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S다이어리를 사용한 실질적인 미라클모닝 도전기
PDS(Plan Do See) 다이어리 사용하며 실패와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2022년부터의 나의 실제 경험이다.
다이어리는 알지만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1주일 이상 써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일기가 쓰고 싶지 않았다(그게 내 인생에서 최악의 실수 중 하나이긴 하지만). 기록은 데이터이다. 데이터를 어떻게 모으고 해석하고 관리하는지가 진짜 실력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나의 실력은 하위 10% 정도가 내 위치이다. 그나마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아직 갈길이 한참 멀었지만 기록을 시작한 것만 으로도(그것도 2년 동안) 과거보다 나아진 내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새벽기상과 기록(PDS)으로 무엇이 알게 되었나
아침이 아닌 새벽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설명하기 힘들지만 묘한 기운이 있다. 동이 트기 전의 어둠. 겨울이 지나고 찾아오는 향긋한 봄의 냄새, 습하고 눅눅한 여름 끝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벽의 신선함, 쌀쌀하고 쓸쓸한 가을의 향기, 콧속이 얼어오는 겨울의 한기들 나는 그 묘한 기운을 좋아한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뭔가 성실히 살아가는 기분이 들곤 한다. 하지만 아침 일찍 그것도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새벽에 기상하는걸 번번이 실패했다. 간헐적으로 한 번씩 일어나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매일 꾸준히 루틴화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도대체 왜 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걸까
모든 문제의 해결은 문제의 인식에서 시작된다. '왜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는가'가 아닌 ' 왜 나는 새벽에 일어나야만 하는가'였다. 문제를 모른 채 정답만 찾고 있는 꼴이었다. 지금 단계에서는 거창하거나 뚜렷한 목표가 없었도 된다. 나는 그랬다. 단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1인분은 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분명 어제보다는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렇다면 다시 왜 새벽에 일어나야만 할까. 첫 번째는 시간 확보를 위해서였다. 2019년 우리의 소중한 생명체 '동동이'가 태어나면서 개인시간이란 것이 사라졌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했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렇다 보니 정말 시간이 없었다. 하루일과는 육아 일 육아 일 육아의 반복이었다. 중간에 응급실에 실려가 입원한 적도 있다. 그만큼 나는 전심전력으로 육아에 임했다. 그렇게 2021년이 지나고 어린이집에 가면서부터 시간이 점차 생겨났다. 오후시간에 개인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아침/저녁 근무다. 오후 점심시간은 비는 시간이다) 생각보다 변수가 많았다. 아이가 아프면 집에서 내가 돌봐야 하고 어린이집 쉬는 날에도 내가 돌봐야 하고 집안일, 청소, 빨래 등등 생각 외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공부든 운동이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해야 될 일을 한 번씩 처리하고 나면 쉽게 집중력이 끊어졌다. 나는 그 정도로 집중력이 약하다. 유일한 대책은 가장 변수가 적은 모두가 잠들어있는 새벽시간이었다. 유일한 변수는 나만 잘 컨트롤하면 된다.
5분 일찍 기상
해보지도 않은 새벽기상을 당장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몸에도 적응할 기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미 그동안의 실패의 누적들로 상당히 부정적 에너지들이 내 안을 가득 채운 상태였다. 나 같은 패배자에겐 실패의 쓴맛보단 성공의 단맛이 더욱더 필요했다. 그래서 평소보다 5분씩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눈뜨고 별다른 걸 하지는 않았다. 책 5분 읽기. 그것이 시작이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나니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이러 날 수가 있었고 점차 시간을 당겨 04:30분까지 기상 시간을 당겼다.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3~4개월 정도였다. 꾸역꾸역 버티고 버티다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아니 끝이 날뻔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바로 '잠'이었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만큼 그만큼 하루를 일찍 끝내야 한다. 나는 수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2022년의 봄은 그렇게 처참한 실패를 맛보며 여름이 지나갔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2022년의 기록들을 관찰했다. PDS 다이어리를 복기하고 2022년 목표를 다시 보게 됐다. 아직 해내지 못한 목표들이 보였다. 그리고 아직 4개월이 남았다. 다시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다.
실패, 그래도 다시 새벽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복기를 해봐도 새벽시간이 가장 안정된 시간이었다. 나는 반드시 이 시간을 활용해야 될 이유가 분명했다. 봄의 실패는 수면 부족에 체력저하까지 더해진 듯했다. 체력까지 없으니 집중력은 더욱더 떨어졌던 것이다. 2022년 10월 1일부터 당장 새벽루틴을 시작했다. 05:30분 기상-러닝. 새벽기상과 운동을 묶어서 루틴화를 시작했다.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바로 체력이었다. 그리고 10월에 있을 장거리 러닝대회를 준비하기 위함도 있었다. 해야 될 일(새벽시간과 체력)과 하고 싶은 일(장거리 러닝대회)이 합쳐진 순간이었다. 운이 좋았던 거 같다. 2023년 10월 현재까지 여전히 꾸준히 새벽루틴을 실천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다. 04:50분 기상-러닝-독서로 이어지는 새벽루틴은 하루를 시작하는 핵심과도 같아졌다. 조금씩 자제력을 키워 나가게 됐다.
새벽의 어둠을 달리면서
그 새벽의 공간들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바로 자기 통제력이다. 아무리 루틴화가 됐다고 하더라고 어두운 새벽에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으며 문밖을 나선 다는 건 지금도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그 힘든 10분의 시간만 견뎌낸다면 이내 편안해진다. 아니 오히려 상쾌해지는 순간들도 온다. 매일 우리는 견뎌내야 하는 순간들과 마주친다. 그 순간들이 타의에 의해서가 아닌 자의에 의해서 스스로를 통제해야 한다. 그것을 주도적이라고 표현한다. '내 삶을 나의 것으로 채운다.'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진정한 내 삶을 살 수가 있다. 새벽시간은 나에게 내 삶의 주도권 주는 시간이다. 해야 할 일을 끝낸 후의 시간들에게 나는 더 이상 쫓기지 않게 되었다.
행동의 시작은 목표에서 나오는 거 같다. 갈망하는 목표가 생기면 저절로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무의식적으로 같은 일을 반복만 하다보면 그 이유와 의미를 잃어버리기 쉽다. 의식적인 행동을 지속하는 것은 어렵다. 당장의 작은 목표지점이 눈앞에 있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유지가 됐었다. 하지만 개월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시작단계 에서의 의욕이나 동기들이 많이 사라졌다. 정말 말 그대로 루틴처럼 되긴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행하던 일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내가 하고있는 이유를 잊어버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땐 그냥 가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이런 말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땐 일단 가라.' 새벽기상, 체력 키우기 란 목표가 채워져가고 나니 이 길로 계속 가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장 눈앞의 목표에 도달하고 나니 그다음 너머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아리송했다. 나에겐 장기목표가 있었다. 목표지점이 너무 멀리 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늘어져버린 것이다. 방향은 잃지 않았지만 이유를 잊어버렸다. 이유를 잃어버리니 동기는 극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목적지를 잃지 않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했다. 동기를 잃지 않기 위해 목표를 더 작은 단위로 세분화해야 했다. 작은 단계로 목표를 세분화하고 다시 계획을 세웠다. 새벽 달리기는 나에게 명상과도 같았다. 괴로움을 견디고 나면 새로운 질문들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그 사람들(롤모델)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 인생의 마지막 모습들은 어떨까?'. 그런 질문의 꼬리를 물며 목표는 조금씩 명확 해지며 단단해져 갔다. [완벽하공부법-목표 편 133p 참고]
목표는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현재 나의 위치를 알려준다. 강력한 동기부여도 되지만 메타인지도 올려준다. 목표를 찾는 건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거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 또한 삶의 일부이자 또 다른 '목표'이다.
나의 모든 고민에는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그중 유일하게 반드시 포함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이 시간이란 요소를 빼고는 어떠한 고민도 해결이 안 된다. 우리에게 시간이란 건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생각할 때 우리는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첫 번째 시간은 한정적이다, 두 번째는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쉽게 이 두 가지 사실을 잊어버린다. 의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시간을 놓쳐버리는 수가 있다.
Time is the scarcet resource and unless it is managed nothing else can be managed
-Peter F Drucker
'시간은 가장 희소한 자원이며 잘 다뤄지지 않는 한 그 밖에 어떠한 것도 잘 다뤄질 수 없다.'
성공한 사람들, 즉 자기가 원하는 가치를 이루어낸 사람들은 언제나 시간을 관리했던 거 같다. 여기서 핵심은 필요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당장에 필요한 일은 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얼마나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빼기지 않느냐에 있다. 나는 불필요한 일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버리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살다 보니 블랙홀에 빠진 거처럼 시간이 버려지고 있었다. 나의 24시간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PDS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나의 24시간을 관찰하고 아주 약간의 하루 계획만 세웠다. 다른 사용자들을 보면 천재처럼 보이는 초능력자들이 많이 보였다. 도무지 그들을 따라갈 수도 흉내 낼 수도 없었다. 일단 나에겐 무엇이라도 실행하는 중요했다. 중요한 일 한 가지만 시작하자. 그것 외에는 편하게 하자. 놀랍게도 '한 가지'라는 일을 처리하고 나니 시간이란 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할 수 있는 것들'로 확장되어갔다.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적지만 시간을 활용하게 됐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종 그 변수가 나타날 때마다 무참히 무너졌다. 자기 통제로 마인드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잃어버린 시간들은 다시 회수하기가 어려웠다. 최적의 시간대가 필요했다. 변수가 가장 적고 방해받지 않는 나의 시간. 새벽시간을 찾아온 간 건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나에게 필요한 일을 새벽에 끝냈다. 그러면 하루가 온종일 나의 통제 안에 존재하는 듯했다. 오후 시간은 한결 여유로웠다. 휴식도 하고 적당히 놀기도 하고 독서, 글쓰기도 하며 한껏 여유를 부리게 됐다. 22년이 지나갔다. 1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나만의 루틴도 생기고 나만의 기록, 시간관리 방법도 생겼다. 습관이 되었지만 그냥 습관일 뿐이었다. 다시 한 번 더 나아가야 했다.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고 싶었다. 성장을 해야 했고 어제와 똑같이 해서는 안 됐다. 포화구간에 들어선 것이다. 새로운 것을 한다기보다 지금은 좀 더 열심히 하는 게 필요했다. 어떻게 하는 게 더 열심히 하는 것일까. 조금이라도 더 몰입할 수 있게 집중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새벽기상 시간을 좀 더 당겼고 동기와 의지가 있었다. 처음엔 순조로운 듯 보였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금세 지쳤다. 피로도가 쌓인 것이다. 오후시간은 겨우 눈뜨고 견디고 안되면 잠을 자게 되는 게 대부분이 되었다. 그러다 새벽기상 마저 피로에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견디는데 급급했다. 수면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잠을 자야 했다. 그것도 잘 자야 했다.
그동안의 PDS기록들을 살펴봤다. 분명 기록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어제와 일주일을 되짚어 봤다. 나는 습관적으로 잠들기 전, 밤 시간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퇴근시간이 늦기에 더 일찍 자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수면의 질을 최대한 높이는데 집중해야 했다. 무엇보다 ‘필요 없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밤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포함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점차 좋아지는 듯 보였고 새벽시간도 어느 정도 쾌적하게 유지가 됐다. 그러면서 오후 시간도 더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낭비 없이 하루를 보낸 날에는 정말 평소와는 다른 시공간을 지나온 기분마저 들었다. 원래도 친구가 없기는 하지만 밤에는 나갈 이유가 없어졌다. 강제적으로 그렇게 되긴 했지만 어찌 됐든 밤에 나갈 일이 없어 한결 편했다. 불필요한 일을 줄이니 자연스럽게 필요한 일에 더 집중이 되었다.
목표없이 무의미하게 보냈던 지난 날들을 떠올려보면 늘 후회외 회피로 현재를 견뎌온거 같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가 교도소 소장과 성경에 대해 얘기 하는 대사중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항상 깨어 있어라’라는 대사가 있다. 영화에선 교도소에 수감한 모든 죄수들은 희망이란걸 가지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고통에 회피를 한다. 그리고 후회로 현재를 살아간다. 그러나 앤디는 달랐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아간다. 현재를 살아간다는건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믿음이다. 아직까지 죽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영화속 앤디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남았다.
깨어있다는건 눈을 뜨고 있는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인거 같다. 무의식속에서만 살아간다면 죽은 물고기나 다름없다. 내 의지가 아닌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서만 살아길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의식하기 위해서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나의 템포를 찾아야 한다. 온전히 나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를 통제 할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내 시간을 통제하고 내 행동을 관리한다. 삶의 주도권이란 이런것이 아닐까. PDS 다이어리란 도구는 주도권을 찾게 해준 귀중한 도구가 되었다.
기록한지 2년차.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하루를 망치는 날도 빈번히 일어난다. 그럼에도 주도권을 쥐고 있는 기분이다. 흔들리다가도 어느새 중심을 잡는다. 믿음 때문이다. 과거를 흘려버리지 않고 기록을 통해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건 아니다. 다만 회피하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 내 삶에 주도권을 가지고 살아가겠다. 나는 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