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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솔로숀 Jan 25. 2023

대행사 다니는 쌍둥이 엄맙니다.


휴가 남은 거 있으면 당근에 좀 올려줘
후하게 쳐줄게


연차는 고사하고 야근으로 생성된 대체 휴가도 다 소진 못했다는 후배의 말에 연차도 쿨거래가 가능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진지한 나는, 10년 차 직장인,

홍보 대행사에 다니는, 만 3세 쌍둥이의 엄마다.


홍보 대행사 10년 차 답지 않게 언론홍보는 해본 적 없는 디지털 마케팅 성골이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언론홍보를 제일 잘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지금 회사는 2년 전에 이직한 곳인데 그때가 아기들 11개월 때였다. 전업 육아는 내 성질뿐 아니라 성분까지 변하게 하는 어려운 것이었다. 결혼 전에 나는 아기를 낳으면 2년은 꼭 내 손으로 키우리라 다짐했었는데 아가들 생일이 11월이니 두 살 때 복직한 거니까 ’내 손으로 2년.. 키운 걸로 치자‘ 하면서 황급히 면접을 보고, 도망치듯 회사에 나왔다.


면접 보던 날 탕비실에 인사팀 팀장님의 아기 돌 답례떡이 있었다. 여성 친화기업. 우리 본부에도 아기엄마가 있다고 했다. 쌍둥이를 키우면서 일을, 그것도 대행사에 다닐 수 있을까 당연히 고민이 많았는데. 큰 회사이니 숨을 곳이 많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스스로에게 3개월 버티면 선방했다. 6개월 버티면 잘했다 말해주려고 했는데 금방 1년이 지나갔다.


과정은, 당연히 어려웠다. 이제 막 돌을 지나는 아기들은 자주 아팠고, 두 명이 돌아가며 아팠다. 사람의 열이 40도가 넘는 걸 처음 봤는데 그게 내 아기였고 야근을 하고 집에 와서 아기침대에서 함께 구겨져 자며 한 시간에 한 번씩 열을 재고 몸을 닦아주며 밤을 꼬박 샜다.


 이직을 한 거라 경력직이어도 1년에 쓸 수 있는 연차는 11개였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코로나로 4개월 정도 순환 재택을 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6개월 만에 때려치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백번 양보하고도 출근하는 아침에 울며 지하철을 타러 간 적도 있었다. 졸려서.


 작년엔 회사에 AP(Account Planner) 팀을 론칭했는데 그 팀의 파트장이 됐다. 대행사의 꽃인 제안 요정.. 내가 그게 됐다.


 그렇게 1년을 더 보내고 나니 정신과 몸에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그냥 함 살아남아보자’라고 생각했다면, 어떻게 살아남을 건지 나 자신에게 브리핑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 얘길 한번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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