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확인받아야 정규직이 된다.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될 기회가 주어졌다.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본사에서는 반대했는데 우리 본부에서 적극적으로 주임들을 추천했다고 한다. 기존 입사 조건부터 달랐기에 본사에서는 꼭 주임의 자질을 테스트해야 한다고 했단다.
처음엔 어차피 계약직이고 칼퇴를 할 거라 생각해서 퇴근 후 공부할 목적으로 서류를 넣었었다. 잠시 다닌다 생각해서 직장에 마음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막상 다녀보니 내가 몸담은 곳에서 덤덤하기란 쉽지 않았다. 오래 있어도 경력이 쌓일 것 같지 않아 언제 퇴사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본사에서 정규직 전환을 위한 과정을 겪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막혀있던 혈관이 뚫린 듯 혈색이 돌았다.
어제 퇴사를 계획했는데 오늘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는 일이 생겼다. 혹시나 없는 일이 될까 봐 되기 전까지 기쁜 마음을 억눌렀다.
정규직 전환의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기존 일정에 새로운 일정이 추가되고 몇 번의 과제와 보고서, 테스트 준비까지 해야 했다. 전에 없던 좁쌀 여드름이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생겼다. 배가 괴로웠다. 가끔 위염도 앓았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대부분이 그랬다. 기회는 달콤했지만 과정에서는 쓴 맛이 났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다 보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나를 증명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저들은 뭐가 잘나서 정규직이 바로 되었지? 하는 심술도 올라왔다. 회사를 다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정규직 중에 누군가는 배울 점이 많았지만 도대체 정규직이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도 있다. 회사 속에서는 '스펙이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직 우리나라 문화가 그렇다. 좋은 스펙으로 이런 주장은 의미가 있지만 좋지 않은 스펙으로는 그냥 열등감일 뿐이다. 그래서 또다시 열심히 준비했다.
그렇게 한동안 업무시간엔 두 가지 업무를 하고 퇴근 후 테스트 준비를 하며 지냈다. 드디어 마지막 PT면접 날, 덜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자리에 섰다. 자상하게 웃고 있는 차장님 모습을 보자 울컥했다. 누구보다 정규직 전환을 원했기에 그분께 감사했다. 쳐다보면 울 것 같아 PT 하는 내내 그분을 보지 못했다. 그 옆에 팀장님과 본사 담당자가 앉아있었다. 왜인지 본사 담당자가 미웠다. '그 업무가 이렇게까지 테스트를 할 일이에요? 우리를 그렇게 못 믿겠어요??' 하는 생각도 들었다. PT 하는 내내 담당자에 대한 분노로 똑바로 쳐다보며 발표를 했는데 그게 마인드 컨트롤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사실 본사 담당자는 좋은 기회를 주셨다. 하지만 회사라는 공간이 누구의 '탓'을 해야만 견딜 수 있을 때가 있다. 그때가 그랬다. 정말 고마운 기회였지만 누군가를 원망을 해야 살 수 있을 만큼 힘들었다. 오히려 PT를 마치니 속이 시원했다.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뒤 정규직 전환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기쁘지만 기쁘지 않기도 했다.
테스트를 마치고도 우리는 한 달에 한번 교육상태를 점검받았다. 정규직 전환이 된 케이스라 실력을 알 수 없어 그런 듯했다. 내가 새로 하게 된 업무는 교육업무다. 신입 선생님들에게 제도나 제품에 대해 교육하고 선생님들 초기 실적을 관리하는 업무다. 테스트를 해서 정규직 전환이 되었는데도 아직 우리는 우리를 확인받아야 했다. 정규직으로 입사한 사람들은 퍽도 잘해서 이런 테스트를 받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이라는 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할 말만 전달하고 끝낼 수도 있고 어떻게 하면 이해를 잘할까? 고민해서 말할 수도 있는 일이다. A부터 Z까지의 케이스가 정규직에서도 존재하고 태도도 날마다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Z가 되지 않기 위해 늘 A처럼 교육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어릴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대가가 혹독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외모와 복장, 그리고 PT 할 때의 태도도 점검받았고 PT를 다 외우고 있는지도 점검을 받았다. 그때 우리의 유행어가 "누가 보면 1억이라고 받는 줄 알겠다"였다. 그렇게 농담을 하며 일했다. 한 달에 한번 새벽같이 본사로 가는 건 힘들었다. 그러나 우리들끼리 얼굴 보는 건 너무 즐거웠다. 그렇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공평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환을 마쳤는데 그 전 업무는 누군가에게 넘겨지지 않았다. 아직 주임이라는 꼬리뼈를 단 듯 우리는 테스트를 받았고 업무도 이전처럼 했다. 추가로 새로운 업무가 생겼을 뿐이다. 그래도 그렇게 원 해서 어렵게 얻은 자리라 그런지 교육할 때만큼은 즐거웠다. 정말 이례적인 기회였기에 공평하지 않기도 했다. 그 불균형 사이에서 오른 월급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이거면 조금은 더 참을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