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번스의 《‘나’라는 착각》을 읽고,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레고리 번스는 에모리대학교 뇌과학 연구소와 뇌 정책 센터에서 최첨단 뇌 이미지 처리 기술, 데이터 분석 도구 및 소프트웨어 개발을 선도적으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을 뒤돌아보면 크게 두 개의 구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마라톤은 42.195km를 달려야 하는 긴 여정이기에 반드시 반환점을 돌아야 한다. 반환점으로 향하는 시기와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으로 돌아올 때는 달리는 방법, 달릴 때의 생각 등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반환점이 나에게는 50세였던 것 같다.
50세 이전을 돌이켜보면 오직 앞을 보며 달릴 수 있게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인생의 정답을 찾는 데에만 급급했다. 내가 가야 하는 길은 시험문제의 정답처럼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것인가?’ 등의 질문은 전혀 필요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그런 질문들은 나에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에 대해 생각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그냥 모범생이었다.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재수 생활 없이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에도 입사했다. 온전한 나의 선택으로 대기업을 그만두고 힘들다는 고시 공부도 했다. 지금은 연구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평범한 삶이었다. 당시에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도 그건 당연한 진리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50세를 지나면서 내가 기대했던 삶과 다르게 인생이 펼쳐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교통사고, 간절하게 원했던 승진 실패, 굳게 믿었던 사람들로부터의 따돌림 등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했다. 그것도 동시다발적으로 내게 커다란 파도의 물결처럼 밀려왔다. 나에게는 정말 힘든 상황이었다. 절실한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찾아온 절망감은 나를 좌절하게 했다. 무언가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에 둘러싸여 아무 데도 갈 수 없고, 그 벽을 뛰어넘기는 더욱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도 않고, 오히려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집에서도 아이들이 각자 방에 들어가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거실에 홀로 남게 되었다.
그때, 내가 보였다. 지금껏 남을 위해 살아왔던 내 삶이 보였다. ‘나를 찾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 멀리했던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정답만을 찾아다녔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늦게나마 깨달은 건 ‘삶에서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해답이다.’라는 것이다. 정답은 정해져 있지만, 해답은 다양한 해결 방법이 있다. 또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행복이 존재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 읽은 책 중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알프레드 아들러가 쓴 책들이었다. ‘미움받을 용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들러의 삶의 의미’ 등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서점에서 구매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이라 불리고 있으며,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이다. 아들러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어떤 측면에서 열등감을 느낀다. 이는 현재보다 나은 상태인 완전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평가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인간은 각자가 자기완성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느끼는 열등감을 극복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아들러의 책들을 보면서, “자신의 힘으로 누구에게나 있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답을 찾아야 한다.”라고 믿었고, 세상에 둘도 없이 중요한 존재가 ‘나’라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이러한 나에게 그레고리 번스의 《‘나’라는 착각》은 '인생의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아가는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생각을 더해 주었다. 이 책에서는 “‘나’라는 실체적 존재는 뇌가 만들어낸 왜곡의 결과물(p33)”이며, “인간의 자아가 필연적으로 오류의 가능성을 가진 기억의 혼합물(p10)”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나아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자아는 망상이다. (p261)”라고 한다. 그렇기에 “자아가 허구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p )”라고 제안하고 있다. 즉,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자아 정체성은 과거, 현재, 미래의 자아가 한데 엮인 한 편의 서사(p14)”이며, “당신이 듣는 이야기들이 당신의 서사를 형성하므로 당신이 소비하고 생산하는 이야기를 바꾸면 자아를 바꿀 수 있다. (p )”라고 한다. 즉, 내 서사를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바로 '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책은 뇌를 바꾸는 가장 효율적인 매체(p275)”로 “독서는 뇌의 서사 궤적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p277)”라고 독서의 중요성을 함께 얘기하고 있다.
나는 인생의 해답을 찾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중요한 실천 가치로 꼽고 있다.
첫째, 어렵고 힘든 상황에 부닥쳤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며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다.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소와 말은 평상시 잔잔한 물에서는 헤엄쳐 살아 나온다. 하지만 소와 말이 거센 물살에 휩쓸리면 헤엄이 서툰 소는 살아남고 헤엄을 잘 치는 말은 죽는다고 한다. 말은 물살의 거센 기운을 거스르려고 발버둥 치다 힘이 빠져 죽지만 소는 물의 흐름에 따라 떠내려가면서 육지에 도달하여 살아난다는 것이다. 인생에 항상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처한 상황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소와 같이 순응하는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둘째,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끊임없이 질문한다. 질문은 해답을 찾는데 필요한 열쇠이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질문으로 파고든 사람은 이미 그 문제의 해답을 반쯤 얻은 것과 같다.”라고 했다. 또한,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 고명환은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에서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에 앞서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 대해 알아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질문과 해답의 시작은 독서라면서 독서의 중요성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질문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뇌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저절로 움직이게 된다.” 고명환,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p55-56.
그레고리 번스의 《‘나’라는 착각》은 뇌과학 및 신경과학 분야의 전문용어가 많아서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도 책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내 삶의 해답을 찾아가는 주인공은 바로 ‘나’이다.”라는걸 다시 깨닫게 되었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는 수동적인 바람보다 세상을 보는 나를 바꾸어야 한다. 이 책에서도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변하는 것이다. (p325)”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유선경의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에서도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하면 세상이 변하겠냐고 묻습니다. 저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어떻게 해야 세상을 대하는 당신이 변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세상은 그 후에야 변하겠지요.” 유선경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p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