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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 May 27. 2021

5. 아아, 오뚜기는 갔습니다

헌병은 서서 생각한다

특기학교는 갓 기훈단을 마친 예비 헌병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전수하는 곳이다. 국군 장병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군인이 하는 일들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모두 생경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각종 화기를 다루는 법, 검문검색의 절차, 거동수상자 검거 매뉴얼 등 밖에서는 비슷한 생각조차 해볼 일이 없는 그런 것들을 배운다. 2년의 군 생활 동안 단 2주를 머무는 곳에서 배운 것들이 제대로 기억날 리 만무하지만, 내 머릿속에 분명하게 남아있는 지식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른바 ‘오뚜기’라 불리는 바리케이드에 관한 것이다.    

오뚜기라는 이름은 보이는 것처럼 구조상 어떻게 놔둬도 지면에 발을 붙이고 잘 서있는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듯하다. 사실 명칭의 정확한 유래까지는 알지 못한다. 특기학교는 바리케이드 이름의 유래까지 가르쳐주는 여유롭고 친절한 교육기관은 아니었다. 아니, 그런 걸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할지 모른다. 아무튼 이 설치물은 검문검색을 실시하는 구간에서 차량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된다. 크기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성인 남성이 두 손으로 들면 쉽게 들 수 있고, 한 손으로도 여차저차 옮길 수 있다. 평상시에는 진입 차량이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S자 커브를 만드는 데 사용되지만, 차량이 돌진하는 다급한 위기 상황에서는 해당 차량을 급하게 멈추기 위해 오뚜기를 차량의 예상 진입 경로로 던지기도 한다. 실제로 특기학교에서는 오뚜기를 던질 수 있는 바리케이드로 가르친다. 아무렇게나 던져도 우뚝 서서 수상한 차량을 막아내니, 오뚜기라는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실전은 이론과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때는 바야흐로 자대에 배치받은 뒤 헌병반에서 첫 검문검색 훈련을 하던 순간이었다. 나는 갓 이병에서 벗어나 일병 마크를 달고 참여했고, 많은 선후임들도 함께 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특기학교를 꽤 좋은 성적으로 수료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는 자신감으로 훈련에 임했다.


훈련을 주관한 헌병 반장님은 키가 크진 않았지만 풍채가 대단하고 산적처럼 무섭게 생긴 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성격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인품의 소유자였다.


“자 오늘은 간단하게 차량돌진 상황 훈련을 하겠다.”


“모르는 차가 갑자기 들어온다고 치고, 어떻게 해야 하지? OOO 일병, 시범을 보여봐라.”


“네, 알겠습니다!”










쨍- 데구루루.....      


나는 배운 대로 오뚜기를 전방을 향해 가볍게 던졌고, 이름처럼 절묘하게 착지해서 늠름한 자태를 뽐낼 것으로 기대했던 오뚜기는 지면과 닿자마자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3개의 막대기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한때 오뚜기였던 것들은 내리막길을 타고 자유분방하게 굴러갔다.      


“.....”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머리가 하얘졌다. 헌병 반장님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선임들은 웃음이 터졌다.  

    

“야, 그걸 그렇게 던지면 어떡하냐”


“빨리 주워와라”      


오뚜기가 부서져버린 순간, 오뚜기의 존재는 돌처럼 굳어버린 내 머릿속에 각인되고 말았다. 아아, 오뚜기는 갔지마는 나는 오뚜기를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지금껏 나는 오뚜기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정녕 누구도 오뚜기를 던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인가.  다행히 삼단 분리된 오뚜기는 시설반의 용접 기구를 통해 다시 태어났고, 그날 이후로 그 누구도 오뚜기를 던지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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