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Mar 17. 2024

나에게 사랑을 묻는 그대에게


 1

봄은 버드나무 가지 끝에서 온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흰 구름 너머 저 너머로 봄의 기운이 느껴지고 그 싹은 작은 나뭇가지의 이제 막 입술을 내민 꽃눈들이 보인다. 


3월의 학교에도 봄은 온다. 새 학년 새로운 반에 들어온 아이들은 저마다 눈을 크게 뜨고 탐색의 시간을 갖는다. 담임은 어떤 사람인지, 우리와 호흡이 맞고 이해를 잘 해줄 수 있는지, 종례는 짧은지, 특정 학생을 편애하지는 않는지 이 모든 것들이 다 궁금하고 걱정이다. 또 한 반에 배정된 아이들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나랑 마음이 맞는 친한 친구가 있는지, 혹시 껄끄러운 상태에 있는 아이와 같은 반이 된 건 아닌지, 나를 괴롭히거나 따돌린 아이가 섞여 있는지, 고등학교 1학년이라면 같은 중학교 출신들이 같은 반에 얼마나 있는지, 특별하게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 이 모든 것들이 아이들은 궁금하다. 궁금함은 때로 지나친 걱정으로 이어져 등교하는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남자 친구 문제로 싸우거나 찝찝한 상태에 있는 아이는 그 친구와 친한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말의 올가미에 또 걸려들어 곤욕을 치를까 걱정이기도 하고 작년에 문제가 생겼던 아이와 같은 반이 되면 학기 초부터 의욕이 떨어져 학교에 가기가 싫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3월 신학기 같은 반에 모여 담임이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만나는 그 짧은 순간에 누군가는 일 년이 그럭저럭 행복하게 흘러갈 거라고 예감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공포와 불안감으로 위축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 만남의 시간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이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다. 아이들은 개학하기 전날, 어떤 아이들을 만나고 선생님을 만날까 걱정이 되어 잠을 설쳤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냥 새로운 학년, 학급에 적응하는 정도의 가벼운 불안감이나 걱정일 거로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불안감이나 걱정으로 등교하기가 싫어진 적이 있느냐는 내 질문에 대다수 아이가 손을 들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아이들은 불안하다. 특히 내성적이고 자기주장이 약한 아이의 경우 이 불안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거기다 마음을 줄 친한 친구 하나도 없는 반에 배정될 경우, 일 년 내내 섬처럼 떠돌 수밖에 없다. 


불안감과 안도감을 가진 아이들을 이끌고 시작하는 항해는 교사의 지속적인 관심과 돌봄이 필요하다. 학기 초 아무하고도 교류가 없이 먼 산만 바라보거나 멍한 눈동자로 배회하는 학생이 있다면 빠르게 개입해야 한다. 개인 상담을 하거나 학급에서 배려하고 나누는 마음을 가진 학생과 은근하게 짝을 만들어 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거나 혼자서 급식을 먹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그룹을 지어 준다거나 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개입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 아이들은 확고한 자기 친구 그룹이 있다. 척 한번 보기만 해도 자기와 맞는 애인지 아닌지를 안다. 그리고 이미 친한 아이들이 있고 그 그룹은 여간해서는 깨지지 않는다.


새로운 학교, 새 학급, 새 친구에 어느 정도 적응한 4월이 되면 첫 시험을 치른다. 특히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한 아이의 경우 첫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는 부모나 교사의 생각을 능가한다. 잘하는 애는 잘하는 대로 못 하는 애는 자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4월 한 달 학급의 분위기는 시험과 관련된 내용으로 팽팽한 긴장이 이어진다. 첫 시험에 임하는 자세는 모든 아이가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학급 아이들과 교사에게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많다. 모든 아이가 노력하다 보니 공부한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소위 학원빨이 통했던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는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의 축적에 방점을 찍어야 해서 중학교에서 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첫 시험을 치르고 아쉬움과 좌절과 희망으로 각자의 길을 걷는 아이들에게 5월은 학교 행사도 많고 조금 느슨하게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때, 학급 안에 커플이 생기기도 하고 상대에게 호감 느끼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행동이 빠른 아이들은 대놓고 사귀는 티를 내기도 하지만 내성적인 아이는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한다.



2

C는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훈남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고 내성적이어서 말수가 많지 않았지만 친한 친구와 있을 때는 말도 그럭저럭하는 착하고 예의 바른 반듯한 학생이다. 5월의 어느 날 오후, 야근하느라 남아 있는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선생님들은 거의 다 퇴근하시고 나와 대각선으로 앉은, 우리 반 수업을 맡지 않는 선생님 한 분만 교무실에 남아 있었다.


C가 내게 할 말이 있다고 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망설이고 고민했을지 알기에 하던 일을 제치고 마주 앉아 물었다. 이번 시험에 성적이 오르지 않았기에 성적 고민인가 했더니 뜻밖의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 요즘 J가 자꾸 눈에 들어와요. 그 애만 보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져서 뭘 할 수가 없어요.”


J는 우리 반 반장이다. 공부도 잘하고 통솔력도 있고 무엇보다 현대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아주 예쁜 여학생이다. J를 내심 좋아하는 남학생들이 우리 반에 있었고 내가 알기론 C와 절친인 H가 J를 좋아한다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나에게 물어온 적이 있었다. C도 H가 J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기에 그의 고백이 갑작스러웠다. H도 너무 반듯한 아이였기에 J와 상담하며 살짝 물어봤는데 우리 반 반장은 공부 이외에는 이성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H에게 시간을 가지고 친구로 조금씩 다가가는 것을 권했다. 갑자기 다가가면 J의 입장에서는 칼 차단을 할 것이고 분명 상처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그런 일이 있는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C의 말을 들으니 난감했다. 그런데 C의 마음은 진지했고 조용한 성격인 만큼 불길이 강렬했다. C는 J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백도 해볼 의향이 있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나에게 사랑을 물어올 때, 난감하다. 어떻게 해야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으면서 해결책을 말해줄 수 있을지. 일단 사랑의 불길이 제대로 붙은 아이에게 불길을 안은 채 상대에게 무조건 돌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해주긴 하면서 이럴 때 모범 답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이 넘게 C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고 또 J의 입장도 바꿔 생각해 보면서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가는 것보다는 친구로서 조금 더 가까이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감정을 가지는 거 자체는 너무 소중한 것이니 억지로 누르지 말되 상대의 처지를 생각해 천천히 감정을 표현해보면 어떨까, 그것이 나의 조언이었다. 중학교 때 어떤 여학생을 좋아해 본 경험이 있는 C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충분한 대답이 된 거 같지는 않았다. 현재 감정에 따른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맘에 품고 있는 대상에 대해 누군가에게 충분히 자기감정을 표현한 C의 얼굴은 처음보다 밝아 보였다. J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니 너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천천히 다가가 듬직하고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어라. 나의 이 조언이 얼마나 먹힐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 여학생을 두고 절친끼리 좋아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라고 조언할 수는 없었다. J를 좋아하는 만큼 C와 H의 친구 관계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짐을 나에게 털어놓은 C는 홀가분하게 교무실을 나갔다. 


C가 나가자 아까부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건너편의 선생님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녀는 한달음에 내 자리까지 달려왔다.


“이거 실화 맞아요? 아직도 저런 학생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저렇게 솔직하게 담임에게 이야기한다고요? 나도 들었지만 정말 믿어지지 않아요.”


우리는 잠깐 고등학생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나 순수하고 진솔한 마음을 표현한 남학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에 있는 동안 자신의 감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아이들은 더러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솔직히 난감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사실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매뉴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가장 적절한 대답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고개를 흔든다. 사랑이 매뉴얼에 의해 진행된다면 그게 어디 사랑일 수 있겠는가. 늘 처음이고 헛발질하며 이불킥을 하며 표현하는 사랑. 상대 앞에 서면 쪼그라들고 얼굴이 붉어져 말 한마디도 못 하지만 속에는 불타는 열정이 있는 사랑.


나에게 사랑을 물어오는 학생들에게 나는 그저 말할 뿐이다. 자기의 자리를 벗어나지 말고 너무 조급하게 다가가지 말라고. 그러다 죽도 밥도 안 되면 어쩌냐고? 어차피 그 나이대의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다가가 큰 상처를 입어 남은 시간을 회한과 후회로 보내기보다는 천천히 조금씩 다가가는 게 어떨까. 이러다 사랑이 소멸한다면? 그 또한 사랑의 운명이니 서글퍼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나의 사랑을 강조하기보다 상대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사랑은 돌진이 아니라 살펴봄에 있는 거라고.







작가의 이전글 常識이 滿天下하나 知心能幾人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