 이리저리 주머니를 찾느라 손을 허우적댈수록 전화기 대신 걸쭉한 덩어리처럼 흐르는 액체가 잡힌다. 벨 소리가 그친다. 분주하던 그의 손이 잠시 멈춘다. 고요함이 잠깐 가라앉은 자리에 아까보다 진한 어둠이 그를 덮친다. 남자는 계속 울고 있지만 목소리가 눈물을 대신하고 있다. 콧물과 눈물이 섞인 탁한 목소리로 낮게 으르렁거리던 남자는 오물이 묻은 손으로 코를 푼다. 두어 번 코를 푼 손으로 인중을 닦는다. 


반대편에 있는 가로등이 반짝, 빛을 비춘다. 아까보다 밝아진 거리는 한결 생동감이 더하다. 아파트 단지가 불을 밝히자 멀리서 짖는 개소리에 섞여 누군가의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문득 사내가 누군가를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사내는 부모가 어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모의 퇴직금을 사업으로 몽땅 말아먹은 후, 미안함에 연락을 끊은 자책감이 눈물로 흐르는 것이다.





“컷, 아주 좋았어요.”

감독의 소리가 들리자, 카메라가 멈춘다. 

사내가 오물 사이에서 일어난다. 매니저가 그에게 달려가 수건을 건네준다.

“좋아요.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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