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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계에이방인 May 01. 2024

어떻게 집단으로서 자존감을 획복할수 있을까

엘리멘탈 후기


픽사 애니메이션은 늘 그렇지만 어린이들 만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어른들은 어른 나름대로 어린이는 어린이 나름대로 즐기고 감동과 의미를 주는듯 하다. 그리고 ost 또한 항상 좋았다.  등장인물들을  4원소 불, 물, 흙, 공기 를 캐릭터화 했다. 핵심 캐릭터는 불의 엠버와 물의 웨이드 이다. 캐릭터를 보면 직관적으로 느껴질것이다. 서로 다르다. 불과 물이 그렇다. 그래서 핵심 주인공이 바로 불의 성질인 엠버와 물의 성질인 웨이드인거 같다. 서로 양 끝점에 있다. 도무지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접점을 만들어가는지 그 중심에는 관심과 용기가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 엠버는 불의 성질 처럼 화를 잘 참지 못한다. 쉽게 욱하는 버릇이 있다. 쉽게 폭발하며 주위의 모든것을 붙태우고 파괴한다. 그런 불 같은 성격과 다르게 엠버는 늘 초조하고 불안하다. 반면 물의 성질인 웨이드는 매우 감성적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쉽게 눈물을 보인다.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화 내는게 꼭 나쁜것은 아니야
아직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준비가 안 되서 그래


'가끔 나도 모르게 화가 폭발 한다'고 엠버가 말한다.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고유한 성격인거 처럼 말을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자책한다. 엠버의 화(火)는 단순히 불의 속성이 아니다. 자기에 대한 믿음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인거 같다. 가업을 이어 받는다는 것이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했던것에 대한 확신이 없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인지 하지 못한다. 그러다 웨이드를 만나면서 자신의 세계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 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시작 한다. 마치 정해진 정답이 있을것만 같다. 그 정답을 찾기위해 애쓴다. 아무리 찾아보지만 도무지 정답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것’은 결국 자신의 꿈과 연결된다.

엠버는 웨이드를 만나면서 변화의 기회가 찾아오지만 익숙함에 벗어나기를 두려워 한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것들은 모든것이 불편하다. 하지만 성장은 그 불편함을 동반할수 밖에 없다.




내 꿈은 항상 너였단다

인정과 용기, 믿음 그리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래는 불확실성이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렵다. 나의 선택이 틀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 그것을 인정하므로써 맞설수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 선택할수 있는 용기와 결과를 받이들일 용기.

웨이드는 엠버의 단점을 보지 않는다. 오히려 단점에서 틀별함을 찾는다. 웨이드 곁에선 엠버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엠버는 점차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회복해 나간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을 한다.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엠버는 그 책임을 받아들이기로 선택을 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것. 나이를 먹는것이 아니다. 내면의 성장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어른으로서의 성장도 없다. 누군가의 작은 믿음 하나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또 받고 있다. 서로의 믿음들이 개인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집단 사회의 신뢰성을 높여줄수 있다.

유행은 지났지만 여전히 자존감의 회복은 중요한 화두다. 개인에 앞서 먼저 우리라는 집단으로서 자존감의 회복을 위해 서로에게 좀더 친절해질 필요가 있을거 같다. 그 친절은 '관심'에서 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관시을 표현할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간의 교류가 점차 줄어드는 현실에서 주위에 조금 이라도 관심을 준다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웨이드는 엠버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엠버만의 고유한 장점으로 봐라본다. 비로서 엠버는 자신과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용기를 갖는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아니면 꿈을 찾았는지 성공했는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패하면 어떻고 그 선택이 틀렸다면 어떤가.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성이 난무한다. 정해진건 없다. 수많은 산택지 중에 휩쓸려 가는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수 있는, 불확실성으로 뛰어들수있는 용기를 우리는 도전 이라고 부른다. 크든 작든 선택은 결국 도전이다. 우리 삶은 도전으로 만들어 진다.



#엘리멘탈 #자존감 #사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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