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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수 Nov 23. 2020

우리 학교 일진이 날 보잖다

네가 전학생이지? 옥상으로 따라와

   우리 학교 일진이 손을 까딱거린다. 복도로 나가니 키 큰 네 명도 함께였다. 

도시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 온 지 5개월째, 학교 사정에 어두웠지만 이 애들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호랑이가 그려진 티셔츠에 가죽 미니스커트, 속이 다 비치는 하얀 블라우스에 빨간 브래지어, 중학교 3학년인 내가 상상도 하기 힘든 옷차림으로 학교에 다니는 패거리들을 보며 ‘도시에서는 학생이 저런 옷을 입어도 되는 건가’ 혼자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


   뿐만이 아니다. 체력장 연습으로 3학년 전원이 모여 있는 운동장에 오토바이를 탄 건달들이 출몰한 적이 있었다. 스탠드에 앉아 담배를 피워대던 건달들은 “은정아! 은정아!” 휘파람을 불어대며 소리를 질렀다. 그날 그 일진 이름을 알았다. 좀 논다 하는 날라리들은 시골에도 있었지만 이 일진은 지극히 차원이 다른 불량스러움으로 눈이 마주칠까 겁나는 아이였다.


   헌데 나와는 전혀 접점이 없는 그 아이가 나를 부른다. 계단을 오르는 나는 도대체 이 애가 나를 왜 지목했는지 아니 어떻게 나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하며 계단을 올랐다. 다섯 명이 나를 에워쌌고 그 애가 한마디 툭 던졌다.

   “왜 야려?”

   “내가 언제…”

   “쩌어억!”

   말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뺨이 불에 덴 듯 뜨거워지더니 고개가 휙 꺾였다. 순식간에 싸대귀를 맞은 나는 너무 놀라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둘렀지만 삐딱히 서 있던 옆의 두 명이 내 팔을 가로챘다. “어디서 나불거려, 건방지게 촌년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분하고 억울해서 어떻게든 나도 한 대 쳐보려 버둥대는 사이 일진은 쌍욕과 설교를 쏟아낸 뒤 나대지 말라는 경고를 하며 먼저 퇴장했다. 옥상에 혼자 남아 한참을 울었다. 그 일진과 나는 이야기해 본 적도 마주친 일 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애의 일방적인 이야기 속에 나를 찍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내가 다닌 시골 학교에서 선생님은 부모 대신이었다. 정도를 넘는 체벌도 심했는데 그것으로 학교에 불만을 제기한다거나 선생님의 자질을 의심하는 친구나 부모님은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은 복종하고 우러러봐야 할 존경의 대상이었다. 전학 간 학교에서 학생들과 선생님의 관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들은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치고 선생님을 친구처럼 대했고 선생님도 화내는 일없이 아이들을 친근하게 대했다. 젊은 선생님들이 많기도 했지만 동네 언니, 오빠 같은 분위기랄까. 달라진 분위기에 쉽게 적응 못하고 있을 즈음 그 일이 생겼다.


   수학 시간이었다. 학생들에게 인기 있던 선생님이 한 아이를 지목해 노래를 시켰다. 아이는 싫은 듯, 싫지 않은 듯 연신 살살 웃으며 “안 해요, 몰라요”를 연발했고 억지로 시키려 그 애 자리로 쫒아간 선생님과 교실 안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깔깔대며 박수도 쳐가며 그 분위기를 즐겼지만 나는 경악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학생이 교실 안을 뛰어다니며 수업 분위기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선생님! 제가 대신 노래할게요” 

아수라장이었던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뛰기를 멈추고 무척 흥미롭다는 듯이 내 앞으로 오셨다. “용기 있네 그래 한번 들어 보자” 내가 노래를 잘한다거나, 잘난 척하고 싶었다거나, 튀고 싶었다거나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 그냥 그 이상한 교실 분위기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교단에 섰다. 


   “거리에 찬 바람 불어오더니 한 잎, 두 잎 낙엽은….” 

   ‘찬비’를 불렀다. 65개의 얼굴, 130개의 눈이 나를 초집중하고 있었고 몇 명의 아이들은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기세 좋게 손들었을 때와는 달리 나는 몹시 떨며 불안한 음정으로 겨우 노래를 마쳤다. 그날 야간 자습 시간의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나를 구경하려 다른 반에서 원정온 것이다. 나는 그저 ‘수학 시간의 일이 소문났구나’ 정도로 생각했고 뒤에 모인 아이들이 다 들리게 쑥덕대는 소리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내게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고 왕따가 시작됐다. 싸대기를 갈긴 빨간 브래지어의 등장도 깝치는 전학생 손봐주기 일환이었을 것이다.      


   옥상에서 내려온 나는 이를 악물었다. 교실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야간 자습을 간신히 끝내고 학교를 나섰다. 학교에서 좀 벗어났다고 생각되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한번 터져버린 눈물은 참기가 힘들었다. 길가던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 괜찮냐고 물으셨다. 


    새벽녘에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A가 떠올랐다. 그때의 국어 선생님은 좀 독특한 선생님이었다. 소문으로는 지병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사별해서 혼자 생활하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늘 기운도 의욕도 없이 조용하셨고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선생님은 반 마다 한 명씩 국어 학습 위원을 뽑아 그 학생에게 수업을 시키셨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인사를 받고 학습 위원이 수업을 시작하면 어디론가 휘 나가버리셨다. 국어 학습 위원이었던 나는 꽤나 열심히 준비했고 2학기가 됐을 때는 내가 정말 국어 선생님인 줄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수업을 하고 있는데 A가 옆 애와 소곤거렸다. ‘조용히 하라’는 나의 제지가 못마땅했던 A는 못 들은 척 다시 옆 친구에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책을 덮고 그 애 앞으로 갔다.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 

    “네가 뭔데 그러냐? 네가 선생님이야?” 

다른 아이들처럼 말을 듣지 않고 따지고 드는 A에 짜증이 났다. 아이들이 보고 있었고 나는 내 체면을 구기기 싫었다. 고성이 오가다가 그 애가 오른손을 치켜들었을 때 “짝!”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먼저 그 애의 뺨을 때려 버렸다. 교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나를 바라보던 그 애의 눈은 원망과 슬픔을 가득 담고 있었다. A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속으로는 너무 놀랐고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했지만 설익고 못난 그때 나는 놀라지 않은 척했다.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 앞에서의 내 체면 만이 중요했다.  


    ‘내가 그때의 벌을 받고 있구나’

학교 일진에게 구타당한 그 날, A가 떠올라 눈물이 났다. 그 애의 눈빛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데 옥상에서의 내 눈빛은 어땠을까. 같은 반 친구에게 맞은 싸대기는 A에게 얼마나 굴욕적이고 잔인했을까.  무려 30년도 더 지난 일이거늘 살다가 문득문득 까맣고 말랐던 A가 생각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치기 부렸던 그때를 후회하며 한없이 미안해한다. 그러고 보면 내게 주어진 벌은 그날의 폭력이 아니라 A에게 영원히 사과하지 못한 채 마음의 짐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과응보 굴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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