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과 기준 사이
오해는 상대와 나의 지각방식과 표현방식이 다를 때 생겨난다.
관계의 지속은 나의 지각방식과 표현방식을 되돌아볼 때 일어난다.
주관적인 기준과 판단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공간을 남겨두어야 관계는 지속이 된다.
나의 경험과 상대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내가 내린 판단이나 생각들은 내 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지속되는 관계들이 줄어든다.
요즘 어딜 가나 MBTI에 대해 자주 이야기 하게 된다.
I/E도 알겠고 F/T도 알겠고 P/J도 알겠는데 늘 N과 S가 헷갈린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N과 S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몇 달 전 ES인 친구가 나(IN)에게 S와 N의 차이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 " 숲을 보고 나무를 보고의 차이라고 들을 것 같은데"
친구 : " 아.. N은 넓게 보고 S는 좁게 본다는 말이군"
나 : "ㅋㅋㅋ 아니고"
어느 날 IS인 동생에게 N과 S의 차이에 대해 정확히 아냐고 물었다. 동생은 -
동생 : "아마 S는 현실적이고 N은 몽상적인 걸걸.. 막... (뭔가 부정적인 뉘앙스지만 말하지 않음)"
동생의 대답을 들으니 몇 달 전 내 대답이 떠올라 속으로 웃음이 났다.
우리는 각자의 MBTI를 더 좋게 합리화하고 있었다.
N과 S에 더 좋고 나쁨이 없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은 더 좋게 포장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하물며 내가 내린 판단이나 생각에 대해서는 MBTI보다 더 깊은 애착이 있지 않을까?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 애착에서 벗어나 볼 필요가 있다.
그 애착에서 벗어나 상대를 나의 판단으로 채우지 않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
그 공간을 서서히 채워가거나 비워두어야 상대가 선명히 보인다. 상대가 어느 정도 또렷해졌을 때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좋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점도 있고 저런 점도 있구나라고 말이다. 상대에 대한 판단을 급속도로 채우는 순간 내 안에 있는 상대를 볼 뿐이다.
가끔 나와 지각방식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한 말이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을 종종 느낀다.
오해를 지각하는 순간 말했던 내용을 다시 설명해 보는데 대게 상대는 그것을 변명으로 받아들인다.
어릴 때는 열심히 설명했으나 이젠 그것도 귀찮다.
서로 다르다는 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되려 자신이 나에게 다시 알려준다.
(너 몰랐구나? 어이구 라며)
열심히 소통해 보다가 이젠 효과가 없겠다는 걸 알았다. 가타부타 설명하는 것이 귀찮아졌다.
누군가는 내가 남겨놓은 공간을 보고 거리를 둔다고 말한다.
거리는 공간적으로 떨어진 길이를 말하고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말한다.
누군가는 같은 공간을 보고도 떨어진 거리를 보고 누군가는 놓아두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우리는 똑같은 '공간'이라는 단어를 두고도 이렇게 지각방식이 다르다.
사실 누구도 틀린 사람이 없다. 다를 뿐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이 관계를 지속해 보려 노력하는 순간 공간을 '거리'라고 인정해야 관계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사람들과 관계를 그만두기로 했다.
여전히 나는
관계에 놓아두는 빈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