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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솔로숀 May 19. 2020

내 팔자는 죄가 없다

딸이 귀한 집안이었다. 할아버지는 삼형제에 여동생이 하나였고, 아버지도 아래로 남자 형제 하나, 여동생이 하나였다. 내 세대에는 친척 포함해서 3남 1녀인데 그 1녀가 바로 나다.


아들 부럽지 않게 사랑받았다. 밥상에서도 교육면에서도 차별이 없었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나에게만 하는 묘한 얘기는 하나 있었다.


“우리 집안은 딸이 귀한데 팔자가 그런 건지 잘 키워서 시집만 보내면 그렇게 잘 못 살아. 얘는 좀 다르게 커야 할 텐데.”


그래서 남편을 잘 골라야 한다. 결혼 전에는 재산 내역도 떼어보고 건강 검진 결과도 받아와야 한다.

집안 어른들이 어린 나에게 팔자가 어떻단 얘길 하도 해대니 나중에는 할머니가 부정 탄다고 말도 못 꺼내게 할 정도였다.


미신이고 기우라고, 나는 다르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고모할머니, 고모와 나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똑같은 삶을 살 리가 없다. 그렇게 팔자라는 단어는 내 삶에서 잊혔다.


얘 은근 지 팔자 볶는 스타일이야


내가 스무 살에 중국 유학을 가고, 돌아와서는 편입 공부를 하고, 대학 졸업 후에도 바로 취업하지 않고 창업을 하자 내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일이 잘 풀리는 시기였다. 만족도가 높았달까.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주말이면 남편과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맛집에서 식사를 했다. 우리끼리 노는 게 너무 재밌어서 다른 부부가 어떻게 사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불임일 수 있어요.
난임 센터로 가보세요.


일반 산부인과에서 난임 병원으로 ‘분류’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이 ‘팔자’라는 단어 앞으로 소환되었다. 불임, 노력만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진짜 팔자소관의 영역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게도 씨받이, 소박맞은 여자 등 조선시대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이를 갖지 못한 여성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다들 비슷한 삶을 사는데 나만 그 길을 이렇게 어렵게 가야 하는 건가?’ 정말 이런 물음이 생기더라.


파인땡큐, 앤유?

또래 친구와 지인들의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축하을 전하면 꼭 ‘나의 좋은 소식’을 되물었다. 그들은 진짜 나의 경사를 물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 함께 축하할 수 있는 화제는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니 출산 휴가나 퇴사를 결심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아직 희귀한 현역이 됐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서 여전히  퀘스트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괜히 마음이 이더라.


너도 혹시 딩크야?

동생이 강아지를 입양했다. 4개월 된 시바견이었다.

홀딱 반할 미모였다. 우리 가족이 키우는 강아지라니 더 애착이 가더라. 벼르고 별러 휴가 때 강아지와 산책을 한 번 했다. 그 사진을 찍어서 카톡 프로필 사진을 바꿨고 대번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너는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면서 아이 낳을 생각은 없는 부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뭘 해도 이 아이 낳는 미션을 해결하지
않고는 내 인생에 다른 해석 따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난임이라 해서 누군가 대놓고 내 팔자를 운운하도록 순하게 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겁이 났다. 혹시나 정신 나간 누군가 나를 팔자 센 여자로 후려치는 사람이 있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의외로 아주 평범한 지인이 ‘아기 낳고 키울 돈으로 남편이랑 둘이 여행이나 다닌다’ 넘겨짚고, ‘아기 낳아봐라 강아지가 그렇게 이쁜가’ 강아지도 안 키워봤으면서 모르는 소릴 하더라.


어쩌면 팔자 센 여자는, 어렵게 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둘째는 언제 낳을 생각이냐 당당한 기세로 묻는 평범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그렇게 사방에 널린 평범한 사람과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된 마음으로 사는 동안은 팔자든 뭐든 사납게 살아야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잘 풀리지 않는 내 삶이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해석될지 너무 예상하려들지 말라고.


내 삶을 해석할 능력이 없어서 굳이 ‘팔자’라는 단어로 간단히 설명해버리는 그 누군가는. 행복해서 눈물이 나고, 너무 싫어서 웃음이 날 때도 그저 ‘헐’이라고 표현하고 말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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