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코로나19 때문에 일은 안되지만 더 바빠진 요즘이다. 계획되어 있던 모든 것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어쨌거나 일은 진행되어야 하고, 파키스탄 코로나19 현황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날짜와 수치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난 여섯 달간 관련 보고에 시달렸고(지금도 시달리고 있고), 사무실에서라도 만나던 파키스탄인 직원들은 재택근무 조치가 내려져 맨날 통화만 하고, 나는 집-사무실-집-(가끔) 식료품점-집만 왔다갔다 하느라 내가 어디 있는지 실감도 채 하지 못한 채로 어느새 파키스탄에 온 지 여섯 달이 다 되어간다.
외국에서 살고 일한다고 해도 뭐가 엄청 드라마틱하게 다르지는 않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다 비슷한 것 같다. 자고 일어나서 씻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쉬다가 자고. 특히 어떤 조직에 속한 직장인이 되어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 모니터 앞에 앉아 일을 한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는, 그런 느낌이 든다. 차이가 없는 건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환경이 다르고, 인터넷은 느리고,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도 다르고, 업무방식도 다르고, 외국인이랑 영어를 써가면서 일을 하고. 그래도 그 모든 건 그저 업무의 한 부분일 뿐, 아, 외국이구나, 하고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새벽 여섯 시 반에 맞춰놓은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도 좀 하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야지, 하고 마음을 먹지만 결국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이 들었다가 집에서 나가야 되는 시각의 20분 전에 일어난다.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아서 직장에 따라 사무실에서 출퇴근 시 차를 지원해 주는 경우도 있었고, 근처 사는 동료의 차를 얻어타거나 택시를 불렀는데, 최근에는 렌트를 해서 직접 운전을 한다. 대충 세수하고 양치하고 물 한잔 마시고, 나에겐 유니폼과 같은 출근용 옷 중 손에 집히는 대로 아무거나 입고 출근용 구두와 가방을 들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아직 운전이 서툴러서 빨간색 테이프로 'L (Learner)'을 앞뒤로 커다랗게 붙여놓은 내 차를 찾아 타고 시동을 걸고 조심스레 운전해서 사무실로 향한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사무실 내 방에 가서 앉는다. 지금 파키스탄에서 일하는 곳은 직원이 많지 않아서, 지하 1층, 지상 2.5층짜리 방이 여러 개인 집 한 채를 빌려 사무실로 쓰고 있다. 집이 워낙 커서 엄청 집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보던 것처럼 사무실 같은 분위기는 덜하다. 방마다 화장실도 있고. 한국직원 한 명이 나와 함께 방을 나누어 쓰다가 귀국하고 지금은 나 혼자(+ 귀여운 도마뱀과) 방을 쓰고 있다. 잠비아에서는 정부기관 건물이라 사람도 많고 여러 기관이 섞여있어 조금 더 사무실 느낌이 났지만, 공간이 작게 분리되어있어 대부분의 직원이 각자(+ 역시 귀여운 도마뱀과) 방을 썼다. 차 한잔 만들어 온 뒤 내 방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면, 시차 때문에 내가 자는 동안 이미 일을 시작한 한국에서 온 이메일과 문서들이 쌓여있다. 나는 이제 그걸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답장도 하고 메신저도 주고받고 자료도 만들고 여기저기 전화도 돌리고. 쌓여있던걸 대충 처리하면 점심시간이다.
점심은 사 먹기도 하고, 도시락도 많이 싸 다니고, 혹은 해먹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점심에 다 같이 회식을 하기도 하고. 잠비아에서는 초반엔 사 먹다가, 사무실 근처로 이사하면서 도시락을 싸거나 집에 가서 먹고 오기도 했다. 다들 각자 방이 있으니까 도시락을 혼자 자유롭게 일하다가 먹는 분위기였다. 가끔 점심시간 언저리에 다른 사람 방에 가보면 식사하고 계시고. 나는 혼자 먹으려고 요리하는 성격은 아니라, 도시락을 싸 다닐 때는 정말 간단하게 뮤즐리나 에너지 바, 조금 했다 싶으면 샐러드 정도를 싸다녔었다. 지금 파키스탄에서는 사무실에 부엌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 한국직원들끼리는 돈을 걷어서 점심을 해 먹는다. 덕분에 요리에 관심이 늘었고 한식도 자주 먹는데, 한식 재료의 한계가 있을 땐 창의적인 요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이었으면 그냥 사 먹었을 단무지 같은걸 담기도 하고.
점심을 먹고 나면 또 자리에 앉아 일을 한다. 필요하면 회의를 하거나, 다른 사무실을 방문하거나, 누군가가 찾아오기도 한다. 잠비아에서 일할 때는 방문시간을 정할 때 한국과의 개념 차이가 많이 느껴졌었다. 한국에서는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에 방문하겠다, 는 식으로 방문시간을 잡는다면, 잠비아에서는 이번 주에 가겠다, 내일 찾아가겠다, 몇 월 며칠 오전에 방문하겠다, 는 식이었다. '내일 아침에 오겠다'라고 해서 다음날 오전 시간 내내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기다리는 마음으로 있었는데 그다음 날 오후에나 오기도 하고. 그렇게 약속이 어긋나서 내가 사무실에 없을 때 찾아오는 경우에는, 내가 올 때까지 한두 시간씩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다. 살다보니 몸으로 이해가 됐다. 사람은 많은데 공용 차량은 몇 대 없어 늘 바쁘고, 대중교통도 시간 기약이 없고, 자차는 없거나 있더라도 개인 기름값이 드니 부담이 되어 못 쓰고. 한 곳에서 일정이 밀리면 줄줄이 밀리고. 우리나라처럼 지도앱을 통해 몇 시 몇 분에 뭐를 어디서 타면 언제 도착하는지까지가 예측이 가능하다면 약속을 '몇 시 몇 분'으로 잡을 수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엔 그렇지 못하다. 익숙해진 뒤에는 와야 오는 거지, 하고 그냥 마음 편하게 있었다. 답답하면 내가 가고. 가서 기다리고.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퇴근시간이 된다. 야근은 다들 별로 많이 안 하는 것 같다. 해도 집에 들고 가서 하거나 오히려 아침에 일찍 온다. 나는 야근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가면 늘어진다. 피곤하다. 씻기도 귀찮다. 일단 누워서 휴대폰을 좀 하면서 아 조금만 쉬고 운동을 하든 뭘 하든 해야지이이, 하다가 한두 시간 지나간다. 잠비아에서는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기도 했고 카페도 가고 영화관도 가고 했지만, 지금 파키스탄에서는 친구 사귈 틈도 없이 코로나19가 찾아왔다. 가끔 기운이 나면 운동을 하거나, 가끔 흥이 나면 기타치고 놀거나, 가끔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거나 느낌이 오면 글을 쓰거나, 대부분은 씻고 침대에 누워서 또 한두 시간 휴대폰 보다가 잔다. 하루 끝. 그냥 일상.
그렇게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문득, '내가 어디에 있구나'를 살갗으로, 감각적으로 느낄 때가 있다.
마감이 코앞이던 일을 몇 개 쳐내고 나서 홀가분한 마음과, 그와 반대로 사무실에서 찌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슈퍼에 가서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주섬주섬 주워 담아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계산원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보며 아무 감흥없이 바코드가 삑삑 찍히는 소리와 올라가는 숫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귀에 주변소리와 함께 우르두어가 들어오고 저녁기도를 알리는 'azan'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아 내가 파키스탄에 있지?' 하는 찰나의 자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거나,
유달리 나를 힘들고 억울하게 하는 일이 많아 서러운 날, 몸도 마음도 지쳐서 퇴근한 뒤 현관문을 열 힘도 없어서 집 앞 테라스에 내놓은 쿠션이 푹신한 라탄의자에 몸을 묻고는, 최소 타르 8.0mg 니코틴 0.8mg부터 시작하는 독한 현지 담배를 빼물어 불을 붙이고는, 담뱃잎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깊게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뱉은 연기가 흩어지면서 연보라색부터 진보라색까지 부드럽게 타올라가고 있는 노을이 점점 뚜렷이 눈에 들어오면 그제야 '아, 여긴 잠비아구나!' 하며 감탄한다던가,
사무실에서 차로 두 시간 반 걸리는 사업현장에서 9시에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출발한 SUV 보조석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눈을 떴는데 왕복 차선임에도 불구하고 중앙차선도 그려지지 않은 한적한 차도 양옆으로 펼쳐진 가뭄에 노랗게 말라가는 옥수수 잎과 그 위의 광활하게 펼쳐진 무심하게 새파란 하늘에 머리가 띵하고 마음이 시리면서 '아 여기가 내가 있는 곳이구나' 한다던가.
맨 처음 외국살이를 시작했을 때는, 외국에 있는 '나'와 한국에 있던 '나'가 나눠지는 느낌이 컸었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낯선 곳에 내리면, 한국에서의 삶은 일시정지되고 외국에서의 삶이 재생되었다가, 다시 한국에 내리면 그제야 일시정지되어있던 한국에서의 삶이 그곳에서부터 재생되는 것 같았다. 반면에 외국에서의 삶은 일시정지되고. 하지만 외국살이가 쌓이면서, 이제는 어디를 가든 내가 나고 자라던 곳에 이어 이곳에서도 계속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는 연속성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문득, 별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딱히 새롭거나 놀라운 게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 곳에 '속해있다'는 감각과 '동떨어져 있다'는 감각이 동시에 찾아오면서, 여기, 이쯤에 내가 분명히 존재함을 느낀다. 평소 기본적으로 긴장하여 억제되어 있던 감각이, 맥이 빠지며 긴장이 풀어진 순간, 존재한다는 감각이 마음에 푹 후비고 들어와 퍼져나가 심장이 뻐근하다. 그런 순간엔 슬며시 웃음이 스며 나온다. 아, 내가 여기에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