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가는 분야나 고민이 생기면 자연스레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 책 저 책 펼쳐보며 다양한 분야를 탐험을 하기도 하고,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 읽기도 합니다. 읽고 싶을 때마다 읽어도 한 달 평균 4권 정도는 책을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입시 등의 목적을 위해 책을 읽기는 읽었지만, 딱히 독서 자체에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제 미성숙한 행동으로 인해 상경 후 처음 우정을 나누었던 대학 친구들과 완전히 등을 지게 되었습니다. 매일 같이 방에 처박혀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일까..' 하며 스스로를 구박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증발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몇 개월이 흐른 후 다행히도 다른 친구를 사귈 수는 있었지만, 짙은 상실감과 자책 그리고 외로움을 마음속 깊은 곳에 봉인한 채로였습니다.
그러다 일종의 도피로 중국에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좀 과할 정도로 밝게 행동했습니다. 어떻게든 마음속 어둠을 숨기고 싶었나 봐요. 이런 상태에서 첫사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남자친구를 만날 때면 방긋방긋 잘도 웃었지만 혼자가 되는 순간부터는 외나무다리 위를 걷는 듯했습니다. 하루에도 수 백번씩 감정이 널뛰는 날들이 오랜 시간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과제를 하기 위해 도서관을 방문했다 우연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발견했습니다. 소설을 자발적으로 읽어본 적이 없던 저였지만, 그날따라 무언가에 홀린 듯 1Q84 전권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외로움과 불안에 허덕이고 있었을 늦은 오후, 4평짜리 원룸 한편에서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이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소설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었고, 스마트폰에서는 드뷔시의 달빛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창문에서는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만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편안하다', '충만하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이 편안함으로부터 그 누구에게도 받지 못했던,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해주지 못했던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전까지는 소설의 유용성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하자면, '소설 따위는'의 인식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날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하나씩 읽어나갈 때마다 봉인되어 있던 아픔들이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들과 함께 무언가를 상실하기도 했고, 그로 인한 짙은 고독을 느끼기도 했으며, 나의 아픔과 그림자를 솔직하게 마주해보기도 했습니다. 혼자 고요하게 책 속의 인물과, 나아가 저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들이 너무 좋아져서 그 후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 책, 저 책 읽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