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편한 글
말보다 글이 편하다. 왜 그런지 생각해 봤더니 글은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다.
말은 적절한 타이밍에 내뱉어야 한다.
그래서 말을 통해 빠르게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어렵다.
중요한 설명을 빠트리거나 모호하게 말해서 상대에게 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거나
직설적으로 말해서 상대를 놀라게 만든다.
언어라는 것이 실수라는 것을 하게 만들어졌지만
평균값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평균보다 더 많은 실수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글은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다.
천천히 쓰는 것도 허용되고 썼던 글을 모두 지우고 다른 표현으로 적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내 글이 내 마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글에는 읽는 사람 몫도 남겨둬야 하기에 그것까지 배려하기엔 내공이 부족하다.
하지만 글은 말보다 나의 생각에 더 가까운 언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글을 쓰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글을 쓰는 동안은 오롯이 나의 속도를 고려하여 시간이 흘러간다.
발행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어떠한 판단도 오해도 개입되지 않는다.
글을 쓰는 동안은 생각을 고칠 수도 있고 재고해 볼 수도 있고
다시 표현해 볼 수도 있다.
나의 속도대로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순간이다.
생각을 백지 위에 표현하는 대로 길이 생긴다.
눈이 소복하게 쌓여 누구도 밟지 않은 흰 눈들판을 보면 누구나 거기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진다.
백지는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흰 눈들판 같기도 하다.
그래서 써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저 발자국을 남기 듯 밟아본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눈이 내릴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언젠가 다른 사람의 몫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내공이 쌓인다면
그때는 말도 글처럼 아쉬움이 적어질 수 있을까?
아직 글도 내 마음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