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7 대구국제마라톤
예정된 실패
2024년 첫번째 풀마라톤.
1년만에 풀마라톤이다. 작은 부상들은 있었지만 꾸준히 연습해왔다. 비록 체계적인 연습은 안됐지만 충분히 원하는 목표에 다가설만큼은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모처럼 고향이 대구에서 열리는 대회였기에 분위기상 아주 좋은 흐름이었다.
대구마라톤의 두가지 이슈가 있다. 날씨와 난코스이다. 날씨야 늘 그래왔으니 그다지 덥든지 말든지 크게 신경은 쓰지않는다. 코스에 언덕도 제법있고 마지막 36k 이후 언덕도 무지막지 하다며 다들 얘기하지만 트레일을 달리는 사람으로서 언덕도 그다지 신경이 안쓰이는 부분이다. 다만 기록에서는 불리한 날씨와 코스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번 대회에는 320을 목표로 세웠다. 기존 기록보다 4분 정도만 줄이면 가능한 목표이기에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판단했다. 확신없이 판단만 한 이유는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훈련량이 적지는 않았다.
새벽부터 준비를 마쳤다. 집에서 출발 하니 여유가 있다. 밥도 편하게 먹고 커피도 한잔 하며 한껏 여유를 부리고 근육맨ost ‘질풍가도’를 들으며 출발했다.
날씨가 좋다. 새벽인데 이정도 따뜻하면 아마 하프를 지나고 부터는 더울거다. 그래도 그정도 더위는 기록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거 같다. 오랜만에 대구의 대회장은 많은 러너들로 후끈하다. 준비를 마치고 몸을 푸는데 소변이 자꾸 마렵다. 아마 커피 때문인거 같다. 너무 여유부리다 오버했다.
출발 시간은 다가오는데 화장실 줄은 너무 길다. 어쩔수없다. 산으로 뛰어간다. 일단 급한 볼일을 끝내고 냉큼 출발선으로 달려갔다. 엘리트 선수들이 출발한다.
시작, 예견된 실패
320 달성에 대한 몇가지 불안 요소들이 있었다. 첫번째가 페이스. 지금껏 나는 GPS시계 없이 달려왔다. 나는 페이스 조절을 호흡으로만 해왔고 그냥 무작정 달렸다. 대회에선 페이스 메이커만 따라갔다. 그렇게ㅜ페이스를 맞춰왔는데 이번엔 페이스 메이커가 없다. 여기시 이미 실패한거나 다름 없다.
두번째 불안요소. 발바닥 부상이다. 부상이 생긴 원인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파악 해봐야겠지만 생각보다 통증이 있다. 마지막까지 버텨줄지 자신이 없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급격히 소변이 마려웠다. 비우고 왔는데도 금세 마렵다. 아무래도 카페인 때문인듯 하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게 아니었다. 그냥 참아야 했다. 출발과 동시에 이미 불편함을 감지했다. 지금 화장실을 찾아간다면 한없이 밀릴게 뻔하다. 일단 참는다. 초반 많음 인파에 휩쓸려 내달리고 있다. 어느정도 패이스인지 감도 오지 않는다. 빨라졌다 느려지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버틸만 했다. 어쩌면 좋은 결과가 있을거 같음 기대가 잠시 들었다.
하프~30km
날씨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하프지점에 와이프와 동동이가 나와있기로 했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페이스와 동동이를 보자 한껏 기분이 업된다. 그러나 딱 하프가 지나고 나면서 급격히 다리다 무거워진다. 페이스를 유지 할수가 없다. 내전근들이 쥐가 나기 시작한다. 강제적으로 보폭을 줄여서 달린다. 오버페이스의 누적이 이제 터지기 시작하나 보다. 이 영역은 정신력으로 버틸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마라톤은 어렵다. 정확히 자신의 실력괴 페이스를 알아야한다. 그리고 그 페이스를 인내심을 가지고 버텨야 한다. 절대 더 오버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완주해내는 방법이다. 완주를 할수 있어야 기록이 있다. 이미 나는 완주를 하는 방법에서 벗어나버렸다.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뻔하게 그려진다. 이제 지옥을 맛볼 차례다.
~36km, 피니시
끝났다. 다리가 완전히 잠긴거 같다. 물속을 달리는거 같다. 완전히 퍼져서 포기하고 싶다. 태양은 너무 뜨겁다. 소변은 마렵고 배도 살살 아파온다. 멈추고 싶다. 이미 기록은 끝났다. 편하게 쉬고 싶다. 하지만 멈춰지지가 않는다. 아직 최선을 다해내지 못한거 같다. 끝까지 달려야 한다. 36km가 지나고 긴긴 오르막이 시작된다. 태양은 뜨겁게 열기를 쏟아내고 있다. 발도 아프고 쥐가 날거같은 다리는 걷는건지 달리는건지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걷는순간 다시 달릴수는 없을거 같다. 가능하면 아무 생각하지 않고 바닥만 보면 달린다. 언제가 끝날 고통이라는걸 알지만 지금 이순간이 영원할것만 같다. 40km가 지났다. 시간상 6분 페이스로 달리고 있다면 12분이면 끝이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길고긴 고통스러운 12분. 월드컵 경기장으로 들어서고 마지막 트랙위에 올라섰다. 막판 스퍼트를 하지도 못할만큼 힘이 남아있지 않다.
언제나 그랬듯 끝까지 들어와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그후에 밀려오는 발의 통증. 오늘의 사냥은 대실패 다. 사냥꾼이 늘 사냥감을 잡아오지 못하듯 실패는 언제나 예견되어있다. 오늘은 나의 날이 아니었을 뿐이다. 과거의 사피엔스였다면 아마 죽음을 당했을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아니다. 실패가 죽음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도전 할수있다. 삶은 곧 도전이다.
최선을 다해라.
과연 ‘최선’이란건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 ‘온 정성과 힘’ 이다. 최선을 누가 판단할수 있을까. 객관적인 지표가 있을까. 어렵다. 나를 판단할때, 다른 누군가를 판단 할때 무엇을 보고 최선을 평가 할수 있을까. 아쉬워
한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것일까. 아니면 결과에 후회 없다면 최선을 다한 것일까. 정말 어려운 문제다.
힘이 남지 않을 만큼 다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그렇다고 아쉽지는 않다. 내 실력이 딱 그정도인듯 하다. 다만 그동안의 과정은 되돌아보니 정말 실망스럽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거 같다. 고쳐야 할부분들이 너무 많게 느껴진다. 목표까지 다시 멀어지고 있다. 완수해내야할 숙제들이 생겼다. 목표와 멀어졌지만 새로운 미션이 생겨서 그또한 즐겁다.
목숨을 걸고 사냥에 나서야 할 시대는 더이상 아니다. 문명이 들어서고 어느때보다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실패를 해도 여전히 살아갈수 있다. 사냥꾼의 DNA가 여전히 남아있는 나는 호모 사피엔스이자 호모 러너스이다. 어떻게 된것인지 몇천만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달리기 사냥을 하는 사냥꾼이다. 물론 다른것을 사냥 하고 있지만. 본능에 최선을 다한다.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오래. 이것이 나의 사냥의 본질이다. 아마 이 사냥은 죽어서야 끝이 날듯하다.
최선을 다했다는건 나로썬 알수없다. 다만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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