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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수 Nov 18. 2020

아이돌을 사랑한 소년

한국어가 재미있어요, 한국이 좋아요

#1 여전히 부끄럽지만 한국어에 대한 열망으로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한국어 교사는 수많은 관계 끊임없이 맺어가는 직업인 듯합니다거기서 만난 크고 작은 인연 때로는 부담으로 때로는 기쁨으로눈물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고등학생인 스즈키 군(가명)을 만난 것은 재작년 가을 이맘때쯤이었습니다이미 거친  군데 수업이 자신과는  맞았는지 출석부에 ‘3번째 체험이라는 메모가 꽂혀 있었습니다. 

“스즈키 군!”

   이름을 부르자 눈을 맞추지 못하는 그의 얼굴은 귓불까지 달아올랐습니다유난히 하얀 피부가 숨고 싶은 소년의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습니다간신히 내는 목소리는 입속에서 맴돌 뿐이었고, 교과서를 꽉 잡은 두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책 속에 얼굴을 묻은 채 수업을 받은 그는 수업 종료와 동시에 달아나듯 교실을 떠났습니다.

 

   앙케트를 살펴보니 스즈키 군은 한국 아이돌에게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노래도 좋아했지만 콘서트팬미팅에 다니면서 한국어에 대한 열망이 생겼던 것입니다모르는 이들과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보이는 그가 우리나라의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려 용기 낸 사실이 참으로 기특하고도 고마웠습니다.


   스즈키 군이 합류하게  반은 인자한 60 아주머니들이 주류를 이루는 그룹이었습니다걸음마를   얼마 안 된 학생들은 우선 한글을 자신 있게 읽을  있도록 지도해야 했고기본 문법을 마치고  스즈키 군은 회화 연습을 통해 문법이  정착되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스즈키 군! 머리 잘랐어요?”

   주목되는 시선을 느낀 그의 얼굴이 가엾도록 붉어졌습니다

   “여러분스즈키 군 머리 잘랐어요어때요 어울리지요다른 친구들이  옷을 입고 오거나 머리를 잘랐을  한국어로는 이렇게 말하면 돼요.” 학생들에게는 “스즈키 군, 잘 어울려요”라는 표현을 한 사람씩 하게 하고 타인과의 의사소통 자체를 힘들어하는 스즈키 군은 “감사합니다”  인사하게 했습니다. 

   “스즈키 군! 20페이지 새로운 단어를 대신  읽어 줄래요여러분은 함께 따라 하세요.”

한국어 수업이 본인의 실력보다 수준이 낮고 천천히 진행되고 있을 터였기 때문에 그에게 종종 선생님 역할을 부탁했습니다.

 

#2 마음껏 웃고, 마음껏 실수하는 것이 좋단다

   나라마다  나라만의 문화와 고유한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일본인들은 겉으로 드러내 불만을 토로하지 않습니다조용히 지켜보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살며시 그만두는 것이 일반적이라 느껴집니다

 

   자신을 표현하기 힘들어하는 내성적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잘하고 싶어 하는 스즈키 군을 딱딱한  속에서 꺼내 주고 싶었습니다. 17살의 어리디 어린 너는 마음껏 웃고마음껏 실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스즈키 군을 위한답시고 너무 짓궂게 구는 게 아닐까?’

   가끔씩 살짝 걱정도 됐지만얼굴을 붉히면서도 점점 편안해지는 그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있었습니다아줌마 학생들과 저는 한마음으로 스즈키 군을 응원했습니다우리는 입을 열기 시작하는 그를 천천히 기다려 주었고엄마 미소로 그를 보듬어 주었습니다.

   스즈키 군은 조금씩 변했습니다일부러 묻지 않아도 한국 아이돌의 팬사인회에 가서  열쇠고리를 슬쩍 보여 주기도 하고쉬는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콘서트에서 찍은 사진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저는 안도하며 정든 이들과 이별할 준비를 했습니다주말 수업은 1년만 하겠다고 이미 회사에 전달해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선생님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대학 입시를 앞둔 그는 영어 대신 외국어의 하나인 한국어로 시험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마음 같아서는 전력을 다해 도와주고 싶었지만초급 실력으로 입시 한국어를 보기에는 무리인 데다 곧 그만둘 처지에 책임질 수 없는 희망만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습니다그의 바람에 부응할  없어서 안타까웠지만 한국어가 스즈키 군에게 좀 더 진지한 테마가  것이 뿌듯했습니다

   다음 달부터는 담임을  맡을  없다는 말을 건넸을 때 학생들은 슬퍼했고 이런저런 마음 따뜻해지는 말들을 건네주었습니다스즈키 군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처럼 빨개진 얼굴을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3 용기 있는 너의 시작을 축하하며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월요일이었습니다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들어서서 출근 카드를 찍고 있는데 직원이 복사하다 말고 달음질쳐 왔습니다.

   “선생님어제 스즈키 군이 다니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었어요

   “담임 선생님이 왜요?”

   담임 선생님의 전화라니… 혹시나 스즈키 군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방정맞게도 걱정이 앞섰습니다

   “스즈키 군이 한국어를 배우면서 많은 성장을 했다고 하셨어요성격도 밝아지고 학교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해요감사의 말씀을  번이나 하셨어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리고 3월에 있을 졸업식에 선생님을 초대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어쩌시겠어요승낙하시면 초대장을 보내겠다고 하시네요. 부담스러우시면 안 가셔도 돼요


   왜 본인이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담임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가슴  밑에서 울컥하며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일본 교육계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하나는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칩거하는 아이들입니다

   혹시 스즈키 군이 그랬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대학은 어떻게 됐을까선물은 무엇을 준비할까역시 일본인들의 정서를 고려해서 부담을 주지 않는 선물이 좋겠지기분 좋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졸업식을 비롯한 동경 내 모든 행사가 취소・축소됐고 학교도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오래 고민한 끝에 그에게 줄 선물로 한글 도장을 준비했습니다. 이 선물 역시 코로나로 인해 주문한 지 한 달 반 만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우연한 기회에 특별한 준비나 사명감 없이 한국어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나름 노력은 하고 있지만 가끔씩 한국어 교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곤 했습니한국어 참고서를 읽어도 읽어도 이해  되는 설명들이 있었고예상치도 못한 황당한(외국인들로서는 당연한질문들이 툭툭 튀어나습니다끊임없이 공부하고 연마해야만 하는  일에 지칠 때가 있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전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질문에 답을 못해 얼굴이 빨개진  있지만 학생들을 향한 마음은  진실했습니다공부를 잘하고 못하고호감이 있고 없고 가리지 않았고한국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며  관심이 한국에 대한 사랑으로  자리 잡도록 노력했습니다.

 

   ‘나도 괜찮구나’ 

   저는 웃으면서 안심할  있게 됐습니다.

   직원에게 전해 들은 바로 그는 한국어과가 있는 전문학교로 진학했습니다그가 예전에 살짝 비친 속내대로 장래에는 한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한국 관련 일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 제가 이야기한  친구 같은 일본인(외국인) 있다면 어설퍼도실수해도 한국인의 따뜻한 정으로 안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게 제보도 부탁드립니다궂게 장난칠 준비를 하고 당장 연락할 테니까요

   저는 언제든지 학생들을 위해 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스즈키 군 졸업 축하해요. 이제 대학생이군요. 

앞으로 즐거운 일도 힘든 일도…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잘 헤쳐나가리라 믿어요. 1년 동안 함께 한 한국어 공부, 힘들었지요?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한국을 사랑해 줘서 고맙습니다.

 

코로나로 늦어졌지만 한국어 도장을 선물합니다. 한국어로 쓰여 있으니 일본에서는 쓸 수 없는 도장이지만, 앞으로 하게 될 자신과의 수많은 약속과 계획에 써주세요.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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