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멘솔로숀 Mar 23. 2023

아이가 세 살이면, ‘엄마 나이’도 세 살인 거라

대행사 다니는 쌍둥이엄맙니다.

‘대행사 다니는 쌍둥이 엄마‘를 주제로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건,
이 구역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나라고
광고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제안 마감을 끝내고 새벽 4시쯤 택시를 잡으면서 이게 지속 가능한 삶일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건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어떻게 살아내야 하지?라는 고민에 더 가까웠다. 오히려 무인도에서 다른 무인도로 보내는 생존 신호에 가까울 것이다. 거기 사람 있어요? 거긴 살만한가요? 같은.


 가끔 마음이 어려운 어느 날, 탕비실에서 마주친 동료 워킹맘과 밀담하듯, ‘요즘 어떠세요?’를 묻곤 하는데 ‘얼마 전까진 죽을 것 같았는데 좀 적응이 됐어요’ 같은 답을 듣는 걸 보면 이건 단체전이 아니라 모두의 각개전투구나 쓸쓸한 깨달음이 오기도 한다.


 대행사는 누군가 ‘종특’이라고 할 정도로 야근이 자연스러운 곳이다. 종특이라는 단어가 좀 웃기다가 기분 나쁠 뻔했는데, 올해 철야를 나만큼 했다는 친구가 하나도 없는 걸 보면 반박할 만큼 억울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이 철야에 대해 좀 짚고 넘어가자면, 예전에는 뚱뚱한 것이 부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슬림한 몸이 관리할 정도의 여유가 있다는 뜻인 것처럼. 나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광고하는 사람들이 밤새며 기획서 쓰는 거 좀 낭만이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요즘 야근의 의미는 (그냥 일이 많아서 일수도 있겠지만) 일정관리든 시스템이든 무엇인가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철야까지 하는 회사생활에는 나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마감 전에 어쩔 수 없는 하루 정도는 쬐끔, 아주 쬐끔 동의하지만.




 - 쌍둥이 육아가 진짜 힘들죠?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신호대기를 하는 중에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 놀랍게도 아이들과 함께 외출할 때마다 한 번씩 듣는데 주로 멋쩍게 웃고 만다. 어느 날은 ‘진짜 어떠세요? 제가 쌍둥이 키워서요. 저는 죽겠는데 ‘라는 분이 있어서 '예 맞아요. 진짜 힘들죠'라고 없는 사회성에 공감, 핵공감을 해드렸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났다고 해도 얼굴도 성격도 완전 다른 그냥 ‘두 사람’이다. 외출할 때는 나 말고 옷 입힐 사람이 두 명 있고, 밥 먹을 때는 나 말고 입에 밥 들어가야 하는 사람이 두 명 있고, 집에 가서 화장도 안 지우고 쓰러져 자고 싶은 날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겨야 하는 작은 사람이 둘이다.


 그래서 외출할 때 옷 입히고 현관에서 신발 신기다가 도로 들어가고 싶은 날도 많았다. 요즘은 옷도 스스로 입겠다고 티셔츠 머리라도 넣어주면 도로 벗었다가 다시 입고, 밥이야 일찍이 자기 주도식을 시작했고, 씻기는 건 좀 더 해줘야 할 것 같긴 하지만 적어도 씻긴다고 엉엉 울진 않는 정도의 발전이 있다.


 얼마 전에 아이들에겐 외삼촌, 나에겐 남동생인 녀석이 ‘회사는 엄마가 가는 유치원이야’라는 설명을 해주는 바람에 출근하는 아가들에게는 회사=유치원이 되어버렸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자는 아이들에게 '엄마 유치원 갔다 올게'라고 했더니 부스스한 첫째 아이가 '엄마는 선생님 누구야?'라고 묻길래 ’어.. 엄마는 엄마가 선생님인 거 같아.’라고 대답해 줬다.




 친정에서 시바견을 키운다. 입양 전에 남동생이 동물행동학을 공부해서 사회성 좋고 성격 좋게 잘 자랐다. 여행 일정으로 집을 비워야 해서 강아지를 우리 집에 맡기던 날 동생은 강아지를 두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가 5분 후에 돌아오고, 슈퍼까지 나갔다가 10분 후에 돌아오고를 반복했다. 분리불안 없애는 교육이란다. 잠깐 보이지 않아도 곧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라고.


 내가 해보니 만 3세 아이들에게도 그 교육이 적용되는 것 같다. 엄마가 지금 나가지만 쪼끔 있으면 돌아올 거라는 믿음, 엄마가 엄마의 유치원에 가지만 나 유치원 끝나는 시간에 뛰어올 거라는 믿음이 있으면 아이들은 잘 자랄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잘 때까지 엄마가 들어오지 않는 날이 반복되면 아이는 불안하다. 울면서 영상 통화를 하고 '엄마 지금 와, 와서 나랑 코자' 하면서 엉엉 운다.


 회사도 힘들고, 육아도 힘드니 '일을 그만하자' 혹은 '다니기 쉬운 회사로 옮기자'는 솔루션이 아닌 것 같다. 직장을 정하는 기준이 어디 '다니기 쉬운'만 있을 리가. 퇴사가 유행인 시대, 소속 없는 한 달 정도 해피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 없겠냐만은. 회사는 힘들 때 나가는 게 아니라 더 이상 협상이 필요 없어졌을 때 나가는 것이므로 아직까지는 아기나 나나 울고 불어도 아직은 파도 타고 바다로 나가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요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행사 다니는 쌍둥이 엄맙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