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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수 Aug 27. 2020

그날, 일본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Ⅱ

운동장에 핀 튤립을 보면 선생님이 생각나요

죄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지


  “다 같은 친구인데 다른 반에 가서 사과했어야 할 만큼 아이들이 심각한 잘못을 한 것이었을까요. 아이들에게도 프라이드는 있는 건데”


  슈퍼 앞에서 우연히 만난 같은 반 엄마에게 그날 이야기(https://brunch.co.kr/@mmjdes/9/write)를 훅 꺼냈다. ‘바른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던 이 엄마라면 뭔가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 사이 마주친 몇몇 엄마들 누구도 속내를 꺼내 놓지 않고 두리뭉실 돌려대는 이야기가 답답했다.


   “프라이드라는 게 뭘까요.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게 사과시키는 것도 프라이드를 지키는 일일 것 같아요”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는 부드럽지만 단호히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문제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역시 문제를 인식하는 포인트가 다르다. ‘아이들의 실수는  잘못한 것’에서 출발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지인의 이야기와 교집합을 이루고 있었다.


   일본 생활을 하며 문득문득 느껴온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갑갑함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이야기해 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담임 선생님은 부임과 동시에 출산 휴가를 떠난 선생님을 대신해 1년 계약으로 오셨다. 정년 퇴임을 하신 분으로 경험이 풍부해 노련하다는 장점과 다소 낡은 교육관으로 지루하다는 단점이 공존하는 선생님이었다.


   혼자서는 뭐든 하기 힘든 코흘리개들을 데리고 티도 안나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을 터인데, 선생님으로서도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였을 것이다. 그 누구도 공론화하지 않고 흐지부지하게 사라져 버린 그 사건을 마지막으로 1학년이 끝났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4월에 신학기가 시작된다. 학교에 따라 행사의 이름도 시기도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아이의 학교는 시업식 다음날 이임식(離任式)을 한다. 봄방학 때 발령이 나기 때문에 학생들과 인사를 하지 못하고 헤어진 선생님과 교직원들이 몸 담았던 학교에 다시 방문해 학생들과 제대로 된 마지막 인사를 하는 행사다. 해당 선생님이 맡았던 반 아이들은 모두 편지를 쓰고 그중 대표가 편지를 낭독한 뒤 학생들의 편지를 전달한다.



2학년 운동회, 3학년 운동회, 4학년 운동회, 5학년 운동회…

        

 “운동장에 심은 제 튤립이 피었어요. 그 꽃을 보면 선생님 얼굴이 생각나요” 

대표로 선발된 딸아이는 단상 위에 올라가 선생님 앞에 서서 편지를 낭독했고 웃는 얼굴로 아이를 쳐다보던 선생님이 편지를 다 읽고 나서 보니 울고 계셨다고 한다.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과 딸의 얽힘이… 고백하자면 그 사건 이후 난 선생님을 미워했다. 다소 어려워 보이는 수업 방식이라 느꼈지만 아이 담임이기 때문에 신뢰했고, 운동회 때 젊은 선생님들 못지않은 정열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도 좋았다. 


   하지만 그날 사건으로 나는 분노했고, 학년을 마칠 때까지 그 미움을 떨칠 수 없었다. 선생님이 뭐라 얘기하시든 내게는 그저 자신도 주체 못 하는 감정의 칼날을 아이들에게 무자비하게 휘두른 것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선생님의 엽서가 도착했다. 담임을 맡았던 반 모든 학생들에게 보낸 것이다.

  ‘이임식날 고마웠어요’로 시작하는 엽서 중간 쯤에 ‘친구들을 생각하는 〇〇짱의 따뜻한 마음을 선생님은 좋아해요’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이임식을 끝으로 그 선생님과의 인연은 끝이라 생각했다. 꽤나 묵직한 에피소드였으나 아이에게는 성장의 밑거름으로 내게는 이문화를 깊이 생각하게 한 일련의 사건으로 마무리를 지으면 될 터였다.



  

 그런데 시간은 내게 또 다른 패를 던진다.


   사력을 다해 상대를 이겨 보겠다고 모두가 마음 합한 줄다리기 경기 저 편으로 선생님이 설핏 보였다. 학년이 바뀐 2학년 운동회, 선생님은 아이들을  응원하고 계셨다. 생각지도 못한 선생님의 등장에 아이들은 몰려들어 왁자지껄 인사도 하고 까불거리다 다시 다음 경기에 열중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엄마들도 인사를 드리며 안부를 여쭸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3학년 운동회에도 4학년 운동회에도 5학년 운동회에도 오셨다. 올해는 코로나로 운동회가 열리지 않았지만 당연히 오셨을 것이다. 어느 해인가는 연말에 열리는 학예회에도 참석하셨다.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선생님은 생각보다 더 많이 아이들의 성장을 보고 계셨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우르르 몰려들던 꼬마들도 고학년이 되니 소수의 아이들만 짧막히 인사하는 정도가 됐다. 그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사연이 쌓이지 않는 관계에 쭈뼛한 서먹함은 어찌할 수 없는 거니까. 그런 을씨년스러운 대접에도 선생님은 매해 커가는 아이들을 보고 가셨다


   이쯤 되면 나의 미움도 명분을 잃게 된다. 이렇게 글로 쓰며 선생님과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면서 내년 졸업식 때 다시 오실 선생님의 선물을 미리 감치 생각해 본다.


   처음에는 신뢰로, 그것이 분노로 미움으로 다시 뭉근한 사랑으로, 버라이어티 한 모든 것을 맛보게 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편지도 함께 보낼까. 6년에 걸친 선생님과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무리하지만 알 수 없다. 또 어느 순간에 선생님이 내 앞에 나타나실지. 시간은 그렇게 인생의 묘미를 불쑥불쑥 선보이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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